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고소전'에 나선 허문회 전 롯데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대량 고소전'에 나선 허문회 전 롯데 감독(사진=스포츠춘추)

[스포츠춘추]

야구팬 조석열(가명) 씨는 최근 경찰서에 다녀왔다. 평생 처음 가는 경찰서였다. “경찰서 입구에 들어서는데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너무 무섭고, 떨렸다.” 조 씨의 얘기다.

조 씨가 난생처음 경찰서를 찾은 이유는 누군가 조 씨를 모욕죄로 고소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가면서 생각해봤다. ‘내가 누굴 모욕한 적이 있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었다. 혹시 경찰이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수사관을 보자마자 ‘절 누가 고소한 거냐. 제가 대체 누굴 모욕했다는 거냐’고 물었다. 수사관 입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나왔는데…깜짝 놀랐다.”

수사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전 감독이었다. 조 씨는 조사 도중 한번 더 놀랐다. 허 전 감독으로부터 고소당한 이가 600명이 넘는다는 얘길 들은 것이다.

피고소인들 “허문회 전 감독이 600명 넘게 고소”, 허 전 감독 법률대리인 “경찰 제출 자료가 600건 넘을지 몰라도 실제 고소한 인원은 180명대”

모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다가 허 전 감독으로부터 고소 당한 게시물. '허문회가 진짜 x 같은 점이' 제목인 이 게시물은 경찰에서 혐의를 찾지 못해 불송치 결정됐다(사진=스포츠춘추)
모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다가 허 전 감독으로부터 고소 당한 게시물. '허문회가 진짜 x 같은 점이' 제목인 이 게시물은 경찰에서 혐의를 찾지 못해 불송치 결정됐다(사진=스포츠춘추)

조석열 씨처럼 허문회 전 감독으로부터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로 고소돼 경찰 조사를 받은 이들은 “수사관으로부터 ‘허 전 감독이 600명에서 700명 사이를 고소했다’는 얘길 들었다”고 알렸다.

허 전 감독이 고소장을 제출한 경찰서는 경기 구리경찰서를 비롯해 서울, 부산, 광주, 경기 화성, 의정부, 용인, 성남, 전남 광양, 경남 사천, 창원 등 전국 각지로 확인됐다. 

스포츠춘추가 취재한 피고소인들의 얘길 종합하면 이들이 허 전 감독의 대량 고소를 처음 인지한 시점은 3월 하순이다. 

피고소인 A 씨는 “회원 대부분이 3월 25일을 기점으로 자신이 고소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에펨코리아,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엠엘비파크,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서 허 전 감독 관련 게시물이나 댓글을 단 사람들이 주로 고소됐다”고 전했다.

허 전 감독 고소건을 조사 중인 수사관은 “고소인에게 심한 욕설을 했거나 허위사실 등으로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한 익명의 게시글이나 댓글을 작성한 자들을 처벌해달라는 게 고소의 요지”라며 “고소인 측에서 욕설이 포함된 게시물과 댓글을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4월 27일 전화 통화에서 허 전 감독은 대량 고소를 하게 된 이유로 ‘가족의 고통’을 들었다.

“(악성 게시글과 댓글로) 가족이 무척 힘들었다. 아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생각해야 하니까, 고소를 하게 됐다.” 허 전 감독의 얘기다.

피고소인 B 씨는 허 전 감독 관련 게시물에 심한 욕설이 담긴 댓글을 달았다고 시인했다. “2021년 허 전 감독이 롯데 사령탑일 때 팀 패배에 분개해 욕설이 섞인 댓글을 몇 차례 단 게 사실이다. 허 전 감독이 그 댓글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죄송하다.” 

고소인, 피고소인, 수사기관 모두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게시물과 댓글이 문제가 됐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피고소인 수와 관련해선 주장의 차이가 컸다. 허 전 감독의 법률대리인은 “작성자를 특정할 수 없어 경찰서에 제출한 게시물과 댓글이 600건을 넘을지 몰라도 실제 고소한 사람은 185명에서 몇 명 빠지는 수준”이라고 했다.

한 법조 전문가는 “200명 가까운 사람을 고소했다면 전형적인 대량 고소 사건”이라면서 “고소인이 전직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점, 전직 감독이 현직 감독 때 벌어진 일을 퇴직 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고소 사건”이라고 평했다.

피고소인들 “전직 감독이 현직 때 일을 문제 삼아 퇴직 후 고소”, 허 전 감독 “가족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 대량 고소 나서”

허문회 전 롯데 감독 전화 인터뷰(사진=스포츠춘추)
허문회 전 롯데 감독 전화 인터뷰(사진=스포츠춘추)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비판과 욕을 듣는 이를 꼽으라면 단연 감독이다. 한 감독 출신 야구인은 “현역 감독 시절 기사마다 내 욕으로 도배가 된 적이 있다. 내 경우엔 선수와 구단 대신 욕 먹는 게 감독 역할이다 싶어 그때마다 꾹 참고, 팀 성적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렸다”며 “선수면 몰라도 감독이 야구팬을 고소했다는 건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모 구단 관계자는 “전직 감독이 현직 감독일 때 일을 문제 삼아 대량 고소하는 것도 사상 초유일 것이다. 특히나 허 전 감독의 대량 고소로 향후 헬 게이트가 열리지 않을까 싶다”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허 전 감독은 현직 감독일 때 자신을 겨냥한 게시물과 댓글을 퇴직 후 문제 삼았다. 만약 김성근 감독님처럼 수십 년간 많은 팀의 사령탑을 맡고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섰던 분이 허 전 감독처럼 현직 감독일 때 달린 게시물과 댓글을 문제 삼아 대량 고소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 모르긴 몰라도 아마 최소 수천, 최대 만 명 이상의 전과자가 양산될지 모른다. 프로야구를 비롯해 다른 종목 전직 감독, 전직 선수들까지 대량 고소에 합세한다면 새롭고 거대한 ‘고소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허 전 감독에게 고소당한 피고소인들이 가장 의문을 나타내는 것도 ‘현직 감독일 때의 일을 퇴직 후 문제 삼았다’는 점이다. 피고소인들은 “허 전 감독이 롯데를 떠난 2021년 5월 11일 이후엔 허 전 감독과 관련해 과격한 언사의 게시물은 고사하고,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실제로 스포츠인, 연예인들의 대량 고소는 ‘현직’일 때 ‘현재의 일들’을 기준으로 한다. 현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스포츠 선수, 연예인들이 현재 벌어지는 악성 게시물과 댓글에 대해 대량 고소하는 식이다. 

한 피고소인은 “허 전 감독이 그렇게 괴로웠다면 현직 롯데 감독일 때 왜 구단을 통해 악의적인 글들에 대해 경고를 보내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랬다면 상당수의 악의적인 글들이 중단됐을 거다. 하지만, 허 전 감독은 그런 절차없이 퇴직 후 갑자기 '현직에 있었던 일'들을 문제 남아 고소를 남발하고 있다.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비판한 팬들에 대한 보복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목소릴 높였다.

이와 관련해 허 전 감독은 “(롯데 감독직을) 그만두고 처음에는 고소할 생각이 없었다. (감독에서 물러난) 한달 뒤 아내가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며 “가족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 부득이 대량 고소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허 전 감독의 법률대리인은 “현직일 때 문제 삼으려고 했는데 주저주저하다가 좀 늦어진 것 같다. 현직일 때 뭔가 액션을 취하면 변명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라며 “본인 때문에 가족이 정신적으로 힘들어 해 고심 끝에 고소를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계속]

허문회 전 감독이나 프로야구 선수로부터 고소 당한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dhp1225@spochoo.com으로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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