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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 받은 체육학계 거목은 어디로 사라졌나…한국체대 권봉안 전 교수 증발 사건
[스포츠춘추]
권봉안(67) 전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체육학계 거물이다. 29살에 한국체대 교수가 되고서 2020년 2월 정년퇴직할 때까지 35년간 존경받는 학자이자 체육계의 어른으로 살아왔다. 권 전 교수는 국무총리 표창에 이어 황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런 권 전 교수가 갑자기 자취를 감춘 건 2020년 5월이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최근 스포츠춘추는 취재 중 존경받는 학자이자 체육계의 어른이던 권 전 교수의 현재 신분을 알게 됐다. 바로 ‘인터폴 적색수배자’다.
존경받는 학자이자 체육계의 어른으로 알려졌던 한국체대 교수가 인터폴 적색수배자가 된 사연
인터폴(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 ICPO). 국제범죄의 예방과 처리, 국외로 도주한 범죄자의 체포와 인도를 목적으로 만든 국제형사경찰기구다. 한국은 1964년 인터폴에 정식 가입했다.
범죄를 저지르고 국외로 도주한 범죄자에 대해 각국 경찰은 인터폴에 ‘국제수배’를 요청한다. 국제수배는 총 8가지로, ‘적색수배’로 불리는 국제체포수배는 수배자를 체포해 수배 요청국으로 송환한다는 점에서 8개의 수배 등급 가운데 최고 등급으로 꼽힌다.
적색수배자가 되면 범죄자의 인적 사항과 범죄 혐의, DNA 등의 정보가 인터폴 회원국에 공유돼 전 세계 공항·항만에 등록된다.
경찰 관계자는 “기소나 형을 선고받은 피의자 가운데 국외로 도주한 사람들이 인터폴 적색수배자가 된다. 적색수배자 중 상당수가 강력범죄나 반인륜적 범죄에 연루된 이들”이라고 설명한 뒤 “인터폴 적색수배자가 되면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진다. 검거에 큰 도움이 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불법 아동 성 착취 동영상 사이트를 운영하며 수십억 원의 불법 수익을 올리다 태국에서 검거된 30대 남성이 좋은 예다. 이 남성은 태국과 인근 동남아 나라들을 오가며 경찰의 추적을 피해왔다. 하지만, 한국 경찰 요청으로 인터폴 적색수배자 되자 이전처럼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졌고, 결국 태국 경찰에 검거됐다.
그렇다면 존경받는 학자이자 체육계의 어른으로 알려졌던 권봉안 전 한국체대 교수는 어쩌다 인터폴 적색수배자가 된 것일까.
취재 중 만난 체육계 관계자는 “권 전 교수가 한국에 있던 2020년 뇌물수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인터폴 적색수배자가 됐다”고 전했다.
“2020년 5월 경찰이 권 전 교수를 강도 높게 수사했다. 권 전 교수가 제자들의 한국체대 박사과정 입학과 지도교수 선정, 논문심사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게 당시 경찰 판단이었다. 권 전 교수에게 금품을 전달한 제자들이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면서 권 전 교수가 코너에 몰렸다. 학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목소릴 높였지만, 정작 권 전 교수가 택한 건 도주였다.”
사실이었다. 권 전 교수는 2020년 5월 중순, 서울 모 경찰서 출석을 이틀 앞두고 미국으로 도주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인터폴 적색수배자가 됐다.
권 전 교수 뇌물수수 사건에 깊이 관련됐던 A 씨는 “미국 도주가 아니었더라도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에게 돈을 뜯어냈다는 점에서 권 전 교수는 인터폴 적색수배자가 되기에 전혀 모자를 게 없는 파렴치범 중의 파렴치범”이라고 목소릴 높였다.
“스승이 요구해 뇌물까지 바치고 받은 박사학위. 지금은 무용지물은 고사하고, 범죄 증거물만 됐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권봉안 전 교수는 한국체대 건강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사과정은 물론 석사, 박사과정에서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입학 시험문제 출제와 연구활동, 논문심사를 총괄한 권 전 교수는 이런 지위를 악용해 석·박사 입학과 지도교수 선정 대가로 제자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경찰 수사 결과 박사학위 취득에 필요한 박사 논문 통과 대가로 많게는 수천만 원의 금품을 요구해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교육학 박사과정에 최종 합격한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권 전 교수이 요구로 1천만 원의 입학 사례금을 주기로 했다가 사정이 많이 안 좋다고 읍소해 300만 원을 깎았다”며 “권 전 교수의 연구실에서 ‘입학대가금’ 명목으로 700만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비슷한 시기 C 씨 역시 권 전 교수에게 뇌물을 줬다. C 씨에 따르면 권 전 교수는 자신이 지도하던 제자들에게 “논문연구계획 발표일에 논문심사비 명목으로 300만 원씩, 심사 때도 심사위원들 식사비 명목으로 300만 원을 내라”고 했다. C 씨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돈을 나눠 내기로 했고, 결국 200만 원을 인출해 논문심사비 명목으로 권 전 교수에게 전달했다.
이처럼 권 전 교수에게 뇌물을 바친 이들은 10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권 전 교수 뇌물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던 제자 D 씨는 “제자 대부분이 권 전 교수에게 금품을 전달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며 다음과 같이 분개했다.
“제자 가운데 상당수가 어렵게 모은 돈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빚을 내 권 전 교수에게 돈을 바쳤던 사람들이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공부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학위를 땄지만, 지금 그 학위는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무용지물을 넘어 ‘범죄 증거물’로 전락했다. 가장 많이 화가 나는 건 자기만 살겠다고 제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간 권 전 교수다. 저런 사람을 ‘스승’이라고 부른 내가 한심하고 또 한심할 따름이다.”
“권봉안 교수, 이름 대신 ‘돈봉안’으로 불렸다.”…“누군가 미국에서 도피 중인 권봉안 전 교수에게 주기적으로 송금하는 듯”
권봉안 전 한국체대 교수는 인터폴 적색수배자 명단에 오른 데 이어 여권도 무효화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 때 핵심 수사 대상자들이 미국에서 귀국하지 않자 검찰이 외교부에 여권 무효화를 요청했다. 외교부가 요청을 받아들여 여권 반납 명령과 여권 발급 제한 조처를 내리자 핵심 수사 대상자들이 채 일주일도 안 돼 귀국한 적이 있다”며 “경찰 역시 권 전 교수의 귀국을 압박할 요량으로 여권 무효화 조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의 법조 관계자는 “인터폴 적색수배자에다 여권 무효화 조치까지 취해졌다면 권 전 교수는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일 가능성이 크다”며 “권 전 교수의 소재가 파악되는 즉시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월 23일 본지의 [‘훈장’ 받은 체육학계 거목은 어디로 사라졌나…한국체대 권봉안 전 교수 증발 사건]이 보도되고서 권 전 교수와 관련한 제보가 줄을 이었다.
자신을 ‘한국체대 출신’으로 소개한 복수의 제보자는 “학교에서 권 전 교수는 이름 대신 ‘돈봉안’으로 불렸다. 꽤 오래 전부터 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요구한다는 얘기가 나왔다”며 “모 교수는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으로부터 ‘권 전 교수가 뇌물을 요구한다’는 하소연을 듣고서도 모른 척하기 바빴다”고 폭로했다.
권 전 교수는 3년째 미국에서 도피 중이다. 취재 중 접촉한 권 전 교수의 지인들은 하나같이 “권 전 교수의 도피 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고갤 갸웃했다.
권 전 교수의 지인 가운데 한 이는 “누군가 한국에서 권 전 교수에게 주기적으로 송금하는 것 같다. 권 전 교수가 입을 열면 크게 다칠 사람이 송금자가 아닐까 싶다”라며 “권 전 교수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수사관들은 권 전 교수의 미국 도주를 도운 이들과 권 전 교수가 입을 열면 큰일 날 사람들이 누군지 잘 알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스포츠춘추는 권 전 교수 뇌물수수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담당 경찰관들을 취재했다. 해당 경찰관들은 “수사했던 사건에 대해선 말씀드릴 게 없다”며 입을 닫았다.
+ 제보를 받습니다. 권봉안 전 교수와 관련해 제보 주시거나 석박사 과정에서 지도 교수로부터 금품 또는 향응을 요구받았던 경험이 있으신 분은 dhp1225@spochoo.com으로 연락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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