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후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경기후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스포츠춘추=신월]

메이저리그 6개 구단 스카우트들이 보는 앞에서 위력시위를 벌였다. 1학년 때 이후 처음으로 스피드건에 157km/h가 찍혔다. 고교 특급다운 잠재력을 발산한 심준석이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를 향해 한 발 가까이 다가섰다.

7월 15일 서울 양천구 신월야구공원. 평소에는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로 쓰이는 야구장 주변이 이날은 아침 일찍부터 수많은 인파로 북적댔다. 이날은 청룡기 고교야구 부산고-덕수고전이 열리는 날. 덕수고의 특급 유망주 심준석을 보러 많은 취재진과 스카우트, 야구 관계자들이 신월야구장에 몰렸다.

특히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는 한국인 스카우트는 물론 스카우트팀 고위 관계자가 직접 방문했고 그외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총 6개 구단 스카우트가 신월구장을 찾았다. 

ML 6개팀 스카우트 집결…심준석 “신경 안 쓰고 던졌다”

심준석을 주시하는 미국 구단 스카우트(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심준석을 주시하는 미국 구단 스카우트(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심준석은 팀이 3대 5로 뒤진 7회초 무사 2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처음에는 다소 긴장했는지 제구가 흔들렸다. 자꾸만 공이 날리고 스트라이크 존에서 멀리 벗어났다. 물려받은 주자의 도루 실패로 1아웃을 잡았지만, 바로 2번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견제 악송구에 2사후 몸에 맞는 볼까지 내주면서 위기가 계속됐다. 그러나 5번타자 이찬우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워 실점하지 않고 7회를 마쳤다. 7회 최고구속은 155km/h가 나왔다.

8회 첫 타자 볼넷 이후부터 조금씩 영점이 잡혔다. 심준석은 부산고 7-8-9번 타자를 차례로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첫 이닝 때 높게 빠지던 공이 조금씩 낮게 깔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진 가운데 하나는 느린 커브 결정구로 잡은 스탠딩 삼진이었다. 빠른볼 구속은 최고 156km/h가 나왔고, 일부 스피드건에는 157km/h가 표시됐다. 

9회는 완벽했다. 심준석은 부산고 1-2-3번 타자를 공 10개로 전부 삼진 처리하며 완벽하게 9회를 막아냈다. 8회부터 6타자 연속 삼진. 3루 쪽에 자리한 ML 스카우트 사이에서 옅은 탄성이 터졌다. 덕수고가 9회말 박상헌의 끝내기 안타로 6대 5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심준석은 청룡기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날 심준석은 최고구속 157km/h에 꾸준히 150km/h 강속구를 뿌렸다. 번트 상황에서 던진 148km/h짜리 1구를 제외한 모든 속구가 150km/h대를 기록했다. 

4사구 3개를 내줬지만 안타는 하나도 맞지 않았고, 아웃카운트 9개 중에 8개를 삼진으로 잡는 만화 같은 피칭을 펼쳤다. 6회까지 5점을 뽑은 부산고 타자들이 심준석 상대로는 인플레이 타구조차 하나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투구였다.

심준석을 격려하는 정윤진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심준석을 격려하는 정윤진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정윤진 덕수고 감독도 에이스의 호투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여러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오늘 심준석이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굉장히 좋은 투구였고 고무적인 경기였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심준석이 그간 훈련도 열심히 했고 몸 상태도 100%에 가까워졌다. 마인드 컨트롤도 잘 하고 있다. 팀을 위해 역할을 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남은 경기 심준석이 오늘처럼 던져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 경기(인상고 전)에도 무조건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심준석도 오랜만에 환한 미소와 함께 취재진 앞에 나섰다. 그는 “처음에는 너무 힘이 들어갔다. 오랜만의 등판이라 자신 있게 던져서 보여주자고 생각했는데, 마음만 앞서서 힘으로만 던지려다 보니 조금 불안했던 것 같다. 던지면서 조금씩 밸런스를 찾아 나갔다”고 했다. 

수많은 스카우트와 취재진 앞에서 던지는 게 부담되진 않았을까. 심준석은 “마운드 올라가기 전에만 ‘많이 왔네’라고 생각했다. 막상 마운드에 올라간 뒤에는 보이지도 않았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아픈 곳이 하나도 없고, 밸런스도 전보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경기를 지켜본 스카우트들도 ‘심준석이 다시 1학년 때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 메이저리그 구단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는 “1학년 때의 그 모습이 70% 정도는 나온 것 같다. 최근 심준석이 좋아졌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오늘 직접 보니 확실히 폼이 올라오는 게 보여서 고무적”이라 했다.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도 “공에 힘이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 이닝에는 1학년 때 이후 가장 좋은 공을 던졌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준석, 1학년 때 그 모습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 커졌다”

역투하는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역투하는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하나같이 심준석의 ‘1학년 때’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만큼 2년 전 덕수고 신입생 심준석의 첫 인상은 강렬했고, 야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심준석은 키 193cm-몸무게 98kg의 탈고교급 신체조건과 최고 156km/h 강속구를 앞세워 단숨에 고교 무대를 평정했다. 전국대회는 물론 주말리그, 연습경기까지 스카우트와 방송 카메라를 몰고 다녔고, ‘심준석 리그’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야구계를 뜨겁게 달궜던 심준석 신드롬은 지난해부터 한동안 소강상태였다. 심준석이 크고 작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좀처럼 마운드에 나오지 못하면서 흥이 깨진 탓이다. 

올해도 동계 훈련 기간 생긴 허리 통증 여파가 이마트배(2.1이닝 2실점)와 전반기 주말리그(1.1이닝 4볼넷) 부진으로 이어졌고, 황금사자기에선 아예 등판조차 하지 못하면서 우려를 낳았다. 

다행히 후반기 주말리그부터는 조금씩 정상 컨디션을 찾아나갔다. 우신고전 2이닝 5탈삼진 1실점, 장충고전 3.2이닝 4탈삼진 2실점에 마지막 우신고와 재대결에선 3.2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4사구 3개에 삼진 9개를 잡으며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그리고 청룡기 첫 등판 부산고 상대로 3이닝 노히트 무실점, 2경기 연속 노히트 행진을 펼쳤다. 최근 4경기 11.2이닝 5피안타 4사구 12개에 26탈삼진 평균자책 2.31로, 다소 많은 4사구만 제외하면 1학년 때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상당히 가까워진 모습이다.

한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팔 스윙 스피드가 확실히 좋아졌다. 팔 동작이 자연스러워지고 빨라지면서, 릴리스포인트도 어느 정도 일정하게 형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1학년때 구속인 156~7km/h를 다시 던졌다는 게 긍정적”이라 말했다.

이 스카우트는 “몸 상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암 스피드와 암 액션, 암 슬롯 등을 봤을 때 어깨와 팔꿈치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앞으로 등판하면서 점점 더 좋아질 것 같다. 1학년 때의 그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피칭이었다”라고 칭찬했다.

미국행으로 기운 심준석 마음…신인드래프트 판도 요동친다

투구를 마치고 돌아오는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투구를 마치고 돌아오는 심준석(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심준석이 1학년 때 모습에 근접하면 근접할수록, KBO리그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메이저리그와는 가까워진다. 

심준석은 올해초 ‘거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미국 진출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이날 많은 스카우트가 보는 앞에서 인상적인 공을 던지면서 미국행 꿈에 한발 더 가까워졌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복수의 야구 관계자는 “심준석이 미국 진출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학교 측에도 미국 진출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라스 에이전시에서도 미국행에 무게를 두고 물밑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심준석은 이와 관련 “어떻게 될지는 내가 하기에 달렸다. 운명에 맡기려 한다. 잘하면 잘 될 거고, 못하면 좀 아쉬울 것 같다”면서 “나중은 생각 안 하고 지금 팀을 위해 열심히 하자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구단이 올해 주어진 국제 스카우트 계약금 한도를 다 소진한 상황이지만, 심준석의 미국행에 큰 걸림돌이 되진 않을 전망이다. 현재는 마이애미, 캔자스시티 2개 구단만 50만 달러 이상 계약금을 쓸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계약 시기를 내년 1월 이후로 늦추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앞서 미국 진출이 확정된 엄형찬(경기상고)과 마찬가지로 선수 본인의 의사만 확고하다면 미국에 가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심준석 측 관계자는 “돈 때문이 아니라 선수 본인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심준석의 미국행이 확정될 경우, KBO리그 신인드래프트 판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당장 1순위 지명권을 쥔 한화 이글스부터 영향을 받는다.

한화 관계자는 “심준석의 미국 진출 가능성을 어느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도 “실제 미국 구단과 계약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기 이르다”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한화는 심준석을 계속 주시하면서 미국 진출에 대비한 ‘플랜 B’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유력한 대안으로는 김서현(서울고)과 신영우(경남고)가 거론된다. 심준석이 157km/h를 던진 이날, 김서현도 목동야구장에서 등판해 최고 155km/h 강속구를 던졌다. 신영우 역시 청룡기 첫 등판에서 152km/h를 기록했다. 

현장에서 만난 프로팀 스카우트는 “김서현, 신영우가 최근 급성장한 모습을 보이면서 심준석과 대등한 평가를 받을 정도가 됐다”면서 “심준석이 미국에 진출한다면, 1순위 한화보다는 그 뒤에 지명권을 행사하는 팀들이 더 머리아프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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