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40분 전 결연했던 韓 라커룸, 이정후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춘추 피플]

WBC 한일전을 앞뒀던 한국 야구대표팀 라커룸 분위기는 결연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경기 시작 40분 전 이정후는 휴대폰을 들어 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선배는 다름 아닌 이용규였다.

2023-03-15     김근한 기자
3월 10일 WBC 한일전을 앞두고 훈련에 임하는 대표팀 외야수 이정후의 표정은 비장했다(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스포츠춘추=고척]

3월 10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이 열리기 40분 전 한국 대표팀 라커룸 분위기는 결연했다. 숨죽일 듯한 긴장감 속에 한국 대표팀 간판 외야수 이정후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다름 아닌 팀 선배 이용규였다. 

그 누구보다도 담대해보이던 이정후도 한일전의 긴장감은 떨쳐내기 쉽지 않은 감정이었다. 과거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WBC, 2015 프리미어12 등 수많은 국제대회를 경험했던 베테랑 이용규에게 조언을 얻기 위한 통화였다. 

3월 14일 시범경기 고척 KT WIZ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이용규는 “그 시간에 (이)정후한테 전화가 와서 진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다(웃음). 받으니까 너무 긴장돼서 전화했다고 말하더라. 내가 그 마음을 잘 아니까 그냥 하던 대로 편안하게 하면 된다고 말해줬다”라며 미소 지었다. 

이정후는 한일전 상대 선발 투수였던 다르빗슈 유에 대한 조언도 요청했다. 2009 WBC에서 다르빗슈를 상대했던 이용규는 “상대한지 너무 오래됐는데 물어봐서 나도 당황스러웠다(웃음). 오래 전 기억 속에서도 다르빗슈의 슬러브나 느린 슬라이더가 원체 좋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빠른 카운트에 빠른 공을 먼저 생각하고 쳤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라고 전했다. 

WBC 실패 지켜본 이용규의 간절한 바람 "후배들아, 개개인이 엄청난 노력해야 한다."

키움 베테랑 외야수 이용규는 한일전을 앞둔 이정후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넸다(사진=스포츠춘추 김근한 기자)

경기 시작 40분 전 건넨 이용규의 조언 덕분이었을까. 이정후는 한일전 3회 초 다르빗슈의 초구를 공략해 1타점 우전 적시타를 날렸다. 비록 한일전 참패로 가려졌지만, WBC 대회 내내 타석에서 이정후의 활약상은 빛났다. 박수를 받아야 할 몇 안 되는 선수들 가운데 한 명이 이정후였다. 

이용규는 “호주전을 패하고 치르는 한일전이라 더 압박감과 긴장감이 느껴졌을 거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 싶다가 나에게 전화한 듯싶다. 어떻게 보면 그게 나라서 감사하다(웃음). 부담감이 굉장했을 건데 정후는 그런 걸 충분히 떨쳐내고 잘할 수 있는 선수라고 믿었다”라며 고갤 끄덕였다.

이용규는 도쿄돔에서 펼쳤던 한일전의 추억을 꺼내기도 했다. 이용규는 “일방적인 응원 분위기라 압도당하는 게 확실히 있다. 연습할 때부터 분위기가 그렇다. 그래서 현장에 오신 한국 팬들의 환호가 큰 힘이 된다. 경기 초반이 잘 풀리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초반 리드를 잡으려는 부담감에 선수들이 자기 기량을 못 발휘한 듯싶어 안타까웠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구인 선배로서 이용규가 한국야구 부활을 위해 주문한 건 후배들의 끝임 없는 노력이다. 국제대회 수준에 맞는 투·타 수준을 KBO리그 선수들이 갖춰야 한단 뜻이다. 

이용규는 “후배들이 국제대회에 나가서 경쟁력 있게 싸우려면 리그 안에서부터 개개인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WBC 무대에서 본 일본 투수들의 무시무시한 공을 한국 투수들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투수를 상대하는 타자들의 실력도 거기에 따라 높아질 수 있다. 야구인 선배로서 나도 크게 반성했는데 후배들도 앞으로 개개인마다 엄청난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더 키웠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야구는 3차례 연속 WBC 조별예선 탈락으로 민낯을 드러냈다. 이제 ‘참사’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부끄러운 성적이다. 국제대회 수준에서 한국야구는 더는 강팀이 아니다. 이용규의 말처럼 뼈저리게 느낀 실력 차를 줄이기 위한 선수들의 절박한 노력이 필요하다. 10년 넘게 벌어진 일본과 실력 차를 좁히는 시간은 자칫 그 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