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안우진(사진=스포츠춘추DB)
키움 안우진(사진=스포츠춘추DB)

[스포츠춘추]

대표팀을 이끌 사령탑은 결정했지만 더 큰 난제가 남았다. 이강철 감독을 선임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야구 대표팀 앞에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의 국가대표 선발 여부를 결정하는 시한폭탄이 주어졌다.

현재 안우진은 논쟁의 여지 없는 KBO리그 최고의 투수다. 23일 현재 18경기에 등판해 10승 4패 평균자책 1.92를 기록하며 역사에 남을 시즌을 보내고 있다. 탈삼진은 131개로 단독 1위, 수비무관 평균자책(FIP)도 2.25로 리그 1위다. 투수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 역시 윌머 폰트(5.22승) 다음으로 높은 4.54승이다.

안우진의 속구 평균구속은 153.4km/h로 규정이닝 투수 중에 1위다. 로버트 스탁, 폰트 등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투수들보다 빠르다. 짦은 이닝을 던지는 불펜투수 고우석(152.9km/h)보다도 빠른 구속을 자랑한다. 10개 구단 체제가 출범한 2015년 이후 올 시즌 안우진보다 높은 평균구속을 기록한 투수는 아무도 없었다. 올해 리그 최고구속인 ‘160km/h’의 주인공도 안우진이다.

하지만 이 한국야구 최고의 투수는 한국야구를 대표해 국제대회에 나갈 수 없다. 안우진은 휘문고 시절 학교폭력에 연루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로부터 자격정지 3년 징계를 받았다. 징계와 함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프리미어12 대표팀에 선발될 자격도 영구적으로 잃었다.

그러나 내년 3월 열리는 WBC는 얘기가 다르다. WBC는 KBSA와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아닌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주관하는 대회라 KBSA 징계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 올림픽엔 못 나가는 안우진도 WBC는 나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안우진의 내년 WBC 대표팀 선발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야구팬은 물론 야구계에서도 찬반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기술위원회 한 관계자는 “이번 대표팀에서 가장 큰 화두는 감독이나 코치 선임이 아닌 안우진 발탁 문제가 될 것”이라 말했다. 

오승환-임창용은 징계에도 WBC 대표팀 발탁…안우진 막을 근거 없다

삼성 마무리 투수 오승환(사진=삼성)
삼성 마무리 투수 오승환(사진=삼성)

비슷한 논란은 과거 2017년 WBC 때도 있었다. 당시 KBO는 오승환과 임창용을 WBC 대표팀에 선발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오승환과 임창용은 2015년 국외 원정도박 파문을 일으켜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았다. KBO도 두 선수에게 시즌 50%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벌금형과 징계는 두 선수의 WBC 승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임창용은 WBC 예비엔트리와 최종엔트리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대표팀 훈련 기간 일본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벌금을 냈지만 계속 대표팀에 남았다.

오승환은 1차 예비엔트리에서는 제외됐지만, 최종엔트리 선발 때 김광현을 대신해 합류했다. 당시 오승환은 국외리그 소속이라 ‘KBO리그 복귀시 72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대표팀 합류에는 지장이 없었다. 

물의를 일으킨 징계 대상 선수들의 대표팀 선발은 WBC가 다른 국가대항전과 성격이 다른 대회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WBC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상업적 목적으로 개최하는 이벤트성 경기다. 까다로운 국가대표 선발규정도 적용되지 않고, 국가대표 선수가 받는 각종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국적이 아닌 혈통을 기준으로 대표팀을 뽑는 것도 다른 국가대표 경기와 다른 점이다.

WBC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와도 병역 혜택이나 연금, 각종 복지 같은 태극마크 특권은 없다. FA 등록일수 포인트(최대 60점)가 그나마 당근에 해당한다. WBC 출전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출전만큼 큰 명예나 상징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이벤트성 대회에 올림픽, 아시안게임과 동일한 선수 선발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선수 선발 기준이라면 이미 2017년 KBO가 명확하게 정해놓은 기준선이 있다. 그해 3차 이사회 당시 KBO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3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승부조작,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마약류 연루, 병역비리, 성범죄로 인해 KBO로부터 제재를 받은 자”를 “국가대표팀의 선수로 선발하지 않기로” 정했다.

학창 시절 학교폭력으로 징계받은 전력이 있는 선수를 선발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아직 만들지 않았다. 안우진은 이 문제로 이미 징계를 받았고 앞으로도 계속 받을 예정이지만, 그가 아마추어 협회에서 받은 징계는 WBC 선발 기준과는 무관하다. 규정이나 기준으로는 안우진의 WBC 출전을 막을 근거가 없다.

여론 비판에도 이미 프로야구 선수로 뛰고 있는데…WBC는 왜 안 되나

올 시즌 160km/h를 던진 안우진(사진=키움)
올 시즌 160km/h를 던진 안우진(사진=키움)

결국 남는 것은 실체가 불분명한 ‘여론’이다. 그런데 안우진은 이미 프로야구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할 프로야구에서 학교폭력 선수가 뛰면 안 된다’는 여론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런 여론의 존재가 안우진의 직업 활동을 막을 근거는 되지 못한다.

올 시즌 안우진이 리그 최고 에이스로 올라섰지만 그를 향한 비판 여론은 여전하다. 안우진이 등판할 때마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는 온갖 비난 글로 도배된다. 설령 안우진이 WBC에 나가서, 코빈 번스나 오타니 쇼헤이와 맞대결해 이긴다고 한들 부정적인 여론이 호의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승환-임창용이 WBC 대표팀에서 아무리 좋은 활약을 해도 사람들은 결코 도박사건을 잊지 않았다. 안우진의 WBC 출전이 학폭 사건에 대한 면죄부가 될 거란 우려는 WBC란 대회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WBC는 그만큼 비중있는 대회도 명예로운 대회도 아니다. 

과거의 잘못은 안우진이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할 주홍글씨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출처불명 게시물로 냄비같은 여론이 잠시 들썩였지만, 그렇다고 안우진의 학폭 연루 팩트가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안우진도 구단도 ‘대안적 진실’을 내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WBC에 다녀와도 안우진을 향한 평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판단은 KBO와 기술위원회의 몫이다. 비판 여론이 부담은 되겠지만 소신있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도덕적 평가나 대중의 기분이 전문가의 영역인 선수 선발을 좌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술위원회의 역할은 선발 기준 내에서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들로 최상의 대표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안우진이 WBC에 나가선 안 될 선수라면 이를 뒷받침할 기준부터 만들어야 한다. 

덧붙여 이번 기회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선수, 지도자 관련 명확한 기준도 세웠으면 한다. 한번 물의를 빚은 선수는 영원히 프로메테우스나 시지프스처럼 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일정 기간이 지나거나 기준을 충족하면 족쇄를 풀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수시로 바뀌고 극단을 오가는 여론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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