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의 새 마무리 김재웅(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키움의 새 마무리 김재웅(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스포츠춘추=고척]

9회초 최정의 2점 홈런으로 한 점 차가 됐을 때만 해도, 한유섬이 볼넷으로 출루할 때만 해도 고척스카이돔 키움 히어로즈 응원석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마도 적지 않은 키움 팬들은 전날 경기 9회의 악몽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마무리 투수의 난조로 다 잡은 승리를 날린 지난 4연패 기간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건 아닐까 등골이 서늘해진 팬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정작 9회 ‘극장’을 만든 주인공은 무덤덤했다. 3일 고척 SSG전에서 시즌 첫 세이브를 따낸 뒤 만난 키움 투수 김재웅은 “9회라고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8회랑 똑같았다”고 특유의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홍원기 감독은 올해 들어 다섯 번째 마무리 교체를 단행했다. 조상우의 군입대로 마무리가 사라진 키움은 김태훈으로 시작해 문성현, 이승호에게 마무리 역할을 맡겼지만 확실한 9회의 주인을 찾지 못했다.

2일 경기에선 좌완 이영준에게 9회를 맡겨봤지만, 결과는 역전패. 결국 3일부터 팀 불펜 에이스 김재웅을 마무리로 돌렸다. 올 시즌 리그 홀드 1위(27홀드)에 평균자책 0점대(0.99)를 기록 중인 최고의 불펜 투수가 9회 악몽을 끊어주길 바랐다. 만약 김재웅마저 무너지면, 자칫 팀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위험성이 컸다.

9회를 앞두고 3대 0으로 앞선 키움은 예정대로 9회초 김재웅을 마운드에 올렸다. 시작은 불안했다. 선두타자 안타, 이어 최정에게 던진 가운데 낮은 공이 좌월 투런 홈런으로 이어졌다. 3대 0 리드는 한순간에 3대 2 한 점 차로 좁혀졌다.

한유섬과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내줬다. 키움 관중석에는 적막이 흘렀고 SSG 관중석에선 큰 함성이 터졌다. 이어 투수땅볼과 고의볼넷으로 1사 주자 1, 2루. 장타 한 방이면 역전까지 내줄 수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재웅은 대타 김성현을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해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이어 이재원도 유격수 땅볼로 유도해 한 점차 승리를 끝까지 지켜냈다. 팀의 4연패 탈출을 이끈 시즌 첫 세이브. 지난해 4월 11일 롯데전 첫 세이브 이후 479일 만에 따낸 통산 2호 세이브다. 

키움의 불펜 에이스 김재웅(사진=키움)
키움의 불펜 에이스 김재웅(사진=키움)

경기후 취재진과 만난 김재웅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차분한 표정이었다. 세이브 상황이라 떨렸다, 팀이 연패중이라 부담됐다는 반응을 예상했지만 오히려 “팀이 이기고 있어서 막으려는 생각만 했다. 8회와 똑같았고 별다른 차이는 못 느꼈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정에게 홈런을 맞은 상황에 대해선 “첫 타자가 안타로 나간 뒤 주자를 더 쌓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최정 선배님께는 그냥 치라고 빠른 볼을 던졌는데, 잘 치셨다”고 설명했다. 세이브 상황의 중압감이나 부담 때문에 내준 홈런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김재웅은 3대 0이란 점수차를 염두에 두고 투구했다고 했다. 그는 “여유가 있으니까, (홈런을) 맞아도 경기 마감이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방 맞고 1점 차가 된 뒤로는 ‘이제 어렵게 해서 막아야지’라고 생각하고 바로 (패턴을) 바꿨다. 그러니까 막게 되더라”고 말했다.

8회 등판과 9회 등판에 정말 아무 차이를 못 느꼈는지 다시 한번 물었다. 김재웅은 “그냥 팬들이 좀 더 크게 응원하는 거, 상대팀도 더 응원 많이 하는 것 정도가 차이였다”고 말했다. 올 시즌 득점권(0.135), 1점차 이내(0.135), 하이 레버리지 상황(0.128)에서 절대 강자의 면모를 보여준 강심장다운 멘탈이다.

현재 홀드부문 리그 1위(27홀드)인 김재웅은 2위 LG 정우영(22홀드)에 5홀드 차로 앞서 있다. 마무리로 보직을 바꾸면 홀드 부문 타이틀을 정우영이나 다른 투수에게 내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쉽진 않을까.

김재웅은 “솔직히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팀을 위한 일이고 많이 이기면 좋은 거니까 괜찮다”며 “팀도 잘 되고 나도 잘 될 수 있다.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원기 감독은 김재웅에게 보직 변경을 통보하며 ‘한 단계 위로 올라갔다고 생각하라’는 조언을 건넸다고. 그는 “마무리가 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마무리는 누구나 하고 싶은 보직이고, 팀에서 한 명 밖에 못하는 보직이다. 자부심을 갖고 해보려 한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김재웅은 “내가 (마무리로) 나가는 상황이 많이 왔으면 좋겠고, 나가면 모든 경기를 다 이겼으면 좋겠다. 내가 나가면 블론 없이 이겼으면 좋겠다”면서 “하던 대로, 점수 쉽게 안 주고 잘 막는 피칭을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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