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춘추]
“저를 승부조작범으로 둔갑시키고, 대한핸드볼협회를 압박해 제게 징계를 주라고 사주한 세력이 있어요. 사주 이유가 뭐냐고요? 제가 지난 대통령 선거 경선 때 당시 야당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에요. 조만간 ‘징계 사주’의 몸통이 밝혀질 겁니다.”
홍정호(48).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 금메달리스트다.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론 최초로 유럽리그에 진출한 전설이다. 한국 핸드볼계를 대표하는 전설 중의 전설이 ‘승부조작범’으로 몰린 건 2021년 10월이다.
“지난해 한 대회에서 기술임원을 맡았다가 순식간에 승부조작범이 됐어요. 준우승팀이 대한체육회에 ‘기술임원들이 특정팀을 우승하게 할 목적으로 도를 넘어 경기에 관여했다’는 민원을 제기하면서 저를 아예 승부조작범으로 몰아간 거죠. 평생 핸드볼인으로 자랑스럽게 살아왔던 제게 ‘승부조작범’ 낙인은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홍정호의 얘기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정작 홍정호가 큰 충격을 받은 건 핸드볼협회가 내린 '비정상적인 징계'였다.
“핸드볼협회 모 전무이사가 전화를 걸어와 대뜸 ‘인터넷 기사를 통해 너의 징계 조치가 알려질 거다. 실명으로 거론될 수도 있다. 당황하지 마라’고 했어요. ‘무슨 이유와 절차로 제게 징계를 내리신 거냐’고 물었더니 ‘전화로는 말할 수 없다’는 얘기만 되풀이했어요. 전화를 끊고 혹시나 싶어 인터넷 뉴스를 봤더니…저도 모르는 제 징계 기사가 떠 있지 뭐예요.”
핸드볼협회는 홍정호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재심은 고사하고,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무슨 배짱인지 징계위원회조차 열지 않았다.
승부조작범으로 몰리며 핸드볼협회로부터 의문의 징계까지 받은 홍정호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스포츠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2022년 5월 21일 스포츠윤리센터로부터 사건처리통지서를 받았다.
“저에 대해 ‘승부조작, 편파판정 혐의가 전혀 없다’는 내용의 통지서였어요. 스포츠윤리센터는 제가 특정팀에 유리한 판정을 내릴 이유가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내린 사실도 없다고 판단했어요. 부정한 청탁을 받은 사실 역시 없다고 결론 내렸죠.”
‘승부조작범’ 누명에서 벗어난 홍정호는 누가 자신에게 징계를 내리도록 사주했는지, 이른바 ‘징계 사주’의 실체를 밝히려 준비 중이다.
핸드볼 영웅, 승부조작범으로 몰리다
한국 여자 핸드볼을 대표하는 전설 중의 전설이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난데없이 ‘승부조작범’으로 몰렸다.
2021년 10월 14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여고부 결승에서 기술임원을 맡았다. 당시 결승에서 황지정보산업고(강원)가 일신여고(충북)에 26-25로 이기며 우승팀이 됐다. 그때만 해도 별 논란이 없었다. 그리고 5일인가 지났을까, 충북체육회가 대한체육회로 민원제기 공문을 보내면서 사건이 커졌다.
공문 내용이 뭐였나.
‘일신여고가 이기던 상황에서 명백한 심판 오심으로 경기 종료 승패가 바뀌는 상황이 발생했다. 승부조작이 틀림없다. 심판과 기술임원들의 불공정 진행, 편파 판정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충북체육회가 승부조작이 틀림없다고 단언한 이유, 뭐였다고 보나?
충북체육회의 주장은 ‘경기 종료 3분여를 앞두고 일신여고가 2골을 앞서고 있었는데 심판과 기술임원이 합심해 일신여고 선수들을 퇴장시킨 바람에 우승을 놓쳤다’는 거였다. 심판과 기술임원들의 역할 및 판정이 불공정했고, 기술임원들이 도가 넘은 경기 관여를 했는데 이것이 승부조작이라는 주장이었다.
충북체육회가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 게 있나?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 편파판정에 따른 승부조작에 관여된 해당자를 발본색원하라’고 목소릴 높였지만, 정황 증거만 열거했을뿐 명확한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이와 관련된 분들에 대해선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할 예정이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충북체육회는 대한체육회에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핸드볼 경기 승부조작’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충북체육회가 작성한 문서에도 여러 번 엄연한 사실인 것처럼 ‘승부조작’이 언급돼 있다.
무슨 영문인지 핸드볼협회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시아핸드볼연맹(AHF) 심판위원장에게 영상을 보내 승부조작이나 편파판정이 있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AHF 심판위원장의 답변은 핸드볼협회의 기대와 달리 “통상적인 핸드볼 경기에서 발생하는 판정 오류의 평균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고, 심판 판정과 경기 운영이 한 쪽에 치우쳤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화로 징계 사실 알린 핸드볼협회 전무이사의 황당 발언 “인터넷 기사를 통해 너의 징계 조치가 알려질 거다. 실명으로 거론될 수도 있다. 당황하지 마라”
스포츠윤리센터 조사에 앞서 이미 AHF에서 승부조작이나 편파판정 가능성을 일축한 셈인데. 그런데도 협회는 징계를 강행했다.
지금도 명확하게 기억 난다. 협회에서 전화가 와 “오라”고 했다. “무슨 자리인지 알아야 가죠” 했더니 “전국체전 여고부 결승전 경기 판정에 대해 설명하는 회의니까 그냥 오라”고만 했다. 회의에 가보니 핸드볼협회 부회장, 전무이사, 사무처장, 심판위원장, 본부장, 경기 이사 등이 앉아 있었다. 가서 당시 경기 상황을 설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일인가 지났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전화였나.
핸드볼협회 장00 전무이사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인터넷 기사를 통해 너의 징계 조치가 알려질 거다. 실명으로 거론될 수도 있다. 당황하지 마라”고 했다. “무슨 이유와 절차로 제게 징계를 내리신 거냐”고 물었더니 “전화로는 말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전화를 끊고 혹시나 싶어 인터넷 뉴스를 봤더니….
봤더니?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면에 핸드볼협회가 내게 징계를 내렸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어떤 징계였나.
기술임원의 책무 소홀을 이유로 2022년 3월까지 모든 경기 배정을 금지하는 징계였다.
소명 기회는 있었나.
소명은 고사하고, 재심의 기회도 없었다. 그 흔한 징계위원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징계도 ‘인터넷 기사를 보고 확인하라’는 얘길 듣고서야 알았다. 세상에 이런 징계가 어딨는지 묻고 싶다.
핸드볼협회는 문제가 불거지자 “징계위원회가 아니었다. 민원심의위원회에서 징계를 내렸다”고 변명했다가 “민원심의위에서 징계 내리는 게 가능하냐”고 반문하자 “홍정호 위원에게 내린 징계는 징계가 아니다. 징계 범주에 있지 않다. 경기 운영에 대한 아쉬움을 (경기) 배정 정지로 (표현)한 것뿐”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놨다.
다 거짓말이다. 핸드볼협회가 대한체육회에 제출한 답변서엔 ‘홍정호에 대해 2022년 3월까지, O 기술임원에겐 올해 말까지 모든 경기 배정을 금지하는 징계를 내렸다’고 적혀 있다. 핸드볼협회가 언론에 설명했을 때도 명확하게 ‘징계’라고 표현한 걸 확인했다.
"대통령 선거 경선 때 당시 야당 후보 지지하면서 불이익 시작. 나를 징계하도록 협회 압박한 '징계 사주' 세력 있다."
5월 11일 스포츠윤리센터가 승부조작과 편파판정 혐의로 센터에 진정된 홍정호 기술임원에 대해 ‘승부조작과 편파판정 혐의가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부터 핸드볼계는 ‘승부조작과 편파판정 주장은 근거없는 모함’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핸드볼협회는 갖가지 무리수를 두면서 ‘홍정호 징계 주기에 올인한다'는 얘길 들었다.
내가 대통령선거 경선 때 당시 야당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야당 후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과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미는 후보를 지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내가 돕고 싶은 야당 후보가 따로 있었다.
그 후보를 도왔나.
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 때부 미력한 힘이나마 그 후보를 도왔다. 이상한 건….
이상한 건?
그때부터 누군가 날 주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여고부 핸드볼 결승이 이슈가 됐을 때, 아니나다를까 그 ‘누군가’가 열심히 뛰었다.
그 ‘누군가’의 정체, 누군가?
핸드볼협회를 압박해 날 징계하라고 사주한 사람이다. 핸드볼협회가 정상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징계는 절대 내릴 수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징계를 내리도록 끊임없이 핸드볼협회를 압박한 정치권력이 있다.
2021년 10월 21일 대통령선거 경선후보였던 홍준표 국민의 힘 후보 지지 선언식에 참가하고 보름 가량이 지난 뒤 징계를 받았다. 출석요구도 없고, 소명 기회도 없고, 재심 기회는 더더욱 없는 그야말로 기이한 징계였다.
누가 나를 징계하라고 사주했는지, 누가 그 징계 사주에 따르도록 지시했는지, 조만간 사법기관의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징계 사주자와 관련해 여러 제보를 받은 상태다. 기자회견장에서 그 이름이 불려질 날이 올 거다.
징계 사주자로 의심되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듯하다.
손에 쥔 권력이 평생 갈 줄 알았을 거다. 머지않아 그 손에 다른 게 채워질 거다. 그게 내가 평생 스포츠를 통해 배운 정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징계 사주자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핸드볼협회의 수장은 SK 그룹의 최태원 회장이다. 만약 징계 사주 세력이 있고, 그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였다고 보나.
최 회장님은 한국 핸드볼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신 고마운 분이다. 제게도 굉장히 감사한 분이다. 핸드볼협회가 최 회장님의 명예에 누가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 징계와 관련해 왜 계속 거짓말을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최 회장님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할 뭔가가 있는 건가? 모든 건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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