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U 기술위원에 당선된 김소희 빙상연맹 심판이사

-“김 이사는 코치 시절 선수 구타로 큰 공분 샀던 인물”

-“약하게 때려도 심하게 아픈 관자놀이나 명치를 주로 때렸다.”

-“2000년대 초반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형제복지원이나 다름없었다.”

-빙상연맹 “10년 지나 김 이사 징계 여부 확인할 수 없다.”

-구타로 사회적 파문 일으켜도 시간 지나면 승승장구하는 빙상계

6월 8일 열린 '제57회 ISU 총회'에서 ISU 쇼트트랙 기술위원으로 선출된 김소희 빙상연맹 심판이사(사진=엠스플뉴스)
6월 8일 열린 '제57회 ISU 총회'에서 ISU 쇼트트랙 기술위원으로 선출된 김소희 빙상연맹 심판이사(사진=엠스플뉴스)

지도자들의 선수 구타야말로 빙상계의 고질적 병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적 문제가 돼도 그때뿐이에요. ‘상습 상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도 지금은 시끄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화려하게 다시 빙상계로 돌아올 겁니다. 그게 대한민국 빙상계의 전통 아닌 전통이니까요. - 6월 25일 조재범 전 코치의 구속영장 기각을 지켜본 빙상인 -

[엠스플뉴스]

'상습 상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가운데 대한빙상경기연맹 김소희 심판이사의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기술위원 당선을 두고 빙상인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의 한 빙상인은 김 이사는 과거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시절 선수들을 때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긴 인물이라며 당시 사건과 관련해 지금껏 단 한 번도 공식사과한 적이 없는 김 이사가 무슨 명분으로 한국 빙상계를 대표해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발끈했다.

실업빙상단 코치로 일하는 A 씨 역시 김 이사는 선수 구타 파문 이후 한동안 빙상판에서 사라졌다가 역대 빙상연맹 수뇌부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복권된 사람이라며 빙상연맹이 어떤 근거로 김 이사를 ISU 기술위원 후보로 선정했는지 투명하게 밝히길 요구한다고 목소릴 높였다.

“2000년대 초반 쇼트트랙 대표팀은 공포로 가득한 형제복지원이었다. 김소희 코치의 상습폭행으로 선수들이 태릉선수촌 집단 이탈했다.”

ISU 기술위원은 국제 선수권대회 일정 편성, 규정 위반 여부 판단, 종목별 주요 정책 입안 등 핵심 사안들에 대한 의결권을 갖는 요직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ISU 기술위원은 국제 선수권대회 일정 편성, 규정 위반 여부 판단, 종목별 주요 정책 입안 등 핵심 사안들에 대한 의결권을 갖는 요직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김소희 빙상연맹 심판이사의 ISU 쇼트트랙 기술위원 당선 소식이 알려진 건 6월 8일(한국 시간)이다. 이날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57회 ISU 총회’에서 김 이사는 3명을 뽑는 쇼트트랙 기술위원(TC) 선거에 출마해 가까스로 3위로 당선됐다.

ISU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빙상인은 “ISU 기술위원은 국제 빙상계에 해당 종목과 관련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국제 빙상계의 여러 인사와도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기에 많은 빙상인이 탐내는 자리”라며 과거 전명규 전 부회장이 ISU 내부 실력자로부터 정보를 빼내면서까지 가고 싶어 했던 자리가 바로 ISU 기술위원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의 당선 소식이 알려지자 빙상계는 “한국 빙상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면서도 동시에 “김 이사가 과연 한국 빙상을 대표할 만한 인물인지 의문”이라는 부정적 반응을 내놨다.

2004년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직접 작성했던 자술서. 자술서엔 ‘반지 낀 주먹으로 폭행 당했다’ ‘코치가 신발로 얼굴을 때렸다’ ‘너무 무섭고 비참하고 죽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2004년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직접 작성했던 자술서. 자술서엔 ‘반지 낀 주먹으로 폭행 당했다’ ‘코치가 신발로 얼굴을 때렸다’ ‘너무 무섭고 비참하고 죽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그렇다면 어째서 빙상계는 김 이사의 ISU 기술위원 당선 소식에 부정적 반응을 내놓은 것일까. 과거 김 이사의 ‘선수 구타 전력’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빙상인 B 씨는 김소희 이사가 대표팀 코치로 있을 때 많은 여자 쇼트트랙 선수가 김 코치와 최광복 코치의 상습적인 구타와 폭언으로 죽을 결심까지 했다두 코치의 상습적인 구타와 비인간적인 대우로 결국 선수들이 선수촌을 집단 이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을 집단 이탈하며 한국 체육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선수들은 자술서를 통해 코치가 선수 엉덩이를 스케이트 날집으로 마구 때리고, 엎드려뻗쳐 한 선수가 쓰러지면 목덜미를 잡고 계속 때렸다. 남자도 이렇게 맞을 순 없을 것이라며 (코치들로부터)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맞았다는 충격적인 구타 사실을 폭로했다.

B 씨는 연습 때만 맞은 게 아니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코치 방에 불려가 수시로 맞았다. 하키채로 맞는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B 씨와 비슷한 시기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한 C 씨는 더 충격적인 증언을 들려줬다.

운동을 못 해 맞는 건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선수들이 맞은 대부분의 이유는 빙상장 밖에서의 사소한 일들 때문이었다. 핸드폰으로 가족에게 안부전화를 건다거나 취침시간을 엄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는 게 일상이었다. 한번은 선수촌 식당에서 우연히 남자 선수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밥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로 코치들에게 매질을 당했다.

2000년대 초반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의 훈련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한 빙상인은 예전 ‘그것이 알고 싶다’란 프로그램에 봤던 형제복지원만큼이나 무서웠던 곳이 바로 2000년대 초반 쇼트트랙 대표팀이다. '메달을 위해서라면 뭐든 괜찮다'는 빙상연맹의 묵인과 비호 속에 지도자들이 툭하면 선수들을 때렸다 이후에도 '폭력지도자'에 대해 빙상연맹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면서 최근까지도 선수구타가 이어져왔다 탄식했다.

사회를 큰 충격에 빠트렸던 여자 쇼트트랙 선수 폭행사건에도 승승장구했던 ‘구타 지도자들’. 빙상연맹 “10년이 훨씬 지나 김소희 코치 징계 사실 확인할 수 없다.”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 심석희를 비롯해 여러 선수를 때려 ‘상습 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조재범 전 대표팀 쇼트트랙 코치.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이 터졌을 때 빙상연맹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타가 전통처럼 이어져왔다. 빙상계에선 조 전 코치도 2004년의 구타 지도자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화려하게 빙상계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 빙상연맹이라면 10년만 지나도 조 전 코치의 징계기록은 확인 불가능하다(사진=엠스플뉴스)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 심석희를 비롯해 여러 선수를 때려 ‘상습 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조재범 전 대표팀 쇼트트랙 코치.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이 터졌을 때 빙상연맹은 ‘재발방지’를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타가 전통처럼 이어져왔다. 빙상계에선 조 전 코치도 2004년의 구타 지도자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화려하게 빙상계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금 빙상연맹이라면 10년만 지나도 조 전 코치의 징계기록은 확인 불가능하다(사진=엠스플뉴스)

세상은 잊었을지 모르나, 대표팀 코치들로부터 상습폭행 당한 선수들은 여전히 ‘구타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김소희 빙상연맹 심판이사는 이 일로 당시 어떤 징계를 받았을까.

엠스플뉴스는 빙상연맹에 김 이사의 과거 징계 여부를 질의했다. 하지만, 빙상연맹이 들려준 답변은 과거 징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였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문서 보존 연한을 10년으로 잡는데 2004년 사건이면 10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징계 관련) 문서를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 연맹 차원에선 징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당시 언론은 여자 쇼트트랙 구타 파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어느 언론 기사에서도 김소희, 최광복 코치의 구체적 징계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 빙상연맹 이사진에 있던 빙상인은 삼성 출신의 박성인 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두 코치의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구타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당시 빙상연맹 강화위원장이던 전명규 한국체육대학교 교수가 뒷수습을 책임진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빙상연맹의 흐지부지 마무리 덕분일까.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을 구타했던 최광복 코치는 2005년 멀쩡하게 강릉시청 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2009년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로 복귀하고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최 코치는 ‘안현수 후폭풍’으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런 최 코치에게 빙상연맹은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고서 포상금으로 2천만 원을 안겼다. 대한체육회 역시 체육상 시상식에서 지도 부문 수상자로 최 코치를 선정했다.

동양대 홈페이지에 명기된 김소희 동양대 교수의 프로필. 이 프로필만 보자면 김소희 빙상연맹 심판이사는 2004년 '선수 구타 파동'이 벌어진 지 1년만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과 서울시빙상경기연맹 심판이사를 맡았다. 선수들은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맞았'지만, 그 구타를 실행한 이들은 공식 사과없이 승승장구했다(사진=동양대 홈페이지)
동양대 홈페이지에 명기된 김소희 동양대 교수의 프로필. 이 프로필만 보자면 김소희 빙상연맹 심판이사는 2004년 '선수 구타 파동'이 벌어진 지 1년만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과 서울시빙상경기연맹 심판이사를 맡았다. 선수들은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맞았'지만, 그 구타를 실행한 이들은 공식 사과없이 승승장구했다(사진=동양대 홈페이지)

그렇다면 김소희 코치는 어떻게 됐을까.

승승장구하긴 김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 코치는 서울대 스포츠산업연구소에서 주임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2014년 한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등장해 소치 동계올림픽 해설을 맡았다.

빙상연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빙상인은 김재열 회장, 전명규 부회장이 빙상연맹을 이끌던 시절 김 코치가 화려하게 빙상계 전면에 재등장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여러 의문표가 쏟아지는 가운데 조직위원회 스피드스케이팅 베뉴 매니저를 맡아 활동했다고 전했다.

2018년 6월 김소희 빙상연맹 심판이사는 ISU 쇼트트랙 기술위원에 당선되며 이제 활동 보폭을 국제무대로까지 넓히게 됐다.

“김소희 코치, 약하게 때려도 심하게 아픈 관자놀이나 명치를 주로 때렸다.”

ISU 신임 쇼트트랙 기술위원들과 기념촬영한 김소희(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빙상연맹 심판이사(사진=ISU)
ISU 신임 쇼트트랙 기술위원들과 기념촬영한 김소희(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빙상연맹 심판이사(사진=ISU)

김 이사의 승승장구를 보며 그에게 ‘구타당한 기억’을 지금도 안고 사는 이들은 대한민국에 정의가 있는지 묻고 있다.

김 이사가 코치였던 시절, 그에게서 상습 구타를 당했던 여성 빙상인 C 씨는 김 이사는 상습폭행과 폭언을 최광복 코치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만, 2003-2004년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에서 폭행과 폭언을 행사한 이는 김소희 코치 한 명뿐이었던 걸 선수들은 잘 알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2003-2004년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에서 선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김소희 코치였다. 최광복 코치가 가세한 뒤 폭행 강도가 세졌을 뿐이다. 최광복 코치는 주먹과 발길질은 물론 주변 물건이 잡히는 데로 여자 선수들에게 던졌다. 그럴 때마다 김소희 코치는 최광복 코치를 거들었다.

특히나 마르고 힘이 약했던 김소희 코치는 선수들을 때릴 때면 항상 약하게 때려도 심하게 아픈 관자놀이나 명치를 때렸다.

빙상연맹은 '10년이 넘게 흘러 김소희 코치 징계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말로 이젠 심판이사가 된 김소희 코치를 여전히 감쌀지 모른다. 하지만, 그분한테 죽도록 맞았던 우리들의 기억까지 지울 순 없을 거다.

대한민국에 정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정의가 있다면 지금껏 공식사과 한마디 없는 김소희 코치가 한국 빙상계를 대표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지금의 기막힌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취재 후 : 엠스플뉴스는 김소희 심판이사에게 사실관계 확인 차 수차례 연락을 취했다. 수차례 연락 끝에 김 이사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질문지를 보낸 뒤에도 답변은 오지 않았다. 엠스플뉴스는 김 이사가 반론을 제기할 시 이를 충실히 반영할 계획이다.

박동희, 이동섭 기자 dhp1225@mbcplus.com

관련 기사 : [엠스플의 눈] ‘조재범 영장기각’, 국가대표와 국회의원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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