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타선은 일년 내내 이 분위기다(사진=LG)
LG 타선은 일년 내내 이 분위기다(사진=LG)

[스포츠춘추=대전]

수비시프트가 대유행한 지난 시즌, LG 트윈스는 시프트에 가장 호되게 당한 팀 가운데 하나였다. 

시즌초반 잘 맞은 안타성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서 아웃되는 상황이 반복되며 LG 타자들은 ‘멘붕’과 ‘현타’를 경험했다. 제주도까지 가서 돌고래도 못 보고 돌아오는 우영우처럼 축 처진 어깨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을 향했다.

당시 LG가 당한 피해는 기록으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LG는 팀타율 0.250으로 8위, 인플레이 타구 타율(0.287)로 꼴찌에 그쳤다. 특히 시프트의 주요 표적인 좌타자들의 타율이 0.256, BABIP 0.292로 리그 꼴찌였다. 

“작년에는 시프트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표정부터 달라진 LG 타선

LG 좌타자들의 2021년, 2022년 기록 비교(통계=스탯티즈)
LG 좌타자들의 2021년, 2022년 기록 비교(통계=스탯티즈)

류지현 감독도 그때를 기억한다. 12일 대전에서 만난 류 감독은 “타자들이 시프트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4월부터 타구가 시프트에 자주 걸리면서 선수들이 스트레스를 느낀 게 사실”이라 했다. 

지난해 4월 한 달간 LG는 팀타율 0.228에 BABIP 0.256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했다. 류 감독은 “타격하고 더그아웃에 들어올 때 타자들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완벽한 스윙으로 좋은 타구를 날리고도 아웃당하는 경험은 그 이후 타석에도 영향을 준다. 류 감독은 “자꾸 시프트에 걸리다 보니 다음 타석에서 다른 방향으로 치려고 하거나, 머릿속에 남아있는 시프트를 의식하다가 더 안 좋은 결과가 났던 것 같다”면서 “4월부터 전체적인 공격 지표가 떨어지다 보니 타자들 전체적으로 스트레스가 컸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달라졌다. 더는 작년처럼 LG 타자들이 시프트 때문에 악영향을 받는다거나, 막대한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인상은 들지 않는다. 사실 팀타율, 팀장타율, 팀홈런 1위를 달리는 팀에서 시프트 때문에 못 해먹겠다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언제든 기습번트가 가능한 박해민, 전성기 서용빈이 떠오르는 스프레이 히터 문성주 등이 가세하면서 타선 구성이 달라졌다. 류 감독은 “올해는 그런 부분을 잘 해결해 주는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조화로운 라인업 구성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LG 타선의 변화 가운데 가장 놀라운 점은 홈런과 장타의 증가다. 작년 타석당 1.99%였던 홈런이 올해는 2.41%로 크게 늘었다. 타수 대비 장타도 지난해 7.0에서 올해 7.9로 증가했다.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쓰면서 팀홈런 94개로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시프트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담장을 넘겨버리는 것’이라는 격언을 LG가 그대로 실천하는 중이다.

류 감독은 시프트를 의식해 반대편 쪽으로 갖다 맞히는 식의 타격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는 “시프트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밸런스가 흐트러진다”면서 “그날 하루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그 다음 경기, 이후 시즌을 치르면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혔다.

한국보다 훨씬 일찍 수비시프트가 보급된 메이저리그의 결론도 비슷하다. 취임 이후 꾸준히 ‘수비시프트 금지’를 검토해온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처음 시프트가 나왔을 때는 타자들이 반대편으로 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타자들의 선택은 반대편이 아닌 시프트 위로 치는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뉴욕 메츠, 시카고 컵스,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활약한 좌타자 대니얼 머피는 조 매든 감독이 알려준 ‘시프트 깨는 세 가지 방법’을 언급했다. 

그는 “첫째는 시프트를 피해서 치는 것으로, 단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내가 제일 잘하는 걸 못하게 되니, 상대 수비가 성공한 거라고 했다. 둘째는 시프트가 걸린 방향으로 치는 것인데, 역시 수비 성공이다. 마지막 방법은 내야수가 잡지 못하게 타격하는 것으로, 땅볼이나 내야뜬공이 아닌 장타를 노리는 방법”이라며 “나는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현수, 오지환의 지난 시즌과 올 시즌 비교. 타구방향 비율은 그대로다. 시프트를 피하려고 밀어치는 식의 타격을 하지 않았다(통계=스탯티즈)
김현수, 오지환의 지난 시즌과 올 시즌 비교. 타구방향 비율은 그대로다. 시프트를 피하려고 밀어치는 식의 타격을 하지 않았다(통계=스탯티즈)

LG 타자들은 머피가 말한 세 번째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시프트 때문에 종종 울상이 됐던 김현수, 오지환의 타구 방향은 올 시즌에도 큰 차이가 없다. 작년 김현수의 우측 타구 비율은 45.9%, 올해도 46.9%다. 오지환도 작년 우측타구 43.2%에서 올해는 46.7%로 오히려 우측 타구가 증가했다.

대신 우측 방향으로 날아가 그대로 담장을 넘어가거나, 수비 시프트를 뚫고 안타가 되는 타구가 많아졌다. 작년 0.301였던 김현수의 우측 타구 타율은 올해 0.392가 됐다. 오지환도 작년 우측타구 타율 0.297에서 올해는 0.310을 기록했고 센터방향 타구 타율도 0.412에서 0.469로 올랐다. 김현수는 22홈런으로 리그 2위, 오지환은 19홈런으로 이 부문 3위다. 

철저한 시즌 준비, 많은 훈련량 소화→배트스피드·타구질 향상 효과

시프트 위로 넘겨버리는 오지환(사진=LG)
시프트 위로 넘겨버리는 오지환(사진=LG)

류지현 감독은 ‘시즌 준비과정’에서 비결을 찾았다. 류 감독은 “우리가 시즌 준비할 때부터 훈련을 참 잘했다. 선수들도 몸을 잘 만들어서 캠프에 왔고, 그 전 겨울 국내 캠프를 하며 부족했던 점을 잘 보완해서 훈련 스케쥴을 짰다. 덕분에 전보다 많은 훈련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치진과 선수들의 교감 속에 다른 팀보다 실외에서 많은 타격훈련을 소화한 것도 LG의 특징이다.

류 감독은 “그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배트스피드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몸의 반응이 반 박자 정도 빨라지면서 장타로 이어지고, 땅볼 타구보다는 라인드라이브나 홈런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발사각이 자연스럽게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힘없이 굴러가 내야에서 잡히던 타구가 올해는 외야로 뻗어 가고, 초고속으로 수비수 사이를 통과하고 있다. BABIP 계산에선 빠지는 담장 밖으로 향하는 타구도 많아졌다. LG 타자들에게 더이상 수비시프트가 장애물이 되지 않는 이유다.

“최근에는 시프트에 잡혀 아웃당해도, 더그아웃에 들어올 때 크게 스트레스 받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는 류 감독은 “야구는 멘탈 게임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 부분도 크게 작용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타격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LG 타자들도 같은 표정이다. 올 시즌 내내 LG 더그아웃에는 미소와 웃음소리, 축하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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