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승엽 감독이 호주 시드니 스프링캠프에서 부임 첫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두산 이승엽 감독이 호주 시드니 스프링캠프에서 부임 첫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스포츠춘추]

2022년은 두산 베어스에 잊고 싶은 한 해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이 끊긴 데다 창단 첫 9위로 추락까지 맛본 까닭이다. 참혹했던 실패의 대가도 있었다. 장기 집권 가도를 달렸던 김태형 전 감독이 물러나고 이승엽 신임감독이 부임했다. 또 다른 ‘뉴 베어스’의 출발점이 됐다. 

이승엽하면 떠오르는 별명인 ‘라이온 킹’처럼 이 감독에겐 삼성 라이온즈의 색채가 강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두산 유니폼을 입은 뒤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베어스 색채를 뽐내고 있다. 두산 관계자들은 “생각보다 더 겸손하시고, 생각보다 더 영리하신 분이더라. 슈퍼스타 출신답지 않게 선수들의 마음도 더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능력도 출중하신 게 느껴진다”라며 입을 모은다. 

이 감독과 두산 선수단은 2023시즌 준비 장소로 호주 시드니를 택했다.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 베이스볼 센터 메인 야구장 기둥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주역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영웅들의 이름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이 감독이다. 한국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그 순간처럼 이 감독도 두산 사령탑으로서 KBO리그 판을 새롭게 뒤흔들 준비에 나섰다. 

맹수인 사자와 곰이 만나면 야성 본능이 일깨워진다. ‘라이온 킹’과 ‘베어스’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이 감독이 가장 강조하는 과제 하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곰’다운 야생 본능을 되찾는 그림이다. 스포츠춘추가 그 과제를 꼼꼼하면서 영민하게 풀고 있는 이 감독의 속내를 시드니 스프링캠프에서 직접 들어봤다.  

시드니 새벽 5시마다 떠지는 눈…사령탑 데뷔 시즌 앞둔 이승엽 감독도 고뇌한다

이승엽 감독(사진 오른쪽)은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에게 편안하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다(사진=두산)
이승엽 감독(사진 오른쪽)은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에게 편안하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다(사진=두산)

선수가 너무 많아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단 얘기도 들립니다. 스프링캠프 초반 지켜본 두산 선수들은 어떻습니까.

정말 감독 눈으로는 다 좋아 보입니다(웃음). 선수들이 진짜 열심히 하고 성실하면서도 훈련받는 표정이나 하려는 의지까지 좋아 보여요. 아무래도 스프링캠프에 많은 숫자의 선수단이 오면 안 좋은 것도 보이고 분위기 역시 다운될 수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안 보입니다. 감독인 저는 행복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캠프 초반 가장 놀랐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선수들보다는 현장 스태프들에게 가장 놀랐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을 때 즉각 반영이 돼서 개선이 되더라고요. 불펜 투구장 시설도 그렇고 코치진에서 요청하면 빠르게 움직여주신 덕분에 훈련에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훈련 보조나 전력 분석 파트에서도 문제없이 일사천리로 움직여준 덕분에 만족스러운 캠프를 보내고 있습니다.

선수로만 보던 스프링캠프를 감독의 눈에서 보면 어떤 점이 가장 다릅니까. 

우선 시간이 더 많아서 두루두루 넓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선수 때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다른 걸 볼 여유가 없었죠. 캠프 초반엔 투수 파트를 가장 신경 써서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체력적으로는 널널 합니다(웃음).

밤에 잠은 잘 오십니까. 

잠은 잘 안 오죠(웃음). 고민이 많은 건지 새벽 5시 정도 되면 잠이 깨더라고요. 시즌 준비를 어떻게 해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팀 청백전과 연습경기 때는 어떤 점을 지켜봐야 하고 어떤 점을 요구해야 할지 여러 걱정이 듭니다. 잘 안 풀렸을 때 돌아가는 방법도 필요하니까 고민도 많아지고요. 그래도 지금까지는 아픈 선수가 없는 건 정말 다행입니다.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먼저 말을 걸어주고 대화해주는 게 편안하고 고맙다는 선수들의 얘기도 들립니다. 

제가 먼저 말을 안 걸면 선수들이 말을 안 걸지 않겠습니까(웃음). 눈 마주쳤는데 그냥 가면 서먹하니까 제가 뭐라도 말을 걸어야죠. 선수들 가운데선 (김)인태가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고 있고요. 캡틴 (허)경민이, (김)재호, (양)의지, (정)수빈, (양)석환이 다 성격이 밝고 좋아서 얘기 나누기가 굉장히 편합니다. 

선수들도 감독 눈에 잘 보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지난해 가을 마무리캠프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건 다 지켜봤습니다. 지금 당장 누구에게 잘 보여야겠단 생각은 욕심이 아닐까 싶어요. 마무리캠프부터 비시즌 동안 노력한 것만 보여줘도 충분합니다. 개막전까지 선수단 숫자를 줄여야 하니까 선수들이 알아서 잘하겠죠. 개인적으로는 선수 한 명 한 명 모두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WBC 대표팀으로 떠나는 세 선수(포수 양의지, 투수 곽빈·정철원)엔 걱정이 없습니까. 

세 선수는 지난해 실적이 좋고 팀에 없으면 안 될 존재니까요. WBC 대표팀으로 믿고 보냅니다. 단 하나 부상 없이 몸 관리에 신경 쓰면서 대회를 치르고 돌아오면 괜찮을 듯싶어요. 특히 젊은 두 투수는 국가대표 경험을 통해 한 단계 더 크게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고 봅니다. 전혀 걱정 안 합니다.

양의지 선수와는 짧은 시간만 보내서 아쉽겠습니다. 

항상 최고의 기대치를 받는 선수인데 ‘역시 좋은 선수구나’라는 걸 짧은 시간에 느꼈습니다. 젊은 투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걸 보면서 베테랑 포수는 베테랑 포수라는 걸 느꼈고요.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만큼 양의지 선수를 믿고 신뢰하기에 잠시 팀은 잊고 대표팀에 모든 걸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5선발·유격수 경쟁이 가장 치열, ‘좌완’ 최승용·‘베테랑’ 김재호 눈에 들어와.”

이승엽 감독은 스프링캠프 초반 투수 파트에 가장 신경 쓰고 있다. 특히 좌완 투수들의 불펜 피칭은 빼놓지 않고 지켜본 이 감독은 직접 불펜장 타석에 들어서서 공을 지켜보기도 했다(사진=두산)
이승엽 감독은 스프링캠프 초반 투수 파트에 가장 신경 쓰고 있다. 특히 좌완 투수들의 불펜 피칭은 빼놓지 않고 지켜본 이 감독은 직접 불펜장 타석에 들어서서 공을 지켜보기도 했다(사진=두산)

2023시즌 선발 로테이션은 다 구상하셨습니까. 

외국인 투수 2명(라울 알칸타라, 딜런 파일)에 곽빈, 최원준까지는 다른 큰 문제가 없다면 선발 로테이션으로 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곽빈의 경우엔 WBC 대회 참가 뒤 컨디션을 살펴봐야 하고요. 

5선발 자리가 하나 남았는데 최승용 선수에 대한 언급이 계속 나옵니다. 

5선발 자리에서 최승용 선수뿐만 아니라 박신지, 김동주 선수도 경쟁을 펼칠 수 있습니다. 다만, 좌·우 밸런스를 고려하면 아무래도 최승용 선수가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는 게 팀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장원준 선수도 지금 공이 좋지만, 팀 미래를 생각했을 때도 최승용 선수가 선발 자리를 맡아주는 게 베스트죠. 

다카하시 인스트럭터에게 최승용 선수 특별 관리를 부탁했다고 들었습니다. 

선발 체력과 변화구에서 아직 최승용 선수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다른 젊은 좌완인 이병헌 선수도 마찬가지고 경험이 떨어지는데 구질이 단순한 면도 있어요. 속구와 슬라이더 투 피치보다는 커브나 체인지업을 더 던져야 수 싸움에서 유리해지니까요. 다카하시 인스트럭터가 변화구, 특히 체인지업 지도에 장점이 있기에 그런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두 젊은 좌완에 장원준 선수까지 좋은 공을 던져준다면 팀 마운드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봅니다. 

 

야수진 가운데 가장 경합인 포지션은 어디입니까. 

포수 자리 빼고는 다 주전 싸움이 펼쳐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격수 자리가 가장 경합이지 않을까요. 솔직히 김재호 선수가 이제 실력이나 몸 움직임이 상당히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캠프 초반 지켜보니까 아직까지 좋아 보이더라고요. 사실 경기 후반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개막전 선발로도 충분히 나갈 정도로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안재석 선수나 이유찬 선수도 있으니까 경쟁이 정말 치열할 겁니다.

외국인 타자인 호세 로하스 수비 포지션은 정리가 됐습니까. 내·외야 수비 포지션 모두 소화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팀 상황을 고려했을 때는 호세 로하스 선수가 우익수 자리로 나가주는 게 가장 깔끔할 듯싶습니다. 사실 지금 로하스 선수의 몸 상태가 100%는 아닙니다. 미국에선 지금 시점에서 이런 강도로 훈련하는 게 흔치 않으니까요.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천천히 주려고 합니다. 

포스트 김재환 후보로 눈에 들어오는 타자가 있습니까.

18번(웃음). 우리 김민혁 선수가 양석환 선수하고 1루수 자리와 지명타자 자리에서 로테이션을 해준다면 충분히 자기 힘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캠프 초반 상태는 굉장히 좋은데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은 슬럼프와 부딪혔을 때 다시 치고 올라갈 힘을 보여주는가도 고이장히 중요하죠. 그런 부분을 잘 풀어간다면 우리 팀 타선에 굉장히 도움될 겁니다.

“감독이 헛짓거리만 안 하면 된다.” 이승엽 감독 2023년 목표는 ‘최소’ 가을야구다

이승엽 감독은 2022년 9위로 추락한 두산을 다시 끈질긴 맹수본능을 보여주는 팀으로 돌아오게 만들고자 한다(사진=두산)
이승엽 감독은 2022년 9위로 추락한 두산을 다시 끈질긴 맹수본능을 보여주는 팀으로 돌아오게 만들고자 한다(사진=두산)

팀 타순은 머릿속으로 자주 구상하고 있습니까. 

지금 팀 타순을 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캠프에 선수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현재로선 우선 김재환 선수만 4번 타자 자리에 고정입니다. 김재환 선수가 살아나면 우리 팀 타선이 굉장한 폭발력을 지닐 겁니다. 뒤에 양의지 선수와 양석환 선수가 받쳐줄 수 있기에 팀 타선에서 키 플레이어는 김재환이고요. 고토 코치에게 주어진 특명도 ‘김재환을 살려라’입니다(웃음).

젊은 선수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는 캠프 분위기인 것도 눈에 들어옵니다. 

아직까지 경기를 안 해서 그런 걸까요(웃음). 선수들 모두 훈련 내내 하려고 하는 의지와 노력이 보여서 흐뭇합니다. 젊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큰 데 그런 부분에서 먼저 장점을 살려주는 노력이 필요한 듯싶어요. 우리 코치들이 젊은 선수들의 기를 잘 살려준다면 정말 무섭게 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23년 두산 베어스는 어떤 팀이길 바랍니까. 

상대 팀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모르는 팀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잠깐 넋 놓고 있다면 뒤집힐 수 있겠다고 느끼는 거죠. 아웃 카운트 27개가 끝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는 팀이 되길 바랍니다. 상대팀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경기를 보여줬으면 해요. 지더라도 원사이드하게 끝내는 게 아니라 끝까지 해보는 거죠. 거기에 기본을 잘 지키고 화려한 것보단 건실한 플레이에 집중했으면 합니다. 

얘길 들어보니 데뷔 시즌을 치러야 할 감독으로서 준비할 게 더 많아 보입니다. 

솔직하게 저희 팀이 지금 9위 전력은 아니지 않습니까. 팀 전력이 좋기에 감독만 잘한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을까요. 감독이 헛짓거리만 안 한다면 충분할 겁니다(웃음). 그래서 저도 코치들과 자주 논의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준비만 잘 된다면 가을야구는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최대한 높은 곳에서 가을야구를 시작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더 높이 올라간다면 당연히 좋겠죠. 그런데 건방지게 제가 부임 첫 해부터 한국시리즈를 가겠다고 말하는 것보단 그냥 모든 게임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물론 가을야구는 ‘최소’ 목표라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하위권에 있으려고 준비하는 팀이 없으니까요. 남은 캠프 기간 잘 준비해서 더 단단하고 강한 두산 베어스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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