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행위와 아무 관계가 없는 전직을 기사 제목에 가져다 쓰는 것. 언론엔 ‘클릭수의 문제’겠지만, 전직과 관련돼 살아가는 이들에겐 ‘명예와 생계가 걸린 문제’일 것이다.
지금의 행위와 아무 관계가 없는 전직을 기사 제목에 가져다 쓰는 것. 언론엔 ‘클릭수의 문제’겠지만, 전직과 관련돼 살아가는 이들에겐 ‘명예와 생계가 걸린 문제’일 것이다.

[스포츠춘추]

# 터지기 직전의 풍선을 보는 듯하다. 바늘을 대면 ‘펑’ 터질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남자는 잔뜩 화가 나 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경찰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반대다. 말리는 경찰을 향해 큰소리친다. 표정만 봐선 몸싸움도 벌일 기세다.

9일 새벽에 벌어진 일이다. 사건 장소는 부산이다. 조직폭력배 A 씨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붙잡힌 게 사건의 내막이다. 

“A 씨가 유튜브 방송 진행 중 다른 조폭 조직원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시비가 붙었다. 두 사람이 직접 만나 시시비비를 가리기로 한 모양이다. 문제는 A 씨가 흉기를 들고 나갔다는 점이다. 경찰에 제보와 신고가 쏟아졌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이 출동했고, 흥분한 A 씨를 제압하면서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경찰의 설명이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가운덴 은퇴 후에도 존경받는 삶을 사는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훨씬 많다. 대표적인 이가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다. '라오스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 전 감독은 최근 라오스 대표팀을 강원도 강릉으로 초청해 직접 지도 중이다(사진=스포츠춘추)
전직 프로야구 선수 가운덴 은퇴 후에도 존경받는 삶을 사는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훨씬 많다. 대표적인 이가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다. '라오스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 전 감독은 최근 라오스 대표팀을 강원도 강릉으로 초청해 직접 지도 중이다(사진=스포츠춘추)

# 경찰은 A 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경찰은 “A 씨가 흉기를 들었고, 초범이 아닌데다 경찰관까지 위협한 혐의를 받고 있다”며 “가뜩이나 언론에서 A 씨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터라, 수사가 빨리 끝나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의 설명에서 주목할 대목이 있다. ‘언론에서 A 씨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는 부분이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함으로 따진다면 언론이 대대적으로 다룰 사건은 아니”라고 했다. “조폭간 실제 싸움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다친 사람도 없다. 처음에 ‘왜 이 사건을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루지?’ 싶었다. 사람들이 이 사건에 큰 관심을 보여 놀란 것도 사실이다.” 경찰의 얘기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유는 뭘까. 사람들이 이 사건에 그토록 큰 관심을 보인 이유는 또 뭘까. 기사 보도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 제목엔 빠짐없이 ‘프로야구 선수 출신 조폭’ 혹은 ‘야구선수 출신 조폭’이란 문구가 들어갔다.

만약 사건의 장본인이 일개 ‘조폭’이었다면 언론에선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을 거다. 대중도 단순 ‘조폭’이었다면 기사를 클릭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조폭’이란 단어 앞에 ‘프로야구 선수 출신’ ‘야구선수 출신’이 들어갔기에 기사가 되고, 기사를 보게 됐을 것이다.

# 여기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A 씨가 최근 벌인 행위와 ‘프로야구 선수’라는 A 씨의 전직(前職)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A 씨가 프로야구 선수를 그만둔 건 2007년 4월이다. 15년이나 지났다.

게다가 A 씨는 프로야구단에 입단한 뒤 한 시즌도 뛰지 못했다. 아니 한 경기도 등판하지 않았다. 1군은 고사하고, 2군 기록도 없다. 아예 공식 기록이 전무하다. 왜냐? 프로팀에 입단하고서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뒤 곧바로 팀을 떠난 까닭이다. 이렇듯 프로야구 경력이 전무한 A 씨 관련 기사에 굳이 ‘프로야구 선수 출신 조폭’이라는 타이틀을 뽑아내는 이유는 뭔가.

무엇보다 A 씨가 최근 벌인 행위는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선수’라는 전직과는 어떤 인과 관계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왜 기사 제목에 전직을 넣은 것인가.

일전에도 언론은 ‘포수 출신 전직 야구선수’에게 맞아 선량한 사람이 지적장애인이 됐다는 제하의 보도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그 ‘포수 출신의 전직 야구선수’를 아는 야구인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소프트협회에서도 입을 모아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했다.

설령 ‘포수 출신 전직 야구선수’가 맞다손 치더라도 그의 폭력과 그의 전직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지금 행위와 아무 관계가 없는 전직을 기사 제목에 가져다 쓰는 것. 언론엔 ‘클릭수의 문제’겠지만, 전직과 관련돼 살아가는 이들에겐 ‘명예와 생계가 걸린 문제’일 것이다. 이런 식의 제목 장사가 멈추도록 야구인을 비롯해 스포츠인들이 나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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