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호투+혼을 쏙 빼놓는 발야구, 애리조나표 ‘뱀떼야구’로 1차전 잡는다 [WS 프리뷰]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두 팀이 정상에서 만났다. 정규시즌 90승 팀 텍사스 레인저스와 84승 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28일(한국시각) 월드시리즈 7전 4선승제 맞대결을 벌인다. 텍사스는 창단 62년 만의 첫 우승을, 애리조나는 창단 두 번째 우승을 노린다. 

2023-10-27     배지헌 기자
텍사스와 애리조나의 월드시리즈(사진=mlb.com)

 

[스포츠춘추]

두 팀 모두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기적을 만들었다. 텍사스는 아메리칸리그 최강팀 탬파베이 레이스-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은 뒤 디펜딩 챔피언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무너뜨리고 올라왔다. 애리조나도 디비전 우승팀 밀워키 브루어스-LA 다저스를 부서뜨린 뒤 NLCS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 상대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경기를 펼쳤다. 0승 2패를 2승 2패로, 2승 3패를 4승 3패로 뒤집은 애리조나의 기적은 뉴욕 양키스를 7차전 끝에 꺾은 2001년 첫 우승 시즌을 연상케 했다. 누가 이겨도 드라마가 되고 양 팀 모두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시리즈가 지금 시작한다.

이오발디와 갤런의 포스트시즌 성적 비교(사진=mlb.com)

 

선발투수: 가을사나이 이오발디 vs 반등이 필요한 갤런

텍사스 레인저스는 이번 포스트시즌을 통해 절대적인 에이스로 거듭난 네이선 이오발디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정규시즌 팀의 1선발로 활약한 잭 갤런이 각각 등판한다. 이오발디는 정규시즌 12승 5패 평균자책 3.63을, 갤런은 17승 9패 평균자책 3.47을 각각 기록했고 이오발디가 144이닝을, 갤런이 210이닝을 투구했다. 정규시즌 많은 노동량이 포스트시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가정은, 이번 가을야구에서 이오발디의 호투와 갤런의 다소 아쉬운 투구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다.

이오발디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26이닝 동안 4승 0패 평균자책 2.42를 기록 중이다. 또 통산 포스트시즌 전적도 69이닝 동안 8승 3패 평균자책 2.87이나 된다. 애리조나 상대로도 통산 8경기 평균자책 2.78로 훌륭한 기록을 남겼다. 다만 이 기록은 2016년 이전의 기록이라 최근 애리조나와의 상성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현재 애리조나 타자 중에 이오발디와 상대한 경험이 있는 선수는 토미 팜, 에반 롱고리아, 루르드 구리엘 주니어 세 명뿐. 이 가운데 구리엘 주니어가 18타수 7안타 2홈런으로 강점을 보였다. 나머지 타자들에겐 이오발디의 강력한 속구와 처음 보는 스플리터가 당황스럽게 느껴질지 모른다. 추후 4~5차전에 다시 나왔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1차전에서는 이오발디의 공을 제대로 때려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애리조나 선발 잭 갤런은 이번 가을야구 들어 제구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서 정규시즌만 못한 투구를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선 상대 타자들이 속구가 아닌 변화구에 포커스를 맞추고 들어오면서 많은 장타를 얻어맞았다. 볼배합과 피치 디자인에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텍사스 상대로는 올 시즌 두 번이나 등판했다. 첫 대결에선 5이닝 3실점, 두 번째 대결에선 6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두 번 모두 괜찮은 기록이지만 특정 투수와 자주 상대해봤다는 건 타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도 있다. 물론 포스트시즌은 정규시즌과 전혀 다른 무대이며, 갤런 역시 시즌 때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텍사스 타자들과 상대할 것이다.

가을야구 16경기 연속 안타의 마르테(mlb.com 영상캡처)

 

라인업: 미친 홈런포의 텍사스 vs 정신없이 뛰는 애리조나

두 팀 모두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좋은 공격력을 보였다. 텍사스는 특히 아돌리스 가르시아를 필두로 한 홈런 파워가, 애리조나는 케텔 마르테의 안타 행진과 뛰는 야구가 위력을 발휘했다. 텍사스 라인업은 1번부터 9번까지 피해 갈 곳이 없다. 가르시아의 방망이는 거르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이고, 코리 시거와 에반 카터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ALCS까지 다소 잠잠했던 마커스 시미엔이 터진다면 텍사스 공격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물론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상승세였던 사이클이 월드시리즈에서 가라앉는 경우도 있으니 1차전을 지켜볼 필요는 있겠다(ex: 2015년 포스트시즌의 대니얼 머피).

애리조나 타선에선 가을야구 16경기 연속 안타 행진 중인 케텔 마르테가 돋보인다. 마르테는 텍사스 상대로도 강했는데, 4경기에서 14타수 6안타 3홈런에 4볼넷을 기록했다. 게다가 정규시즌 맹위를 떨친 방울뱀표 발야구가 가을야구에서 더 절정에 달한 모습이다. 궁지에 몰렸던 애리조나가 NLCS 6, 7차전에서 살아난 원동력도 정신없이 뛰면서 상대를 흔드는 야구였다. 텍사스 주전 포수 조나 하임은 좋은 포수지만 팝 타임은 리그 평균 이하다. 단기전을 이기는 법을 찾은 애리조나가 1차전부터 정신없이 뛰어다닐 것으로 예상한다. 백전노장 브루스 보치 감독이 어떤 대응책을 갖고 나올지도 궁금하다.

호세 르클럭(mlb.com 영상캡처)

 

불펜: 2명으로 버티는 텍사스 vs 떼로 덤비는 방울뱀

불펜 싸움에선 애리조나가 우세하다. 텍사스 불펜은 조쉬 스보즈와 호세 르클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불펜이 약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텍사스는 예상과 달리 스보즈와 르클럭, 아롤디스 채프먼이 호투하면서 ALCS 초반까지 순항했다. 그러나 ALCS 중반부터 불펜진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2승 무패였던 시리즈가 2승 3패로 뒤집혔고, 다 된 밥상을 거의 엎기 직전까지 몰렸다. 사실 르클럭도 투구내용 자체가 크게 믿음직스러운 건 아니다. 최대 7차전까지 이어지는 긴 시리즈를 지금의 멤버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얼굴이 나와줘야 한다.

그에 비해 애리조나는 수준급 불펜 카드가 많은 팀. NLCS에서 경기 중반 이후 수많은 역전승을 연출한 것도 최소실점으로 필리스 타선을 막아낸 불펜투수들의 공이 컸다. 마무리 폴 시월드를 필두로 라이언 톰슨, 케빈 긴켈, 앤드류 살프랭크, 조 맨티플라이 등 모든 불펜 투수들이 제 몫을 한다. 정규시즌 텍사스 타선과 여러 차례 상대했다는 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시즌 때와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면 오히려 텍사스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경기 후반 싸움에선 확실히 애리조나가 우위에 있다.

애리조나 마무리 시월드(mlb.com 영상캡처)

 

예상: 1차전 경기 중반까지는 한두 점차 접전이 펼쳐질 것이다. 이오발디는 언제나처럼 잘 던질 거고, 갤런도 앞의 시리즈와 달리 호투하면서 투수전이 예상된다. 승부는 후반에 갈린다. 애리조나 불펜이 텍사스 방망이를 억제하는 가운데, 코빈 캐롤을 비롯한 좋은 타자들이 출루해 잇따른 도루로 텍사스 내야진을 혼돈에 빠뜨리는 그림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