LG의 국내 선발진을 책임질 이민호와 임찬규(사진=스포츠춘추 DB)
LG의 국내 선발진을 책임질 이민호와 임찬규(사진=스포츠춘추 DB)

[스포츠춘추=대전]

리그 최고의 불펜, 그리고 리그 최악의 선발진. 시즌 개막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마치 초고층 마천루와 판자촌이 공존하는 브라질 도시 위성사진을 보는 듯하다. LG 트윈스 불펜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고, LG 선발진은 우려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다. 

불펜투수진만 보면 초호화 그 자체다. 12경기에서 불펜 평균자책 0.53으로 10개 팀 중에 1위, 선동열급 평균자책을 기록 중이다. 50.2이닝 동안 단 4점만 내줬고 자책점은 3점만 허용했다. 올 시즌 6회 이후 LG 투수들이 허용한 점수는 단 3점 뿐이다. 1경기 3점이 아니라 12경기에서 내준 점수가 3점이다.

류지현 LG 감독(사진=스포츠춘추 DB)
류지현 LG 감독(사진=스포츠춘추 DB)

이런 사실을 류지현 감독도 알고 있었다. 15일 대전 한화 이글스 전을 앞두고 만난 류 감독은 ‘6회 이후 실점이 거의 없다’는 질문에 “아마 정우영이 맞은 홈런 하나와 SSG전 9회 2실점까지 3점일 것”이라며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신바람 야구’ 시절보다 강력한 불펜 덕분에 LG는 4회부터 9회까지 경기 중후반 아직 한 번도 빅이닝을 허용하지 않았다. 5회까지 앞선 경기 5전 전승, 6회까지 앞선 경기 6전 전승, 7회까지 리드한 경기 6전 전승, 8회까지 앞선 경기도 7전 전승, 승률 100%를 자랑한다. 역전승은 5번, 반면 역전패는 한번도 당하지 않았다. 

마무리 고우석(6경기 5세이브 평균자책 1.50)을 필두로 셋업맨 정우영(5경기 4홀드 1.50), 김대유(2.25) 이정용(0.00) 진해수(0.00) 김진성(0.00) 등 승리조 투수만 6명이다. 추격조에 가까운 최동환(0.00) 최성훈(0.00) 임준형(0.00)도 아직 실점이 없다. 여기에 부상에서 회복해 자신감을 찾은 함덕주까지 호투를 거듭하며 0의 행진이다. 

메이저리그 감독을 지낸 밥 레몬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는 좋은 친구와 좋은 불펜”이란 말을 남겼다. 좋은 불펜을 보유한 야구 감독은 행복한 감독이다. 류 감독도 “계획이 선다는 건 경기 운영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며 LG 불펜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류 감독은 “보통 경기 전에는 선발이 몇 이닝을 끌고 갈지, 불펜으로 누굴 낼지 미리 준비한다. 준비한 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바람직하겠나. 항상 준비대로 게임이 흘러가지는 않는다”면서도 “감사하게도 우리가 사전에 준비한 부분이 게임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서, 지난해와 올 시즌 투수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승후보’ LG 선발 평균자책 4.78로 리그 꼴찌, 최하위 후보 한화만도 못해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사진=스포츠춘추 DB)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사진=스포츠춘추 DB)

문제는 선발이다. 15일 경기까지 LG 선발진은 12경기 평균자책 4.78로 리그 최하위다. 전날까지는 리그 9위(3.93)였다가 이날 이민호가 7실점으로 조기강판 당하며 최하위로 추락했다. 반면 선발 윤대경이 6이닝 1실점한 한화는 꼴찌(4.15)에서 7위(3.88)로 올라섰다. 우승후보라는 LG 선발진이 작년 꼴찌였고 올해도 최하위 후보인 한화 선발진만도 못하다는 얘기다.

LG 선발투수들이 기록한 퀄리티 스타트는 단 4차례로 뒤에서 두 번째다. 4차례 가운데 2회는 5선발 후보 손주영, 김윤식의 ‘깜짝 호투’로 작성한 퀄리티 스타트였다. 반면 선발 조기강판은 4번으로 KIA(5회) 다음으로 많았다. LG의 실점 분포를 보면 1~3회 실점이 25점으로 전체 실점(36점)의 69.4%를 차지한다. 경기 초반 선발이 점수를 준 뒤 불펜투수들이 올라와 뒤처리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15일 한화전도 정확하게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이날 LG 선발 이민호는 3.1이닝 7실점으로 개막후 3경기 연속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천적 한화 상대라면 당연히 살아날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지난 2년간 한화전 7경기에서 내준 점수(5점)보다 많은 점수(7점)을 하루에 내주고 무너졌다.

이민호가 내려간 뒤 올라온 불펜투수들은 무실점으로 잘 던졌다. 4회 1아웃 이후 올라온 임준형(1.2이닝 무실점)을 시작으로 진해수(1이닝)-최동환(2이닝)이 선발투수가 망친 경기를 정리했다. 그사이 LG 타선이 3점을 따라붙었지만, 초반 대량실점을 극복 못하고 3대 7로 무릎을 꿇었다. “이민호가 편하게 던질 수 있는 경기”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호되게 당한 LG다.

현재까지 LG 선발 중에 제몫을 해준 투수는 아담 플럿코 하나뿐이다. 플럿코는 3경기 2승 1패 평균자책 2.65로 1선발에 걸맞은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 류 감독은 “아직 27경기가 남았다”면서도 SSG 에이스 윌머 폰트와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점을 칭찬했다. 류 감독은 “1선발 투수 간에 자존심 싸움이 있지 않겠나. 마운드 위에서 전투적으로 의욕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케이시 켈리(5.40), 이민호(12.10), 임찬규(6.30) 등 나머지 선발진은 아직까지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손주영, 김윤식이 첫 등판에서 잘 던졌지만 둘에게 시즌 내내 그만한 투구를 기대하긴 어렵다. 손주영의 경우 첫 등판(6이닝 1실점)과 두 번째 등판(4.2이닝 2실점) 사이를 오가며 시즌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

LG 선발진의 멍하고 혼돈스러운 상태는 1위 경쟁팀 SSG 랜더스 선발진과 비교된다. SSG는 12경기 선발 평균자책 1.34로 리그 전체 1위다. 박종훈, 문승원이 오기 전인데도 아직 한 번의 조기강판도 없었고, 12경기 중에 8번이나 퀄리티 스타트를 작성했다. 5회 이전 실점이 12경기 60이닝 동안 단 9점뿐일 정도로 선발진 전원이 잘 던지고 있다. 강한 선발을 앞세운 SSG는 개막 10연승으로 시즌을 시작해 11승 1패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LG의 필승카드 정우영(사진=LG)
LG의 필승카드 정우영(사진=LG)

최고의 불펜을 보유한 건 행복한 일이지만 불펜만 갖고는 우승할 수 없다. 이민호의 첫 2차례 등판처럼 선발을 일찍 내리고 3~4회부터 불펜으로 틀어막는 식의 경기를 144경기 내내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러 투수와 롱릴리프를 이리저리 조합하는 퍼즐 맞추기로는 한계가 있다는 건 3위로 마감한 지난 시즌 충분히 입증됐다. 

부상에서 회복한 켈리가 점차 제 모습을 찾는다고 가정하면, 결국 국내 선발 이민호와 임찬규가 최소한의 선발 구실을 해줘야 LG도 ‘정상적인’ 마운드 운영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천 2군에는 배재준(퓨처스 2경기 평균자책 1.80), 김영준(1경기 1.59) 등 예비 선발 자원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계약 마지막 해인 류지현 감독도 지난해처럼 무한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는 형편은 못 된다. LG 마운드 성골이자 황태자인 이민호, 임찬규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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