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V3’ 이끈 박해민-오지환 “29년간 기다려 주신 팬분들이 MVP죠” [KS5]

LG가 팀 사상 세 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13일 잠실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 승리 후 취재진과 만난 베테랑 외야수 박해민, 내야수 오지환의 얘길 들어봤다.

2023-11-14     김종원 기자
한국시리즈 5차전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난 LG 외야수 박해민(사진 왼쪽부터), 내야수 오지환(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스포츠춘추=잠실]

LG 트윈스가 29년 묵은 ‘한풀이’에 성공했다. LG는 11월 13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 위즈를 6대 2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V3’ 쾌거를 이뤘다.

이날 LG의 센터라인은 든든한 수비를 펼쳐 선발 케이시 켈리의 어깨를 가볍게 했으며, 특히 박해민은 4회 초 KT의 2사 1, 2루 기회를 맞이한 대타 김민혁의 타구를 절묘한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 이닝을 끝내기도 했다. 또 곧장 3회 말 1사 2, 3루에서 2타점 2루타를 기록하며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이날 3타수 2안타 2타점을 올린 박해민은 한국시리즈 5차전 데일리 MVP에 선정됐다.

한편 외야에 박해민이 있었다면, 내야엔 오지환이 있었다. 2회 초 KT 앤서니 알포드가 때린 타구를 내야에서 환상적인 핸들링으로 잡고 처리한 게 백미. 이번 시리즈에서 19타수 6안타 3홈런 8타점 타율 0.316을 선보인 오지환은 기자단 투표 93표 가운데 80표(86%)를 가져가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MVP의 영광을 안았다.

다음은 경기 뒤 우승 세레머니 직후 취재진과 만난 박해민, 오지환과의 일문일답.

다이빙 캐치 호수비로 팀의 우승을 견인한 LG 외야수 박해민(사진=LG)

우승 소감은?

박해민: 데일리 MVP를 받아 기쁘다. 하지만 나보다는 우리 선수들과 프런트, 그리고 29년을 기다려 주신 팬분들께서 MVP라고 생각한다.

오지환: 팬분들께서 정말 오래 기다리셨다. 그래서 너무 기쁘고, 또 많이 울컥한다. 그간 팀에서 함께한 선배들이 유독 생각나는 날이다. 또 지금 우리 한국시리즈 엔트리 30명이 우승팀으로 많이 기억되길 바란다.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이 (앞으로 도전할 수많은 우승 중에)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 팀에 있는 형들과 같이 오랫동안 야구했으면 한다.

(오지환) 한국시리즈 맹타의 비결이 뭔가.

오지환: KT 마운드에는 속구를 강점을 두고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타석에서 계속 빠른 공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불펜에서 꺼낼 수 있는 좌완 카드가 없었던 게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시리즈 도중 (김)현수 형의 한마디가 또 큰 보탬이 됐다. 현수 형이 ‘지금부터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문제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좋은 선택을 하자’고. 그 뒤로는 타석에 들어갔을 때 속구를 어이없이 흘려보내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더라. 후회가 많이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공격적으로 속구를 노렸다.

(박해민) LG로 이적 후 2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4년 전 소속팀에서의 우승 경험도 있지만 이번 우승은 팀도 마찬가지만 선수 개인에게도 오랜만인데.

박해민: 남다르게 다가온다. LG의 ‘29년’이라는 서사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또 지난겨울 팀의 퍼즐 한 조각으로 영입된 것 아닌가. 비록 지난해는 아쉽게 끝났지만, 올해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어 너무 기쁘다. 삼성에 있을 때는 형들 뒤를 따라 갔다면, 지금은 옆에 있는 (오)지환이와 함께 팀을 이끌어 나가면서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느낌이라 조금은 다른 기분이다. 

(오지환) 지난해까지의 LG는 항상 큰 경기와 중요한 상황에서 중압감을 잘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뭔가 잘 안 풀리면 일순간 무너지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만큼은 달랐다. 무엇이 LG를 이렇게 달라지게 했나.

오지환: 올 시즌 들어 우리 팀의 적극적인 모습이 더 늘었다. 염경엽 감독님이 오시면서 적극적인 플레이를 많이 시도했는데, 물론 그 과정에서 아웃이 많이 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선수들이 도전적인 마음가짐을 얻게 됐다. (문)성주, (신)민재, (문)보경이, (유)영찬이 등은 어린 선수들인데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경기에 임하더라. 보통 한국시리즈와 같이 큰 무대에서는 선배들이 ‘주축이 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번 시리즈는 달랐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다 잘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어린 선수들이 잘해줘서 베테랑들이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올 시즌 팀의 ‘신구조화’도 무척 좋았다.

LG 캡틴 유격수 오지환(사진=LG)

(오지환) 고 구본무 LG 초대 구단주가 남긴 ‘시계’의 주인이 됐다.

오지환: 아직 실제로 보진 못했다. 사실 고민이 많다. 선대 회장님의 유품이다. 내가 차고 다니기엔 너무 부담스럽다. 그래서 구광모 회장님께 드리고 싶고, 또 누구나 볼 수 있게 구단 사료실에 따로 두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오지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미디어데이에서 ‘내가 시계를 갖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그 말을 지키는 데에 중압감이 상당했을 텐데.

오지환: 기댈 형들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박)해민이 형부터 현수 형, (허)도환이 형, (김)진성이 형까지, 경험 많은 형들이 날 많이 도와줬다. 주장을 한 번씩 해본 경험들이 있어서 시즌을 치르면서도 항상 힘든 부분에서 많이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이번 한국시리즈에선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기회를 어떻게 하면 더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박해민) 4회 초 이닝을 끝내는 환상적인 수비가 나왔다.

박해민: 일단 대타로 나온 KT 김민혁은 너무 좋은 타격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수비 자리를 잡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전력분석팀에서 한국시리즈를 위해 준비한 타구 분포 자료다. 그 공을 잡는 순간 ‘오늘 경기는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우승하겠구나’ 확신을 했다. 대타 상황에서 점수를 내줬다면 분위기가 확 넘어갔을 것이다. 지환이와 나는 항상 클러치 수비 관련해서 꼬리표가 있었다. 오늘 수비들로 어느 정도 그런 우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그만큼 가치 있는 수비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박해민) 수비를 위해 몸을 던졌을 때 공을 잡을 수 있겠다고 얼마나 확신했는지.

박해민: (주저 없이) 100%, 100%다. 무조건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비 후에 적극적으로 세레머니도 한 것 같다.

올해 통합 우승까지 오면서 팀을 이끈 비결 중 하나만 손꼽자면?

오지환: 앞서 말한 것처럼 ‘도전적인’ 자세다. 이전까지 우리 팀의 가을야구에는 아쉬움만 가득했다. 보통 시리즈가 끝나면 후회가 많이 남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정말 긴장이 하나도 되질 않았다. 매 순간이 재밌었다. 만일 팀에서 실수가 나오더라도 팀원들 모두가 ‘우리 포기하지 말자’고 얘기했고 또 ‘우리 이럴 수 있어’,  ‘경기 아직 끝난 거 아니야’ 같은 생각들이 팀에 넘쳤던 게 달라진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박해민: 정말 많아서 하나를 손꼽긴 어렵지만, 외국인 타자 오스틴 딘의 존재다. LG는 그간 외국인 타자에 대한 갈증이 있지 않았나. 오스틴이 올 시즌이 새롭게 합류해 ‘4번 타자’로 팀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에 현수 형이나 지환이가 조금 더 부담을 덜어내고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오스틴은 실력만 갖춘 게 아니다. 거기에 인성, 경기에서 지고 싶어 하지 않는 투지 등을 추가로 지녔다. 지난해와 올 시즌 팀 멤버가 크게 다른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오스틴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