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와 정민태(사진=KBO)
김기태와 정민태(사진=KBO)

[스포츠춘추]

지난 25일 잠실과 인천에선 5회 종료후 ‘KBO 레전드 40’ 시상식이 열렸다. 잠실에선 ‘두목곰’ 김동주가 오랜만에 베어스 팬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고, 인천에서는 ‘악마 2루수’ 정근우가 인천 홈팬들 앞에 나섰다.

김동주와 정근우의 레전드 시상식은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김동주의 경우 레전드 선정 발표 당시만 해도 시상식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다. 이에 구단 개최 시상식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두산 구단의 대승적 결단으로 14년 만에 잠실벌에서 김동주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장관이 펼쳐졌다. 

정근우 역시 전성기를 보낸 두 구단(SK-현 SSG, 한화)이 적극적이지 않아, 은퇴 시즌을 보낸 팀 LG 트윈스가 대신 시상식 개최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판에 SSG가 나서면서 구단 개최 시상식이 성사됐다. 정근우는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팀(SSG)과 마무리한 팀(LG)의 축하를 받으며 시상식을 치렀고, 친정 팬들에게 사과 메시지를 전할 기회도 가졌다. 

백인천, 김기태, 정민태…팀 없는 레전드의 슬픔

시상식 없는 레전드들의 역대 소속팀과 활동 기간(표=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시상식 없는 레전드들의 역대 소속팀과 활동 기간(표=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비록 시상식까지 난관은 있었지만 그래도 김동주와 정근우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둘은 선수 시절 전성기를 보낸 홈구장에서, 친정팀 팬들의 박수 속에, 선후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레전드 시상식을 무사히 치렀다. 반면 레전드 40인 중에는 선수 시절 엄청난 실력과 인기를 자랑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원소속팀 주최 시상식이 물건너간 이가 적지 않다.

KBO리그 유일한 ‘4할타자’ 백인천 전 감독이 대표적이다. 백 전 감독은 KBO리그 원년 MBC 청룡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며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 4할대 타율(0.412)을 기록했다. 이후 1983, 4년에는 삼미 슈퍼스타즈 플레잉 코치로 선수 겸업을 이어갔다.

백 전 감독의 경우 특정구단을 소속팀으로 분류하기가 애매하다. MBC를 LG 트윈스가 인수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백 전 감독을 LG 레전드로 보긴 어렵다. 2년간 활약한 삼미는 오래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에 건강 등 개인 사정이 겹치면서 정규시즌 내 특정구단 주최 시상식이 어려운 실정이다.

김기태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코치도 정규시즌이 아닌 포스트시즌 KBO 주최 시상식 대상자다. 김 코치는 쌍방울 레이더스 레전드다. 1991년 쌍방울 창단 멤버로 입단해 1998년까지 리그 대표 좌타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후 1999년 삼성으로 이적해 3년간 활약했고, 2002년 SK로 팀을 옮겨 2005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전성기를 보낸 팀 기준이라면 쌍방울에서 시상식을 개최해야 하지만, 쌍방울은 1999년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선수단을 물려받은 SK 와이번스는 쌍방울과의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김 코치가 현역 생활 후반부를 보낸 삼성과 SSG 중에는 시상식 개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팀이 없었다고 알려졌다. 

KBO 관계자는 “올스타전을 앞두고 10개 구단에 레전드 40 명단을 배포하고, 시상식 개최 계획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구단에서 개최 의사를 전달하면 KBO에서 일정을 조율했다”고 설명했다. 내부적으로 검토할 시간은 충분했다. 복수 구단 간 조율도 마케팀 팀장 연락망을 통해 충분히 가능한 부분. 현재까지 개최 의사를 전달하지 않았다는 건, 삼성과 SSG 구단 차원에서는 시상식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소속팀이 사라져서 피해를 보는 레전드가 또 있다. 리그 역사상 최고의 우완투수 중 하나인 정민태 전 코치다. 정 전 코치는 1992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데뷔해 현대 유니콘스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2008년 우리 히어로즈(현 키움) 창단 과정에서 방출당해, KIA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은퇴했다. 

히어로즈 역시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을 물려받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는 무관한 프랜차이즈다. 키움 관계자는 “구단 차원에서 정민태 전 코치의 시상식 개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은퇴 시즌을 보낸 KIA 역시 시상식 계획이 없어, 정 전 코치 시상식은 KBO 소관으로 넘어가게 됐다. 

태평양-현대 팬 출신으로 현재 키움을 응원하는 김진태 씨는 “도원야구장(숭의야구장) 시절부터 정민태 코치를 응원했다. 정 코치야말로 1990년대 이후 KBO리그 최고의 우완투수라고 생각한다. 당시 정 코치를 응원했던 팬 중에 지금도 키움이나 SSG를 응원하는 야구팬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 대선수의 레전드 시상식이 열리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고 크게 아쉬워했다. 

실제 정 전 코치는 팬 투표에서 10.23점의 높은 점수를 받아 총 점수 67.67점으로 레전드 전체 18위에 올랐다. 10.23점은 전체 2위 고 최동원(팬 9.99점)이 받은 점수보다도 높은 점수. 그만큼 정 전 코치의 현역 시절 활약이 팬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친정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정 전 코치는 ‘팀 없는 레전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민태 전 코치는 스포츠춘추와 통화에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현실이 그런데 어쩌겠는가”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내 경우 소속이 참 애매하다. 현대의 뒤를 이은 팀은 키움이지만, 현대 시절 인천에서 우승한 걸 생각하면 SSG와 연결되는 면도 있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현실이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이란 입장을 밝혔다.

우동수 트리오 가운데 김동주만 시상식…우즈-심정수는 왜 불발됐나

우즈와 심정수(사진=KBO)
우즈와 심정수(사진=KBO)

한편 두산 베어스 전성기를 이끈 ‘우동수 트리오’ 가운데 타이론 우즈, 심정수도 구단 주최 시상식은 어려울 전망이다. 우즈는 구단에서 연락을 취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취재 기자는 “몇 달 전 개인적으로 우즈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아직 답이 없다”고 했다. 김동주는 레전드 시상식에서 “우즈가 부동산 사업 때문에 바쁜 것 같다”고 대신 근황을 전했다.

또 홈런왕 심정수는 KBO의 설명을 빌리면 ‘복수 구단’에서 접촉을 시도하긴 했다고. 하지만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어, 레전드 본인이 행사 참석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레전드 선정 이후 도박으로 실형을 받은 임창용은 구단도, KBO 차원에서도 시상식 계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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