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안경 에이스 김서현(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대표팀 안경 에이스 김서현(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스포츠춘추]

서울고 투수 김서현은 이른바 ‘Z세대’ 야구선수의 대표주자로 통한다. 개성 강하고 자기주장 뚜렷한 요즘 선수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선수가 김서현이다. 

멋진 고글이나 ‘국민 안경테’ 뿔테 대신 ‘최동원 스타일’ 금테안경을 쓰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 도수도 없는 안경을 쓰는 이유를 물어보니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기도 하지만, 원래 안경 쓰는 걸 좋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청소년대표팀 강화훈련이 한창인 2일 강릉고 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처음엔 꽃가루를 막으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몇 달 지나니 김서현하면 안경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더라. 이참에 계속 쓰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쓰고 있다”면서 “두산 이병헌 형이 쓰는 고글도 써봤는데 좀 불편했다. 뭘 하든 특이한 걸 즐기는 편이라 이 안경을 골랐다”고 말했다.

등번호도 최동원과 같은 11번, 유튜브 야구 동영상은 최동원의 현역 시절 영상을 주로 찾아본다. 김서현은 “요즘 야구 영상은 잘 보지 않는다. 변화구 던지는 법을 참고하고 싶어도 그립이 나오지 않아서 따라 하기 어렵다. 최동원 선배님 투구 영상만 계속 돌려본다”고 했다. 

2004년 태어나 2011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선수가 1980년대 전성기를 보내고 2011년 작고한 대선배를 롤모델로 삼는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마치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끼는 감각, 눈으로 보지 못한 장면이 마치 직접 눈으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와 닿는 체험. 동영상 플랫폼의 시대를 사는 세대의 특권이다.

“1순위로 한화 간다면? 팀이 더 좋은 성적 내는데 보탬 돼야죠”

김서현과 윤영철(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김서현과 윤영철(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자양중 시절 일찌감치 특급 유망주로 소문난 김서현의 잠재력은 선수들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서울고 유정민 감독과 만나면서 큰 꽃을 피웠다. 김서현은 “고교에 와서는 내 스타일에 맞는 훈련을 하게 됐다. 감독, 코치님께서 특정한 방식을 강요하시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서 운동한다”고 했다. 

마치 쿠바 투수처럼 스리쿼터와 사이드암을 오가는 특유의 투구폼도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했다. 속구, 커브, 체인지업, 스플리터, 슬라이더 등 다양한 변화구도 직접 던지면서 방법을 찾았다. 

김서현을 지도한 감독, 코치들은 ‘한 가지 폼으로만 던지라’거나 ‘변화구 던지지 말라’고 제약하지 않았다. 김서현은 “오히려 감독님은 ‘더 시도해 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러다 안 좋으면 다시 원래 폼으로 던지면 된다고 하셨다”면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직접 던져보면서 스스로 방법을 찾기도 한다”고 했다.

수시로 팔각도를 바꾸고 팔색조 변화구를 던지면서 안정적인 투구 밸런스를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서현은 그 어려운 걸 곧잘 해낸다. 올해 18경기 55.1이닝 동안 4사구 20개에 삼진 72개로 고교 강속구 투수 중에선 비교적 안정적인 제구력을 보였다. 김서현은 “어떤 폼에서든 밸런스 잡는 게 이제는 익숙해진 것 같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대표팀에서 활약을 다짐하는 김서현(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대표팀에서 활약을 다짐하는 김서현(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라이벌 심준석의 미국 진출 선언으로 김서현은 올해 신인드래프트 유력한 전체 1순위 후보로 꼽힌다. 연초 반반이었던 1순위 한화 이글스의 지명 가능성이 지금은 99.9%에 가까워졌다. 김서현도 “두산 경기만 보시던 부모님이 요새는 한화 경기를 보신다”며 한화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바 있다.

그는 “만약 한화에 가게 된다면, 팀이 더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1년 먼저 한화에 입단한 선배 문동주와 함께 운동장에 선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내년 한화가 북일고 김휘건, 혹은 용마고 장현석 가운데 하나를 지명하면 한화는 신인 지명에서 3년 연속 150km/h 강속구 에이스를 품에 안게 된다. 한화 팬들에게는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광경이다. 

김서현은 “동주 형에게 SNS 팔로우 신청을 했는데 아직 안 받아주셨다. KT 박영현 형은 바로 받아주셨는데…”라고 푸념(?)한 뒤 “나중에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하면, 그때는 받아주시지 않을까요”라면서 활짝 웃어 보였다. 혹시 문동주 선수가 이 기사를 읽는다면, 휴대전화를 열어 팔로우 신청 메뉴를 확인해 보기 바란다. 

“대표팀 선수단 분위기 최고…김서현도 연투 자청” 흐뭇한 최재호 감독

김서현의 전력 피칭(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김서현의 전력 피칭(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강릉고에서 만난 한 구단 스카우트는 “처음 김서현이 18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좀 걱정했었다”고 말했다. 

이 스카우트는 “김서현을 비롯해 ’자율야구’에 익숙한 서울권 선수들이 ’관리야구’를 추구하는 최재호 감독(강릉고) 스타일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조금은 우려가 됐다. 최 감독 스타일상 평소보다 훨씬 많은 훈련량을 소화할 텐데, 익숙하지 않은 선수들에게는 버겁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기우였다. 강릉에서 만난 최재호 감독은 “선수들 모두가 훈련에 잘 따라와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선수들이 하나같이 착해서 분위기도 좋고, 단합도 잘 된다. 팀 분위기만 따지면 이번 대표팀이 역대 최고”라고 칭찬했다. 김서현에 대해서도 “1일 연습경기에서 2.1이닝을 던졌는데, 2일에도 본인이 자청해서 던지겠다고 하더라”면서 흐뭇함을 감추지 않았다.

앞의 스카우트도 “걱정과 달리 김서현 등 서울권 선수들도 힘든 훈련에 잘 적응하는 모습이다. 보통 대표팀을 소집하면 꾀를 부리거나 분위기를 흐리는 선수가 한둘은 있게 마련인데, 이번 대표팀에는 그런 친구가 한 명도 없이 다들 팀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선수들이 하도 예뻐서 자꾸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길었던 머리를 짧게 깎고 대표팀에 합류한 김서현은 “솔직히 훈련이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미국에 가기 전까지 팀 스케쥴에 맞춰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일단 대회가 시작하면 매일 경기라서 지금처럼 훈련할 기회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서현은 “어려운 상황에서 등판해 위기를 막는 투수가 되는 게 목표다. 체질상으로는 마무리나 불펜이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선발이든 불펜이든, 내게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세계선수권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금테안경을 고쳐 쓰며 다짐하는 모습에서, 오래전 영상 속 최동원이 살짝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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