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박·손·이·정의 첫 KS…“얻은 게 많은 한 해” KT는 다시 일어선다 [춘추 이슈분석]

-정규시즌 최하위에서 2위로 마무리, KS 진출까지 일궈낸 KT의 2023년 -이강철 KT 감독, 신예 선수들 활약에 “우승은 못 했지만, 정말 얻은 게 많은 한 해” -KT 새 ‘승리공식’ 우뚝 선 손동현-박영현,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책임진다 -KS에서 가능성 보인 우완 이상동-외야수 정준영…2024시즌이 더 기대돼

2023-11-15     김종원 기자
KT의 ‘마법 같았던 여정’이 잠시 쉼표를 찍는다(사진=KT)

[스포츠춘추]

“우리 선수들 정말 잘했다. 팀은 졌지만, (선수들은) ‘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11월 13일 한국시리즈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난 KT 위즈 사령탑은 눈시울을 잠시 붉힌 뒤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말을 이어갔다.

숨 가빴던 한 해 일정을 마친 이강철 KT 감독은 팀의 모든 구성원을 향해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잇따른 선수 부상 악령에 최하위를 전전했던 시즌 초반을 떠올린 이 감독은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여기(한국시리즈)까지 왔다. 공백이 생길 때면 그 자리에 대체 선수가 늘 올라와 ‘팀 KT’답게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큰 성장을 보여준 신예 선수들을 손꼽은 이 감독은 “우승은 못 했지만, 정말 얻은 게 많은 한 해”라며 “앞으로의 KT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고 말했다.

정규시즌을 넘어 가을야구에서도 뒷문을 책임진 박영현·손동현·이상동 트리오에 ‘신인’이지만 한국시리즈 5차전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던 외야수 정준영까지, 향후 미래가 더 기대되는 마법사 군단의 ‘신예 4인방’에 해당하는 얘기다.


마법사 군단 신형 ‘승리공식’ 우뚝 선 손동현-박영현

KT 우완 불펜 손동현(사진 왼쪽부터), 박영현(사진=KT)

이강철 감독은 지난 8일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젊은 선수들 기량이 많이 올라왔다. 박영현, 손동현은 물론이고, 이상동 역시 좋은 공을 던지고 있는데, 올해를 넘어 멀리 보면, 이 선수들이 한 10년 이상은 충분히 해줄 것이다.”

프로 데뷔 2년차를 맞이한 박영현은 2003년생으로 지난해를 뛰어넘는 활약으로 올 시즌 국가대표 셋업맨으로 성장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건 것. 또 2001년생 손동현과는 함께 정규시즌에서만 70이닝 이상 소화하며 KT의 핵심 선수로 우뚝 섰다. 상무(국군체육부대) 제대 후 올 시즌부터 팀에 복귀한 손동현 역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팀의 새 엔진으로 거듭났다.

한창 순위 싸움이 진행 중인 시즌 중에 만난 손동현은 “시즌 전만 해도 40경기 출전을 목표로 뒀는데, 처음에는 우리 팀 뎁스가 워낙 좋아서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계속 등판 기회를 주시면서 자신감이 크게 붙더라. 올 시즌 내 성장은 감독님 믿음 덕분”이라고 밝혔다.

KT 우완 필승조 박영현(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다만 이들의 시작이 처음부터 필승조였던 건 아니다. KT는 개막 전부터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는 등 악재에 시달렸다. 그 가운데엔 셋업맨 김민수, 주권도 있었다. 둘은 마무리 김재윤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간 불펜을 지탱하던 기둥들을 한순간 잃어버린 셈. 참고로 김재윤을 포함해 필승조 셋의 그해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총합은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 기준 7.47을 기록할 정도.

박영현, 손동현은 그 둘을 대신해 4월 개막부터 KT의 필승조 자릴 지켰다. 김재윤과 함께 7~9회를 틀어막으며 리그 최고 필승조로 자리했고, 지난해에 준하는 불펜 퍼포먼스(WAR 총합 7.44)를 자랑했다.

이들의 활약은 포스트시즌에서도 빛났다. 무려 시리즈 5경기 동안 12이닝을 무실점으로 합작한 플레이오프 역투는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는 체력적인 여파로 끝내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멀티이닝 소화와 소방수 역할을 도맡은 박영현과 손동현의 첫 한국시리즈는 눈부셨다.


KS에서 가능성 보인 이상동-정준영…2024시즌이 더 기대된다

KT 우완 이상동이 주무기 포크볼을 던지고 있다(사진=KT)

박영현, 손동현과 함께 이강철 감독이 ‘KT의 미래’로 주목한 이름은 하나 더 있다. 바로 1995년생 ‘예비역’ 이상동이다. 올해 4월 전역한 이상동은 개막 전 스프링캠프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남다른 기량으로 KT 벤치의 부름을 받아 제법 빠르게 1군 콜업을 맞았다.

“전역한 지 두 달 만인 6월이었다. 당초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래서 많이 ‘업’된 것도 있고, 잘해야겠단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상동의 기억이다.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이상동은 전반기에만 14경기 평균자책 6.43에 그치며 2군에서 재조정기를 거쳐야 했다. 반전은 그 뒤부터였다. 강력한 속구 구위와 낙차 큰 포크볼을 앞세워 후반기 팀 불펜의 새로운 활력소가 된 것. 이상동은 후반기 들어 22경기에 구원 등판해 26.2이닝을 던져 6볼넷 31탈삼진 평균자책 2.70을 기록했다.

당시 이상동의 활약을 지켜본 사령탑은 “제대하고 곧장 1군에 올라왔으니 선수가 힘들었을 만 했다. 그런데 최근 공의 힘이 워낙 좋다. 지난 조정기 동안 몸 상태나 체력을 잘 회복한 것 같다”고 반색했다.

후반기 활약을 토대로 성장한 이상동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좋은 투구를 펼쳤다. LG와 맞붙은 한국시리즈 3, 5차전에서의 중요한 순간, 이 감독은 이상동에게 멀티이닝을 맡기며 한층 더 두터워진 신뢰를 드러냈다. 이상동은 내년 시즌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KT 신인 외야수 정준영(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타선에서는 외야수 정준영이 ‘새 얼굴’로 등장했다. 2004년생 고졸 루키 정준영은 앞선 정규시즌에도 강한 어깨와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로 많은 이목을 끌었다. 지난 7월 2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보여준 맹활약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 후 허벅지 부상을 당한 정준영은 긴 회복기 끝에 가을야구 시즌에 맞춰 팀에 복귀했다.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5경기 동안 출전이 없었던 정준영은 한국시리즈에서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늘구멍과도 같은 대타 타석을 통해 기회를 본인의 것으로 만든 것. 정준영은 10일 홈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 9회 말 1사 상황, 대타로 들어가 LG 마무리 고우석이 6구째 던진 빠른 공을 때려 좌익수 앞 1루타로 출루했다. 다음날 4차전에서는 7회 말 대타 출전해 이정용의 포크볼 상대로 내야안타를 기록했다.

KT는 그런 정준영에게 한국시리즈 5차전 선발 9번타자-우익수를 맡겼다. 취재진이 정준영의 선발 출전 배경을 묻자, 이 감독은 “최근 워낙 타격감도 좋다”“아직 어린 선수인데도, 참 야무지게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 전 베테랑 내야수 김상수 역시 “그간 정규시즌 동안 지켜본 정준영은 좋은 모습을 충분히 많이 보여줬다. 오늘 긴장을 많이 느끼겠지만, 잘 이겨낼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정준영은 4회 초 득점 기회가 생기면서 팀 사정상 이른 시점에 교체됐고, 그렇게 데뷔 첫 가을야구를 마무리했다. 짧다면 짧은 경험이지만, 첫 한국시리즈 무대는 향후 정준영의 성장에 있어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또 정준영의 올해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월 타이완에 예정된 제30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대표팀으로 승선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5차전 시작 전 더그아웃에서 만난 정준영이 “아프지 않고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한 까닭이다.

KT는 그 어느 때보다 값진 한 해를 보냈다. 사령탑의 말처럼, ‘10년 이상을 책임질’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무대 위로 올라섰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병행 중인 마법사 군단 앞엔 희망찬 미래가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