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에서 포수 미트 제작 장인으로 거듭난 사나이
-“국가대표팀 선수 글러브에 적힌 일본 브랜드 보고, 사업 시작”
-“‘국산 브랜드’라는 편견과 싸워, 포수 맞춤형 미트 생산에 집중”
-“미트 제작은 모든 공정이 수작업, 하루 최대 4~5개 정도 생산”
-“미트 품질이 최우선 요소, 포수들 활약상에 울고 웃는다.”

포수 미트 전문 제작 업체 원에이티 박정호 대표(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포수 미트 전문 제작 업체 원에이티 박정호 대표(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김포]

포수 미트 전문 제작업체 ‘원에이티’ 박정호 대표는 포수 외길만 걷은 미트 장인이다. 어릴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박 대표는 직장을 다니며 사회인야구에서 포수 역할을 맡아 야구 사랑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박 대표는 TV 중계에 나온 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글러브에 새겨진 국외 브랜드 로고를 보고 큰 결심을 내렸다.

한일전 맞대결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글러브에 일본 업체 글러브 로고가 새겨져 있더라고요. 그 순간 대표팀 선수들도 낄 만한 국산 글러브를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기존에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글러브 제작 기술을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2012년 ‘원에이티’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한 박 대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포수 포지션에 사용되는 미트 제작에만 집중한 것이었다. 그 결과 원에이티는 현재 국산 글러브 브랜드 가운데 포수 미트에 있어선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프로팀 소속 포수들과 아마추어 포수들, 그리고 사회인야구에서도 가장 각광받는 포수 미트 제작 업체가 됐다.

엠스플뉴스는 원에이티를 직접 찾아 박 대표에게 최고의 미트를 제작하는 비결과 야구와 포수 포지션을 향한 진한 애정을 들어봤다.

‘국산 브랜드’라는 편견과 싸워야 했다

원에이티 회사에 걸린 포수 미트 제품군. 원에이티는 포수 미트 제작에 특화된 업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원에이티 회사에 전시된 미트 제품군. 원에이티는 포수 미트 제작에 특화된 업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회사 곳곳에 가득 찬 포수 미트가 인상적입니다. 글러브 사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10여 년 전 야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는데 한국 선수들의 장비에 다 일본 브랜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일전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니까 무언가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국산 브랜드를 직접 만들어보자고 큰마음을 먹었죠.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요(웃음).

야구를 정말 좋아해야 할 수 있는 결단입니다.

어릴 때부터 동네야구를 했습니다. 예전엔 한화 이글스 팬이었는데 지금은 10개 구단 다 응원하고요(웃음). 야구가 정말 좋았으니까 도전을 택한 거죠. 제가 원하는 고품질의 글러브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회사 이름을 ‘원에이티’로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글러브 업계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고민하다가 180도 변신이라는 말처럼 ‘180’이라는 숫자에 주목했고요. 그래서 영어로 ‘1’과 ‘80’을 붙여 원에이티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큰 변화를 향해 가려면 큰 저항과도 부딪혀야 합니다. 사업 초기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입니까.

국산 브랜드를 향한 편견의 시선이었습니다. ‘국산이니까 글러브 품질이 떨어지겠지’라는 인식을 바꾸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사업 초기 프로 선수들은 저희 글러브를 쳐다보지도 않았죠. 그런 편견을 깨뜨리려고 계속 노력했어요.

프로 선수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힘들었겠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국산 브랜드를 경험한 선수들은 안 좋은 기억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장을 돌아다니며 끈질기게 추천하고 설득했죠. 아무리 메이저 브랜드라고 해도 저희 업체만큼 정밀하게 ‘커스텀 제품’을 만들어주지 않을 거라고요. 저희는 국산 제작 업체니까 선수들과 정밀한 의사소통으로 개인 맞춤형 미트를 만들어주지만, 다른 국외 브랜드 업체는 문서화된 정형적인 선택지로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다행히 그 설득이 통하기 시작했고요.

포수 미트에만 집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원래 전반적인 야구용품을 다 만들려고 했는데 일반적인 글러브 시장에선 도저히 틈이 안 보였습니다. 한군데 집중하지 않으면 다른 업체들을 쫓아가기 힘들겠다고 판단했어요. 시장을 살펴보니 미국과 일본 장비 시장과 비교해도 포수 미트만 보면 저희 경쟁력이 뒤처지지 않는다고 분석했어요. 포수 미트에만 집중하자고 결단을 내린 거죠. 기술을 가르쳐주신 다른 업체 선배님을 쫓아다니며 한국과 일본 공장에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품질 하나만큼은 다른 업체에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원에이티 포수 미트를 사용하는 프로 선수들의 사인 유니폼(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원에이티 포수 미트를 사용하는 프로 선수들의 사인 유니폼(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그렇게 노력한 결과 현재 프로 포수들이 원에이티 미트를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팀 주전 포수들로 보면 KT WIZ 장성우 선수, KIA 타이거즈 한승택 선수, 롯데 자이언츠 지성준 선수 정도가 있고요. 1군 백업 역할을 맡은 프로 포수들은 거의 다 저희 제품을 사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저희 미트를 믿어주는 포수들에게 정말 감사할 뿐이죠.

아마추어 야구와 사회인야구 시장에서도 가장 각광받는 미트로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학교 훈련 강도가 높은 학생선수들도 맞춤 미트를 많이 찾습니다. 사회인야구 미트 시장에선 중고가 제품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았고요. 미트 품질에 있어선 다른 업체에 뒤지지 않는단 자신감이 있습니다.

원에이티 미트의 품질이 뛰어난 비결을 듣고 싶습니다.

저희가 미트 제작에 사용하는 가죽 품질이 정말 뛰어납니다. 미트에 특화된 광택과 촉감의 가죽이죠. 일본 업체에서도 저희 가죽 종류를 사용하는 곳이 없는 거로 파악했고요. 가죽 안에 넣는 ‘펠트’라는 소재가 있는데 펠트 품질이 좋아야 미트 수명을 늘릴 수 있습니다. 고급 가죽과 고급 펠트 자재를 동시에 사용하는 미트 업체는 국내에서 저희 회사뿐이라고 자부합니다.

개인에 맞게 ‘커스텀 제작’하는 기술도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포수들의 손은 정말 예민합니다. 손 크기가 다른데 공을 잡을 때 손 모양도 미세하게 다 달라요. 포수마다 사용하는 미트를 끼는 순간 이 선수는 이렇게 조금씩 다르다는 게 느껴집니다. 미트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써서 제작하는 부분이고요. 포수들은 공 하나 잡는 것에 승부가 걸려 있으니까 변화에 민감하죠.

섬세한 미트 움직임으로 스트라이크를 유도하는 ‘프레이밍’ 능력과 빠른 미트 움직임이 필요한 ‘블로킹’ 능력에도 영향을 끼치겠습니다.

그래서 부위마다 가죽 종류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이 들어가는 곳은 단단한 가죽을 사용하고 공이 들어가는 쪽엔 부드러운 가죽을 사용하는 포수도 있고요. 미트 안 엄지와 검지 사이 가죽 길이를 정말 살짝 줄여달라는 요구까지 있어요. 포수들이 각자 편안한 방식으로 만들어줘야죠. 경기 중 공을 잡다가 놓치는 경우가 자주 보이면 선수와 직접 의견도 주고받고요.

회사 미트를 사용하는 포수들의 경기를 볼 때 진땀이 흐르겠습니다.

중계를 보며 저희 회사 미트를 사용하는 포수들이 하나라도 실수하지 않길 기도합니다. 특히 주자가 홈을 향해 달리는데 송구가 포수를 향해 날아올 때 가장 가슴이 떨려요. ‘원에이티 미트’로 잘 잡아야 하니까요.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마치 국가대표팀이 이긴 듯 전율을 느끼고 환호합니다(웃음).

“미트 제작 공정은 모두 수작업, 하루 최대 4~5개 생산”

포수 미트 제작은 소수 인원으로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포수 미트 제작은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기계 자동화 공정은 전혀 없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미트 제작을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가죽 재단부터 시작해 부위별 필요 두께로 가공하는 작업, 봉제 전 밑 작업(보강재 추가·가죽 접착·라벨 도장 및 이니셜 자수), 봉제 작업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펠트 소재를 봉제 완료한 가죽 사이에 넣고 바느질로 꿰매죠. 마지막으로 길들이기 작업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기계 자동화 공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손으로 직접 신경 써야 하는 거죠.

‘장인 정신’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이라는 말만큼 글러브 작업에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수작업이라 대량 생산은 힘듭니다. 작업자 4명으로 하루에 최대 4, 5개 정도 미트를 생산하고 있고요. 그 이상 제품 생산을 욕심내면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 품질만 보고 사는 고객들이 있기에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 듯싶습니다.

포수 미트 가격이 절대 싼 편이 아닙니다. 저희 미트를 사시는 고객들은 품질에 있어 기대치가 높을 거고요. 저희 브랜드를 믿고 사는 건데 단 하나도 허투루 만들 수 없는 거죠. 일정 개수 이상 생산하지 않는 것도 품질을 유지하려는 이유 때문입니다. 미트 품질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요소에요.

‘원에이티’ 미트가 KBO리그 5개 중계 채널에서 모두 나오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겠습니다.

솔직히 10개 구단 주전 포수 전부가 다 저희 회사 미트를 사용하게 하자는 욕심은 안 부립니다. 지금 ‘원에이티’ 미트를 믿어주고 사용해주는 포수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신경 쓰는 게 더 중요하죠. 물론 5개 채널 가운데 2~3개 채널에서 저희 미트가 나오는 정도면 바랄 게 없고요(웃음). 다른 야구용품이 없는 불편함에도 저희 미트를 사용하는 선수들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그래서 한 선수도 허투루 대할 수 없고요.

“미트의 매력은 곧 포수의 매력, 힘들지만 재밌다.”

KIA 포수 한승택은 원에이티 포수 미트를 사용한다. 박정호 대표는 “다른 야구용품 지원이 부족한 상황인데 우리 미트를 사용해주는 선수들에게 고맙다“라고 전했다(사진=KIA)
KIA 포수 한승택은 원에이티 포수 미트를 사용한다. 박정호 대표는 “다른 야구용품 지원이 부족한 회사 상황인데 그래도 우리 미트를 사용해주는 선수들에게 고맙다“라고 전했다(사진=KIA)

미트 장인에게 포수 미트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미트의 매력보단 포수의 매력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사회인야구 포지션도 포수거든요(웃음). 공을 투수가 던지지만, 경기를 지휘하는 건 포수잖아요. 다들 포수 사인만 바라보고요. 몸과 머리를 모두 바쁘게 움직이며 리더 역할까지 맡아야 하는 포수 자리는 힘들면서도 정말 재밌는 포지션입니다. 그런 매력을 몸으로 느끼도록 도와주는 게 포수 미트고요.

사회인야구 포지션도 포수였으니 미트 장인의 길은 필연적인 운명이었나 봅니다. 야구를 하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하겠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인야구 리그도 중단돼 아쉽습니다. 퇴근 뒤에 프로야구도 안 하고요. 정말 답답한 일상이죠.

코로나19로 한국 야구계가 전반적인 침체 분위기입니다. 향후 회사 운영에도 우려가 크겠습니다.

저희가 느려도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던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정체기가 왔어요. 3월부터는 사회인야구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관련 리그 중단이 이어지니까 주문 숫자가 많이 줄었죠. 저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장비 관련 업계들도 다 어려워요. 우선 프로야구라도 빨리 개막해야 사회인야구도 활기를 되찾지 않을까요.

얼른 일상의 야구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겠습니다.

이 또한 다 잘 지나가지 않을까요. 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국민성이 뛰어난 국민들은 없어요. 다 같이 단합해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얼른 일상의 야구로 돌아갈 거로 믿습니다. 다들 그 희망을 보고 잘 버티고 있잖아요. 얼른 프로야구가 개막해 저희 미트를 사용하는 포수들의 활약을 보고 싶습니다. 저도 미트를 듣고 사회인야구 경기에 뛰어나가고 싶고요. 그날이 오길 간절하게 기다리겠습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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