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당선인님. 법과 원칙에 따라 우리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 故 고유민 어머니의 절박한 호소 [춘추 인터뷰]

고 고유민 어머니의 절규 “검찰총장 출신 새 대통령님. 법정에선 대기업이든 아니든 똑같은 법률을 적용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제발 우리 딸이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2022-04-08     이근승 기자
현대자동차 정의선 회장. 현대건설은 현대자동차의 자회사다. 현대건설은 2011년부터 2021년 5월까지 해마다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10년 동안 48건의 사고가 발생해 51명이 숨지면서 고용부의 특별감독을 받았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나 배구계에서나 현대건설의 위상은 확고부동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대기업은 법과 원칙에서 예외인 치외법권이냐'고(사진=현대자동차/스포츠춘추)

[스포츠춘추]

”우리 (고)유민이는 아직 영면에 들지 못했어요. 제 생명 같던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유민이 따라갈까 고민합니다. 그런 제가 매번 마음을 고쳐먹는 이유는 하나에요. 우리 유민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 누군지, 왜 그랬는지 명백하게 밝히는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우리 유민이가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고 봅니다.”

2020년 7월 31일. 전(前) 여자 프로배구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선수 고유민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고(故) 고유민의 어머니 권미정 씨는 이날 이후 몇 번이고 딸의 뒤를 따르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권 씨를 일으켜 세운 건 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혀야만 한다는 부모의 의무감이었다.

권 씨는 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8월 현대건설 배구단 박동욱(현대건설 전 대표이사) 구단주를 사기와 업무방해, 근로기준법 위반, 사자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유족의 법률 대리인은 “현대건설의 ‘트레이드해 주겠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은 고 선수가 2020년 3월 30일 계약해지 합의서에 사인해주자 5월 2일 현대건설은 트레이드는 고사하고, 갑자기 고 선수를 임의탈퇴 처리해버렸다” “현대건설은 FA(자유계약선수) 신분인 고 선수를 임의탈퇴 시킬 수 없음에도 고 선수를 기망해 임의탈퇴 족쇄를 채워 결국 선수 생활을 중단하게끔 만들었고, 그것이 결국 고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가 됐다”고 주장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유민 사건을 계기로 프로선수 권익 보호와 공정한 계약을 위해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원소속 구단이 해제하지 않으면 영구 임의탈퇴 신분이던 과거와 달리 새 표준계약서는 임의탈퇴 공시 후 3년이 경과하면 자동으로 임의탈퇴 신분에서 해제되도록 했다.

고유민의 생전 바람이 ‘프로스포츠 표준 계약서’로 어느 정도 이뤄진데 반해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과 관련해선 지금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검찰은 박 구단주에게 ‘혐의없음’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권 씨는 “문체부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프로스포츠 표준 계약서’를 만든 것 아닌가. 현대건설이 임의탈퇴와 관련해 우리 딸을 속인 게 확실한데도 검찰이 ‘혐의업음’ 불기소처분을 내린 건 대기업 구단 눈치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현대건설은 여전히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권 씨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새 대통령을 향해 ‘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할 참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당선인께서 법과 원칙을 강조하시는 걸 자주 봤어요. 새 대통령님께 이렇게 눈물로 호소합니다. 제발 법과 원칙에 따라 25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우리 유민이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세요. 저렇게 우리 딸을 속여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들었으면서도 아무 사과나 잘못도 시인하지 않는 현대건설 같은 대기업에게 법과 원칙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세요.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권 씨의 하소연이다. 


고 고유민 어머니의 절규 “검찰총장 출신 새 대통령님. 법정에선 대기업이든 아니든 똑같은 법률을 적용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2020년 8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고유민 선수의 어머니 권미정 씨가 눈물로 '딸의 억울한 죽음과 관련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하는 장면. 권 씨 옆에 있는 이는 기자회견을 후원한 민주당 송영길 의원(사진=스포츠춘추 이근승 기자)

2012년 5월 서울중앙지검이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배구단 박동욱 전 구단주의 사기, 업무방해, 사자명예훼손,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제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그래요. 대기업과 싸워봤자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고요. 돈 몇 푼 받고 끝내라고요.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었다면 이렇게 길게 안 갔을 거예요. 현대건설 뜻대로 따랐으면 지금처럼 마음고생 안 했을 거예요. 돈 몇 푼 받고 끝났을 테죠. 하지만, 전 그렇게 살 수 없었어요.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 유민이가 운동만 14년 했어요. 많은 분이 유민이가 악성 댓글로 상처받아 세상을 떠난 줄 압니다. 유민이가 현대건설에서 당했던 여러 가지 불합리한 일을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바뀌는 게 없더라고요. 한국에서 운동선수로 산다는 거 참 쉽지 않아요. 

과거는 더 했을 듯싶습니다. 

지금 프로 선수 대부분이 학창 시절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온갖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을 참고 견뎌왔을 겁니다. 우리 유민이도 그랬으니까요. 지금이야 많이 바뀌었다지만 10년 전만 해도 운동부에서 폭력은 흔했어요. ‘이게 다 너를 위한 것’이라며 폭력으로 군기를 잡곤 했죠. 애가 멍이 들어서 집에 온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어요. 큰 선수가 되려면 이 또한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게 한탄스럽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네.

유민이가 악성 댓글로 삶을 마감할 만큼 말랑말랑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거예요. 악성 댓글보다 훨씬 더 아픈 폭언, 폭행에 익숙했습니다. 유민이가 현대건설에서 뛸 때 늘 하소연 하던 게 "감독, 코치가 날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거였어요. 돈이요? 필요 없어요. 어떤 부모가 딸이 죽었는데 돈을 바라나요. 그게 상식적인 일입니까. 유민이가 왜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했는지 확실히 알릴 겁니다. 현대건설에선 아직도 공식적인 사과나 처벌받은 사람이 없어요. 진실을 꼭 밝힐 겁니다. 전 밝혀질 거라고 믿어요. 특히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뽑혔잖아요. 윤석열 당선인님이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여러 차례 공정과 원칙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아요.

네.

한국은 누군가 아까운 목숨을 잃어야만 움직여요. 무슨 일이 생겨야 그때서야 들여다봅니다. 그것도 잠시뿐이지만요. 관련 법률 몇 개 바뀌고, 새로 생기면 그나마 천만다행인 거예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체육계에서 그렇게 정의를 외치는 분들, 여성 인권을 외쳤던 분들, 우리 유민이가 그렇게 됐을 때 다 어디에 계셨나요? 우리 유민이가 그렇게 떠났을 때 구단 옹호하면서 '여자배구 악재' 운운했던 사람들을 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그분들이 대기업 구단들을 보호하는 한 배구계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겁니다.

현대건설은 2020년 3월 30일 "트레이드를 해주겠다"며 고 고유민에게 그 선결 절차로 '선수 계약해지 합의서'를 쓰도록 했다. 그로부터 20일 후 고유민은 현대건설 국장에게 트레이드와 관련해 질의했다. 국장은 "5, 6월 사이에 트레이드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트레이드는 고사하고, 며칠 후 고유민을 임의탈퇴 처리했다(사진=스포츠춘추)

새 정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 듯합니다.

체육계를 비롯한 사회 전체가 공정했으면 합니다. 원칙이란 게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법정에선 대기업이든 아니든 똑같은 법률을 적용받았으면 합니다. 사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잖아요. 상식적인 걸 바라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합니다. 진실은 꼭 밝혀질 것으로 믿어요. 새 정부, 새 대통령께 무릎 꿇고 빌고 또  빕니다. 우리 딸의 억울한 죽음을 꼭 밝혀주세요. 제발...제발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