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하주석(사진=중계방송 화면 캡쳐)
분노한 하주석(사진=중계방송 화면 캡쳐)

[스포츠춘추]

스트라이크 존을 둘러싼 선수와 심판의 갈등이 시즌 중반으로 접어드는 6월에도 계속되고 있다. 개막 초반에는 ‘정상화’된 존에 대한 타자와 심판 간의 갈등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투수들까지 ‘존이 도로 좁아졌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6월 16일 광주 경기에선 KIA 타이거즈 선수들이 존 때문에 당황하는 장면이 세 차례 나왔다. 4회말에는 투수 이의리가 손아섭 상대로 던진 바깥쪽 높은 공에 심판 손이 올라가지 않아 쓴웃음을 지었다. 7회에는 박동원이 풀카운트에서 몸쪽 낮은 공 스트라이크 판정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고, 9회에도 이창진이 몸쪽 높은 공 스트라이크 콜에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KIA 선수들은 평화적으로 감정을 표현한 편이다. 대전 경기에서는 한화 하주석의 격렬한 분노 표출이 입길에 올랐다. 8회 1사 1루에서 타석에 나온 하주석은 구승민의 초구 바깥쪽 낮은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자 잠시 타석에서 벗어나 심판에게 불만을 표했다. 

이후 1-2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하자 배트를 바닥에 내리치고, 기사에 옮겨 적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낸 뒤, 헬멧까지 집어 던지며 분노했다. 퇴장 과정에서 집어 던진 헬멧이 수석코치의 뒤통수에 맞는 불상사도 있었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본 야구인은 “KBO에서 선수가 저렇게 행동하는 장면은 처음 본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 장면”이라고 촌평했다.

연패에 빠진 팀 상황과 타격부진 스트레스, 심판 판정에 대해 누적된 불만이 하주석의 폭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하주석은 올 시즌 스트라이크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한 6번째 인물이 됐다. 앞서 4월 5일 키움 이용규, 4월 23일 삼성 호세 피렐라-LG 김현수, 5월 26일 키움 전병우, 6월 8일 SSG 김원형 감독이 존에 대한 항의로 퇴장당한 바 있다. 

타자에 이어 투수들도 S존에 불만 “초반에는 넓게 잡아주더니…점점 좁아진다”

허운 심판위원장이 KIA 선수단을 상대로 스트라이크 정상화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사진=KIA)
허운 심판위원장이 KIA 선수단을 상대로 스트라이크 정상화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사진=KIA)

이제까지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항의는 타자들이 주를 이뤘다. ‘정상화’ 방침에 따라 넓어진 존의 크기를 받아들이지 못한 타자들이 심판과 충돌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투수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야구장에서 투수들과 대화하다 보면 ‘존이 달라졌다’ ‘존이 이상하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수도권 팀 베테랑 투수 A는 “확실히 스트라이크 존이 시즌 초반에 비해 좁아졌다”면서 “점점 좁아져서 이제는 작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라 말했다.

A는 “시범경기와 개막 초반에는 높은 공이나 좌우에 걸치는 공도 잡아줘서 넓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다. 물론 타자들 생각은 다를 수도 있는데, 투수 입장에서는 좁아졌다고 느낀다”고 했다. A는 올해 커리어 하이에 가까운 성적을 내고 있는 선수다.

서울 구단의 베테랑 투수 B도 “진작에 작년과 똑같아졌다”고 동의했다. B는 “4월 한 달은 괜찮았다가, 5월 초·중순부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 같다. 처음에 잘 잡아줬던 높은 공도 이제는 잘 안 잡아준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수도권 구단 투수코치 역시 “존이 시즌 초반에 비해 약간 줄어들긴 했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작년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보지만 그래도 좀 좁아진 감이 있다. 시범경기 때 잘 잡아줬던 높은 공을 요즘에는 좀처럼 잡아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방구단의 한 코치도 “요즘 선수들 사이에서 존이 좁아졌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특히 투수들이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다시 작년처럼 됐다는 얘기도 있다”고 제청했다.

일부 투수들은 존이 좁아진 데 더해 공의 반발력까지 좋아졌다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수도권 팀 투수코치는 “공의 반발력이 초반보다 강해졌다는 느낌이 있다. 타구가 맞아 나가는 게 다르다”고 말했다. 수도권팀 투수 A는 “동료들 사이에서 공의 반발력이 좋아졌다는 얘기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물론 타자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존이 좁아지면서 투수들이 안에다 넣으려다 보니 잘 맞는 타구가 많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통계를 보면 시즌 초반보다 리그 전반적인 볼 비율이 증가한 게 눈에 띈다. 4월 한 달간 64.2%-35.8%였던 스트라이크/볼 비율은 5월 들어 63.5%-36.5%로 변화했다. 6월에도 스트라이크 63.6%에 볼 36.4%로 초반보다는 볼 비율이 증가했다. 9이닝당 볼넷도 4월 3.23개에서 5월 3.54개, 6월 3.44개로 볼이 많아지는 추세다. 

서울팀 투수 B는 “아마 나뿐만 아니라 리그 투수 누구나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며 “스프링캠프 때 심판들이 와서 연습할 때는 다들 크게 본다. 웬만한 공에는 스트라이크를 외치다가 정작 시즌이 시작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늘 그랬다. 투수들끼리는 ‘저거 믿지마’ ‘어차피 다시 똑같아져’라는 대화를 나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타자들 “일관성이 더 문제” 심판부 “존 좁아졌다는 지적 동의 못한다”

KBO 야구 규칙의 스트라이크존 규정.
KBO 야구 규칙의 스트라이크존 규정.

타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방구단 간판타자 C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초반에 너무 말도 안 되게 존을 넓혀놓았기 때문에 좁아진 것처럼 느끼는 것 아니겠나”라며 “투수들이 슬슬 맞아 나가기 시작하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원래 지금쯤이 투수들의 힘이 떨어지는 시기다. 본인들의 구위가 떨어진 건 생각 안 하고 핑계만 찾는다”라고 말했다. 같은 존을 두고 투수들과는 정반대 얘기를 하고 있다.

수도권 팀 간판타자 D는 존의 크기와 별개로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D는 “존에 일관성이 없다는 게 제일 힘든 부분”이라며 “심판마다 어떤 심판은 잡아주는 높은 공을 다른 심판은 안 잡아준다. 같은 심판도 경기 내에서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한다. 3-0 카운트에서 들어오는 공은 웬만하면 스트라이크로 쳐주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존이 넓어지는 건 이미 시즌 전에 공지한 사항이니까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일관성이 없는 존 적용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선구안 좋기로 소문난 타자 D의 지적이다. 

지방구단 코치는 “심판들의 수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특히 몇몇 특정 심판들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선수단 분위기를 전했다. 

심판부의 생각은 어떨까. 투수와 타자들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처럼, 심판부 역시 선수들의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허운 KBO 심판위원장은 통화에서 ‘존이 초반보다 좁아졌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절대 그런 상황은 없다. 우리는 처음에 공표한 대로 스트라이크존 정상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허 위원장은 심판에 따라 존 차이가 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허 위원장은 “그 부분은 부인하지 않는다. 심판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다. 우리 심판부는 그 편차를 계속 줄여가고 맞춰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타자는 물론 이제는 투수 쪽에서도 존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 위원장은 “시범경기 때는 스트라이크존 정상화를 위해 약간 더 높거나 빠진 공에도 손을 들었던 면이 있다. ‘높은 공도 스트라이크’라고 강조하면서 신경 쓰다 보니 정말 높은 공에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범경기 때와 달리 시즌 개막 후엔 ‘정상화’ 취지에 따라 지나치게 높거나 빠진 공은 스트라이크로 판정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허 위원장은 “심판들에게 정확하게 봐야 한다, 특히 높은 변화구 판정 때 실수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심판들도 완전히 높게 벗어난 공은 스트라이크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시범경기 때보다 정확성이 높아진 것인데, 시범경기 때는 스트라이크였는데 왜 지금은 아니냐는 불만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우리 심판부는 처음 계획한 대로 스트라이크존 정상화를 향해 가고 있다. 심판에 따른 편차도 줄이기 위해 계속 점검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타고투저와 볼넷 증가가 계속 문제되지 않았나. 다소간 진통이 있더라도 지금의 정상화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 허 위원장의 말이다.

끝나지 않는 스트라이크존 갈등, 결론은 로봇 심판 조기 도입?

최근 2년 동안 퓨처스리그 로봇 심판 사업을 운용한 스포츠투아이는 PTS 시스템 데이터를 통해 홈 플레이트 위 가상 3D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에 대한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린다(사진=스포츠투아이)
최근 2년 동안 퓨처스리그 로봇 심판 사업을 운용한 스포츠투아이는 PTS 시스템 데이터를 통해 홈 플레이트 위 가상 3D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에 대한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린다(사진=스포츠투아이)

이처럼 타자도, 투수도, 심판도 서로 생각이 제각각이다. 스트라이크존을 둘러싼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일부 선수들은 ‘로봇심판 조기도입’과 ‘트랙맨 전광판 상영’을 근본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수도권 팀 간판타자 D는 “차라리 전광판에 트랙맨으로 측정한 존을 바로 틀어주면 안되나 생각도 든다” “그러면 바로 그 자리에서 스트라이크가 맞는지 볼인지 확인할 수 있지 않나. 선수들은 물론 심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도입이 어려울까?”라고 제안했다.

서울팀 투수 B는 “로봇심판을 도입하면 인간 심판보다 일관성이 있어서 좋을 것이다. 눈으로 보는 인간 심판은 계속해서 오심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가능하다면 로봇 심판을 빨리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 말했다.

실제 KBO는 이르면 2024년부터 로봇 심판을 1군 경기에 도입할 예정이다. 단,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2024년 로봇 심판을 도입하는 게 전제다. MLB가 시행하면 KBO에서도 거의 동시에 로봇 심판을 시행한다는 구상이다. 

한 KBO 관계자는 “현재 MLB가 2024년 도입을 목표로 로봇 심판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 이에 KBO도 MLB 시행이 확정되면 같은 해에 바로 시행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KBO 관계자는 “로봇 심판 도입은 한국야구가 살고 죽는 문제와 직결된다”며 “지금 현장에서는 매일 스트라이크/볼을 놓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선수와 팬들이 판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KBO리그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심판들도 팬들의 비난과 현장의 항의에 힘들어한다. 가능하면 하루라도 빨리 로봇 심판을 도입하는 게 갈등을 최소화하고 판정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길”이라 말했다.

심판부도 원칙적으로 로봇 심판 도입에 반대하지 않는다. 허 위원장은 “심판들도 힘들다. 차라리 로봇 심판으로 한번 해보자는 의견이 나온다” “로봇 심판을 도입해도 인간 심판의 역할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파울/페어 판정이나 타격방해, 수비방해 판정, 경기 진행 등과 관련해 심판의 역할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