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걸린 ‘전국대회 4강’…경동고 김철 감독 “눈치 보지 말고 맘껏 뛰어라” [춘추 인터뷰]

-경동고, 9월 5일 승리로 24년 만의 ‘전국대회 4강’ 쾌거 -팀 재도약엔 올해로 부임 5년차 맞이한 김철 감독 있었다 -“88년 충암고 재학 때 봉황대기 우승…감독으로도 해보고 싶어” -“야구는 선수들 몫…내 역할은 그 가능성을 열어주고 도와주는 것”

2023-09-06     김종원 기자
경동고등학교 야구부 김철 감독(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스포츠춘추=목동]

서울 경동고등학교는 원로 야구인 ‘4할 타자’ 백인천의 모교로 잘 알려져 있다. 백인천을 주축으로 195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이어 1960년엔 황금사자기, 청룡기까지 모두 제패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그 뒤 경동고가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다시 드러낸 건 1990년대 후반이었다. 결승 진출 두 차례(1996년 청룡기 준우승, 1997년 대통령배 준우승)에 3번의 4강 진출(1996, 1999년 황금사자기, 1997년 청룡기) 성과를 낸 것.

그로부터 세월이 제법 흘렀다. 경동고 야구부가 제51회 봉황대기에서 돌풍을 이끌고 있다. 경동고는 9월 5일 목동 야구장에서 포항제철고를 4-2로 꺾고 봉황대기 준결승에 진출했다. 경동고의 전국대회 4강은 1999년 황금사자기 이후 무려 24년 만이다.

그 중심엔 팀을 이끈 지 올해로 부임 5년차를 맞이한 김철 감독이 있다. 스포츠춘추가 5일 봉황대기 8강전을 앞두고 목동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


대학 졸업 뒤 곧바로 지도자行,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9월 5일 제51회 봉황대기 4강 진출 직후 경동고 선수단 모습(사진 왼쪽부터), 김철 감독(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선수 때부터 봉황대기와 인연이 깊다. 그 뒤엔 감독으로 올해 8강을 밟았다. 의미가 남다를 듯싶은데.

(환하게 웃으며) 맞다. 1988년 충암고등학교 재학 때 제18회 봉황대기를 우승한 적이 있다. 그 경험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묘한 기분이 들긴 한다. 선수들이 ‘원 팀’으로 똘똘 뭉쳐 잘해주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감독으로도 트로피를 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다. 계속 더 나아가고 싶은 건 나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수 시절 얘기를 더 듣고 싶다. 충암고를 거쳐 홍익대학교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대학을 마치고, 곧바로 지도자 길을 밟았다. 그게 1994년이니까, 어느새 30년째다. 프로 선수를 향한 꿈이 왜 없었겠나. 학생 선수 때를 돌이켜보면, 내 실력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남들 하는 만큼은 나도 하지 않았나 싶다(웃음). 대학교 졸업반 때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제안이 있었지만, 결국 포기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부상 때문이었지. 홍익대 재학 때 허리와 무릎이 정말 안 좋았다. 줄곧 야구를 해왔지만, 프로는 그야말로 ‘경쟁의 장’이다. 당시 내 몸 상태론 그걸 이겨내기 어려울 거로 생각했다.

지금이야 덤덤하게 말하지만, 그 결정엔 힘든 시간이 뒤따랐을 듯싶다.

(고갤 한 차례 떨구며) 쉽지 않았다. 한편으론 그런 경험이 지도자 생활에 큰 도움을 줬다. 시야가 넓어졌다. 단체 운동을 하다 보면,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 뒤엔 늘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있지 않나. 부상이 있거나, 실력이 아직 부족할 수도 있고, 여러 이유가 있다. 그런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경동고 부임 전 서울 영일초등학교 야구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지도자로 시작한 뒤 30년 가운데 22년을 영일초에서 보냈다. 세월이 훌쩍 지났다. 내 기억 속엔 여전히 조그마했던 아이들인데, 이젠 어른이 돼 사회 구성원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더라. 그래도 요즘 들어 뿌듯할 때가 많이 생기고 있다.

그게 언제일까.

치열하게 야구했던 제자들이 성장해 자식 돌잔치나 결혼식 소식을 알릴 때다. 어린 모습만 보다가 이젠 어른이 돼 찾아오면 그거만큼 찡한 게 없다.

영일초 제자들 몇몇은 프로야구선수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지도했던 학생 중에서 프로 선수가 된 경우가 꽤 있다. 이동현(LG 트윈스), 박병호(KT 위즈), 홍상삼(은퇴), 이영하(두산), 이정용(LG) 등이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누구인가.

(주저 없이 곧바로) 박병호. 박병호다. 아마추어 때부터 워낙 잘하는 선수였다. 고교야구에선 4연타석 홈런(2004년 서울 성남고 재학 시절)을 때린 적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프로 초창기에 부침이 꽤 길었다. 답답했는지 나를 몇 번 찾아왔다. 그래서 딱 한 마디 해줬다.

뭐였나.

‘지금 너에겐 지도자가 가타부타 조언하는 건 더 혼란스럽기만 할 거다. 너는 분명히 능력이 있다. 흔들리지 말고, 너의 야구를 펼쳤으면 한다.’ 그런 얘기를 건넸다. 내 말이 박병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내겐 유독 박병호의 성공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게 있다. 이 선수가 그간 힘든 시간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지켜봤기에 더 그런 듯싶다.


“야구는 선수들의 몫…내 역할은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경동고 3학년생 3루수 겸 투수 유병선(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경동고 얘기를 본격적으로 듣고 싶다. 부임 5년차에 올 시즌 고교야구 공식전 13승 8패에 팀 타율 0.286에 마운드 평균자책이 3.56이다. 그간 팀을 성장시키는 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나.

흔히 고교야구 지도자들이 겪는 고충들이 있지 않나. 특히, 출전 수 문제가 크다. 아이들 진학이 걸려 있다. 경기 출전에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도 1, 2학년이면 출전 기회를 받기 어렵다. 3학년 선수들은 어느 정도 타석, 이닝이 있어야 결국 대학 원서를 쓸 수 있으니까.

고교야구의 현실적인 부분이다.

1, 2학년 선수들 나이 때면 한창 경기를 뛰고 성장해야 할 때다. 그런 부분이 마음 아픈 게 있다. 그래도 경동고는 가능한 한 교체를 이용해 선수를 다양하게 기용해 왔다. 저학년생에게도 꾸준히 기회를 줬던 게 지금의 성과로 이어진 게 아닐까.

6월엔 한화 이글스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회 고교vs대학 올스타전’에 고교야구 코치진으로 참여했다. 아쉽게 경동고 선수들과 함께 자리하진 못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을 듯싶은데.

물론이다. 이런 대회가 매년 주기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KBO리그의 다른 구단들도 이에 동참해 아마야구 저변을 좀 더 넓혀주면 좋겠다. 이번에 대전 가서 느낀 게 많다. 매스컴도 많이 오고, 아이들이 그에 따른 동기부여도 크게 받는 것 같더라. 이왕이면, 주목도가 떨어지는 선수들이 조명받을 기회가 더 생기길 바란다.

이제 곧 봉황대기 8강전을 치른다. 만일 승리한다면, 경동고는 24년 만에 전국대회 4강 고지를 밟는다. 지난 16강전(3일 청주고 12-4 승리) 이후 하루 시간이 있었다. 선수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는지 궁금하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경기력 보완보단 늘 해왔던 대로 ‘원 팀’을 많이 강조했다. 비유를 하나 들었는데, ‘나무젓가락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 팀원들이 똘똘 뭉쳐 50개의 나무젓가락이 되어보자’고 전했다.

이번 봉황대기에서 경동고는 도루 22개를 기록한 바 있다. 16강전에선 8차례나 도루를 얻어냈기도 했다. 김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의 모습으로 봐도 될까.

(고갤 저으며) ‘뛰는 야구’보단 과감한 야구를 펼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경동고는 공격적인 야구를 지향한다. 야구는 결국 선수들이 한다. 나는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틀을 깰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도루 22개도 그린라이트로 만들어 낸 성과다.

놀랍다. 대회 최다 도루 팀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이른바 ‘지도자의 작전야구’가 아닌 선수들이 스스로 풀어나가는 방향을 중시하는 듯싶다.

시대가 변했다. 지도자가 주도하는 작전 야구는 한계가 있다.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 운동장에서만큼은 늘 실패를 겁내지 말라고 말한다. 다만, 자만과 과감은 다르다. 가능성을 제한하기보단 야구의 무궁무진함을 보여주고 싶다. 내 역할은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 용기를 주는 것, 거기까지다.

경동고는 최근 3년간 프로 선수 3명을 배출했다. 해마다 한 명씩 나오고 있는데, 올해 주목해야 할 3학년생 선수를 들려달라.

3루수와 투수를 병행 중인 유병선의 기량이 좋다. 또, 우완 사이드암 에이스 윤한선까지 그 둘에게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이번 봉황대기가 끝나면 내년을 준비해야 한다. 2학년생 선수들 가운데 성장이 기대되는 선수가 있나.

지난해 1학년 때부터 유격수 자리를 책임지고 있는 이태훈이 아닐까. 중견수 최성민도 주목할 만한 이름이다.

이번 대회에서 큰 도전을 앞두고 있다. 감독 ‘김철’이 그려가고 있는 경동고의 모습이 궁금하다. 선수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지도자의 역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선수들에게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 주는 건 필요한 영역이다. 다만, 자율적인 야구를 통해 항상 강조해 왔던 게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남은 대회 일정에서도 실패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 있게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