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디-노시환, 문동주-윤영철만 언급하면 홍창기-이주형은 서운해요 [춘추 집중분석]
오늘 오후 2시 열리는 KBO 시상식에서 MVP와 신인상의 주인공이 공개된다. MVP는 페디와 노시환의 2파전, 신인왕도 문동주와 윤영철의 2파전으로 굳어진 분위기다.
[스포츠춘추]
KBO리그 최우수선수(MVP)와 최우수신인상은 개인 타이틀 수상자에게 유리한 운동장이다. MVP 후보 선정 기준만 봐도 한국야구기자회가 선정한 후보 외에 각 개인 타이틀 1위 선수가 ‘자동으로’ 후보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오늘 오후 2시 KBO 시상식에서 공개될 2023 MVP 투표 결과도 일찌감치 2파전 양상으로 굳어진 분위기다.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NC 다이노스 에릭 페디와 홈런-타점 2관왕을 차지한 한화 이글스 노시환의 경쟁 구도다.
페디-노시환 2파전 양상…홍창기-김혜성도 기억할 만한 활약
페디는 2023시즌 리그의 지배자이자 생태계 파괴자로 군림했다. 총 30경기에 등판해 20승을 거뒀고(6패), 평균자책은 반올림해 2.00을 기록했다. 여기에 삼진도 209개를 잡아내 다승-평균자책-탈삼진 3개 부문 1위를 달성했다. 페디에 앞서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투수는 해태 선동열(1986, 1989, 1990, 1991년), 한화 류현진(2006년), KIA 윤석민(2011년) 등 세 명밖에 없었다.
한 시즌 20승-200탈삼진 동시 달성도 1986년 선동열 이후 37년 만에 나왔다. 장명부, 최동원, 김시진, 선동열에 이은 역대 5번째이자 외국인 투수로는 최초의 기록. 투수의 승리를 크게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 통계분석 시각으로 봐도 페디가 뛰어난 시즌을 보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순 없다.
워낙 압도적인 성적이라 페디의 수상 여부보다는 과연 몇 표를 받을지가 더 관심을 끄는 분위기다. 페디 본인도 내심 MVP 수상을 기대하는 듯하다.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던 페디는 이번 시상식 참석을 위해 26일 입국했다. 대리수상이 관행이었던 대부분의 외국인 선수와 달리 직접 시상식에 참석한다는 건 그만큼 수상 가능성을 확신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편 페디의 만장일치 수상을 저지할 대항마로는 한화 노시환이 첫손에 꼽힌다. 노시환은 2023시즌 홈런 31개로 1위, 타점 101점으로 1위에 올랐다. OPS도 0.929로 SSG 최정(0.93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오랜만에 등장한 토종 거포의 상징성과 지역 기자단이 포함된 투표인단 구성으로 볼 때 상당한 표가 노시환에게 돌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야구계에서도 페디의 만장일치 MVP는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역대 MVP 가운데 만장일치 수상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 베어스 박철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비록 페디와 노시환의 2파전 구도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MVP 경쟁자로 손색없는 시즌을 보낸 키움 김혜성과 LG 홍창기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홍창기는 리그 최다타석인 643타석에, 김혜성은 2위인 621타석에 나섰다. 김혜성이 최다안타 2위인 186안타를, 홍창기가 174안타(3위)를 기록했고 홍창기는 볼넷 88개로 리그 1위에 올랐다. 총 출루횟수도, 출루율도 모두 홍창기가 1위. 타율 부문에서 김혜성은 0.335로 3위에 올랐고 홍창기는 0.332로 4위였다.
MVP는 ‘Most Valuable Player’, 가장 가치 있는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야구에서 가치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야구의 승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올리거나 적게 실점해야 가능하다. 많은 득점을 내려면 많이 출루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 홍창기와 김혜성을 능가하는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두 선수 다 눈에 확 띄는 개인 타이틀이 없어, 실제로는 거의 표를 받지 못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동주-윤영철 2파전에 가린 이주형의 활약
신인왕 경쟁 역시 일찌감치 2파전으로 정리가 끝났다. 한화 이글스의 차세대 에이스 문동주와 KIA 타이거즈의 좌완 영건 윤영철이 경쟁하는 그림이다.
지난해 프로에 데뷔해 아슬아슬하게 신인 자격을 유지한 문동주는 올해 23경기에 등판해 118.2이닝 8승(8패) 평균자책 3.72를 기록했다. 규정이닝엔 도달하지 못했지만 시즌 내내 꾸준히 로테이션을 소화했고 팀 내 투수 가운데 최다이닝과 다승 2위를 기록했다.
문동주는 신인왕 후보 투수 가운데 가장 좋은 타석당 볼넷 비율(8.3%)과 삼진 비율(18.9%)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임에도 불펜 투수인 유영찬, 최지민보다 높은 탈삼진율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금메달 4연패를 이끄는 활약으로 투표인단의 잠재의식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도 유리한 대목이다.
여기에 맞서는 윤영철은 올해 갓 고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1년 차 신인이다. 총 25경기에 등판해 122.2이닝을 투구했고 8승(7패) 평균자책 4.04를 기록했다. 역시 규정이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빼어난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으로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만약 문동주가 신인상 수상에 성공하면 한화는 2006년 류현진 이후 17년 만에 신인왕을 배출하게 된다. 한화 프랜차이즈에서 신인왕은 이정훈(1987)-김태균(2001)-류현진까지 세 차례 나왔다. 윤영철은 이순철(1985)-이의리(2021) 이후 역대 세 번째 타이거즈 신인왕에 도전한다. 야구 관계자 사이에선 강한 임팩트를 남긴 문동주의 수상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는 분위기다.
한편 신인왕 경쟁에서도 2파전에 가려 거의 거론되지 않은,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후보가 있다.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 후계자’ 이주형이다. 시즌 중반 트레이드로 키움 유니폼을 입은 이주형은 총 69경기에 출전해 규정타석의 50% 수준인 243타석만 소화했다.
그런데 이 적은 타석수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굉장했다. 규정타석이 아닌 200타석 이상을 기준으로 정렬하면 이주형의 기록은 리그 정상급 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타율은 0.326으로 7위, 출루율은 0.390으로 14위, 장타율도 0.507로 5위에 해당한다.
조정 득점창출력을 나타내는 wRC+는 157.1로 전체 4위. WAR 역시 스탯티즈 기준 2.55승, 스포츠투아이 기준 2.14승으로 신인 가운데서는 문동주(2.95승/2.32승) 바로 다음가는 수치를 남겼다. 만약 이주형이 조금만 더 일찍 1군 무대에 데뷔해, 100타석 정도 더 출전했다면 신인왕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