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면 좋을 것 없다, LG는 반드시 5차전에서 끝내야 한다 [춘추 집중분석]
4차전 승리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1승만을 남겨둔 LG 트윈스. LG 입장에선 5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는 게 최선이다. 5차전에서 못 끝내고 6차전, 7차전으로 가면 골치 아픈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스포츠춘추]
4차전에서 무자비한 대승을 거둔 LG 트윈스는 이제 한국시리즈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두게 됐다.
3차전까지만 해도 매 경기가 한 점 차 명승부였는데 4차전에선 LG가 15대 4로 크게 이겼다. 리그 최고의 팀만 출전하고 수준 있는 투수들만 등판하는 단기전 승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스코어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이보다 점수 차가 크게 난 경기는 단 한 차례(1990년 LG 13-0 삼성)밖에 없었고, LG보다 많은 점수를 낸 팀도 딱 한 팀(2001 두산 18-11 삼성)에 불과했다.
역대 한국시리즈 11점 차 이상 승리 / 15점 이상 득점 팀
1988 빙그레 14-3 해태
1990 엘지 13-0 삼성
2001 두산 18-11 삼성
2015 두산 13-2 삼성
플레이오프에서 5경기를 치르고 올라온 KT 선수들은 2, 3차전에서 충격의 역전패를 경험한 뒤 체력적-정신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3차전을 앞두고 KT 배정대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2차전 끝나고) 상당히 피곤하더라”는 얘길 했는데, 2020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전 경기 출전을 달성한 배정대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다른 선수들이 느끼는 피로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LG 타자들 상대로 아웃카운트 하나 잡기도 벅찬 KT 투수진의 모습은 3차전까지 손동현, 박영현만 계속 쓴 이강철 감독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듯했다.
5차전 켈리 예고한 LG, 하지만 6차전 이후 선발이 마땅찮다
시리즈 3승 1패가 된 지금에 와서 LG가 우승하지 못하는 시나리오는 상상하기 어렵다. 역대 한국시리즈를 봐도 3승 1패로 앞선 팀이 역전을 허용한 사례는 딱 한 차례, 2013년 두산밖에 없었다. 그해 두산은 3승 1패로 삼성에 앞서 가다 내리 3연패를 당해 준우승했다. 그러나 당시 두산은 준플레이오프부터 플레이오프까지 9경기를 치르고 올라오면서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정규시즌 1위로 22일을 푹 쉬면서 준비한 LG와는 처지가 다르다.
아마도 오늘 5차전을 보러 잠실에 오는 LG 팬이라면 29년 만의 우승 세리머니를 볼 생각에 벌써 들떠있을 것이다. 잠실구장 어딘가에는 우승 현수막과 우승 기념 모자, 티셔츠가 도착해 있을지 모른다. 마지막 아웃을 잡는 투수는 누가 될지, 헹가래 투수가 누굴 제일 먼저 포옹할지, 그 순간 중계방송 캐스터는 무슨 멘트를 할지, 시계는 누가 받고 염경엽 감독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 1000만 원은 누가 가져갈지…상상의 연상작용은 끝이 없다.
5차전에서 끝내고 싶은 건 팬들만이 아니다. LG 입장에서 봐도 오늘 5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는 게 최선이다. 만약 5경기로 끝내지 못하고 6차전, 7차전으로 가면 굉장히 골치 아픈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LG는 반드시 오늘 우승하기 위해 총력을 쏟을 것이다.
LG가 5차전에서 끝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발투수 매치업이다. 5차전에서 LG는 케이시 켈리를, KT는 고영표를 각각 예고했다. 앞서 1차전 맞대결에서 켈리는 6.1이닝 2실점을, 고영표는 6이닝 2실점을 각각 기록한 바 있다. 켈리는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 LG 선발 중에 유일하게 6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켈리 이후에 올라온 선발투수들은 6회는커녕 5회도 버티지 못했다. 2차전 선발 최원태는 1아웃만 잡고 강판당해 역대 한국시리즈 5호 ‘0.1이닝’ 선발이 됐고, 3차전 선발 임찬규는 나름 제 몫은 했지만 3.1이닝 투구에 그쳤다. 4차전에서 9회 올라와 1실점 한 최원태는 남은 한국시리즈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울 전망. 3차전에서 82구를 던진 임찬규가 3일 휴식 후 6차전에서 선발 등판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임찬규는 올 시즌 선발로 4일턴을 소화한 적이 한 번도 없고, 5일턴(4일 휴식)도 1경기에 그쳤다. 그 외 KS 엔트리에서 선발 경험이 있는 투수는 이정용(13경기)과 손주영(2경기)인데, 이정용은 이미 4경기에 불펜으로 등판한 상태. 손주영이 정규시즌 선발 2경기에서 꽤 좋은 투구를 보여주긴 했지만 큰 무대에서 선발로 기용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만일 6차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LG로선 내보낼 만한 선발투수가 마땅치 않다는 얘기. 반면 KT 쪽에선 빅게임 피처의 대명사 윌리엄 쿠에바스가 등판을 벼르고 있다.
7차전으로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 4차전 선발 김윤식이 사흘 쉬고 7차전 선발로 나오긴 어렵다. 김윤식은 데뷔 이후 한 번도 4일턴을 소화한 적이 없고, 5일턴 등판도 올 시즌 2회 지난해 1차례에 불과했다. 결국 임찬규가 팀의 운명을 짊어지고 등판해야 하는데, 7차전 KT 선발로는 웨스 벤자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3차전에서 결과적으로 이기긴 했지만, 다시 붙었을 때 또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LG 선발진은 평균 4이닝만을 책임졌는데, 이는 2015년 이후 한국시리즈 진출팀 가운데 최소이닝 3위(1위 2021 두산 2.83이닝, 2위 2019 키움 3.58이닝)에 해당한다. 물론 2019년 두산이 평균 4.33이닝짜리 선발진으로 우승을 거두긴 했지만 당시엔 시리즈가 4경기 만에 일찍 끝났었다. 이 선발진으로 5경기를 넘어 6경기 이상 치르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에브리데이 불펜데이는 아무리 LG라도 쉽지 않다
물론 선발이 일찍 내려가도 LG가 자랑하는 강력한 불펜으로 버티면 된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LG의 ‘7 쌍둥이 불펜(이정용-함덕주-정우영-김진성-백승현-유영찬-고우석)’은 선발이 0.1이닝만 던지고 내려간 2차전에서 나머지 8.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위력을 보였다. 그러나 똑같은 투수들이 올라온 3차전에선 몇몇 선수가 큰불을 내면서 하마터면 승리를 내줄 뻔한 위기도 있었다. 대부분의 감독이 단기전에서 쓰는 투수만 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과연 LG 벤치가 경기 후반 타이트한 상황에서 마무리 고우석을 자신 있게 마운드에 세울 수 있을까? 1, 3차전 투구내용으로 봐선 LG의 우승 순간 헹가래 투수로 고우석이 서 있긴 어려워 보인다. 함덕주, 백승현, 정우영의 공도 벤치에 믿음을 줄 정도는 아니다. 가장 믿음직한 투수는 유영찬과 이정용, 김진성인데 이 셋만 가지고 6차전, 7차전까지 연속 불펜게임을 하긴 어렵다. LG가 5차전으로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물론 이번 시리즈에서 LG는 투수들이 좀 부진해도 방망이로 만회하면서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경기를 해왔다. 선발이 일찍 내려가도, 불펜이 불을 질러도, 주전 유격수가 대형 실책을 범해도, 타자들이 바로 홈런을 치고 점수를 뽑아내니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4경기에서 LG가 기록한 홈런 8개는 역대 단일 한국시리즈 팀 최다홈런 2위(1위 2013 두산 9개) 기록이다. 이번 시리즈 LG 타선의 OPS 0.954는 역대 1위 기록으로, 역사적인 난타전을 펼친 2001년 두산(0.912)이나 삼성(0.888)보다도 앞선다. 심지어 LG에 아픔으로 남아있는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삼성(0.812)보다도 훨씬 위다.
고영표-쿠에바스-벤자민이 차례로 올라와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가질 만한 타선이다. 하지만 방망이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야구 기초 이론을 떠올린다면, 4차전까지 펄펄 끓던 타선이 갑자기 차게 식는 상황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고영표는 평균자책 1.50, 쿠에바스는 3.00을 기록 중이다. 다른 팀이 아닌 LG를 상대로 거둔 기록이다.
이처럼 LG 입장에선 5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물론 지금 LG의 전력과 분위기라면 혹시 6차전까지 가더라도, 최악의 경우 7차전을 치르게 되더라도 도저히 질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불확실성은 최소화하는 편이 좋다.
과거 두산 시절인 2013년 3승 1패로 앞서다 3승 4패로 역전당하는 악몽을 경험했던 김현수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며 “우린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뒤가 없는 팀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각오를 불태웠다. 염경엽 감독 역시 “좋은 기운이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지만, 야구는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준비 잘해야 한다.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해 승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LG는 5차전이 이번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