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선수단 민심, 분노한 팬심…SSG는 수습할 수 있을까 [춘추 이슈분석]

드라마 방영 4년 만에 현실판 스토브리그를 찍고 있는 SSG. 김성용 단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팀을 떠났지만 아직 사태 수습까지는 갈 길이 멀다. 상처받은 선수단과 팬들의 마음을 달래는 게 우선 순위다.

2023-11-30     배지헌 기자
SSG 팬들은 홈 구장에 근조화환을 보내는 등 김강민 이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SSG)

[스포츠춘추]

인천 SSG랜더스필드는 4년전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주무대였던 장소다. 같은 곳에서 현실 스토브리그를 다시 찍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불과 1년 전 감동의 휴먼드라마 장르였던 SSG 시리즈가 갈수록 막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11월 29일엔 김성용 단장이 일련의 사태를 책임지고 구단을 떠났다. SSG는 앞서 25일 “최근 감독 및 코치 인선과 2차 드래프트 과정에서 생긴 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 단장을 경질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원래 보직인 R&D센터장으로 자릴 옮겼다. 이미 다른 직원이 R&D팀장으로 승진 발령한 상황에서 그 위에 센터장 자리를 다시 만든 격이라 ‘피신성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28일 저녁 김 단장이 사직서를 내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SSG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사진=SSG)

김강민에 최저연봉 제안? 긍정도 부정도 않고 말 아끼는 SSG 

김 단장이 떠나면서 최근 SSG를 둘러싼 많은 의혹과 논란이 미스터리의 영역에 남게 됐다. 김강민 사태와 관련한 숱한 의문도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다. 가령 ‘구단이 김강민에게 내년 시즌 최저연봉을 제시했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2차 드래프트에서 김강민이 한화에 지명된 뒤 야구계에선 ‘김강민이 구단으로부터 굴욕적인 최저연봉 제안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떤 사람은 “구단 관계자가 ’현역으로 뛸 거면 3천만원 받고 뛰어야 한다’ 했다더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3천만원은 모르겠고 연봉을 후려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구단이 원클럽맨 프랜차이즈 선수에게 은퇴를 강요한 것이나 마찬가지. 한두명이 얘기했으면 그냥 뜬소문으로 여겼을 텐데 워낙 많은 사람이 같은 얘기를 하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일단 구단에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처음 이 소문에 관해 질의했을 때 SSG 관계자는 “김강민 선수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입장 외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 지금은 그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변을 대신했다.

한 일간지에서 관련 보도가 나온 뒤에도 입장에 큰 변화는 없었다. 같은 관계자는 “구단에서 그런 발언(3천만원 제안)을 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한 건 아니다. ‘만약 김성용 단장이 그런 말을 했다면, 이런 의미가 아니었겠냐’라고 말씀드린 것이고 당사자들만이 아는 일이다. 단장님이 떠나신 마당에 구단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SK 와이번스 시절부터 구단을 봐온 야구인들은 -소문이 사실일 경우를 전제로- 김성용 단장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구단과 긴밀하게 교류하는 관계자는 “김강민 정도 비중있는 선수를 그렇게 다루는 건 민경삼 대표 정도는 돼야 가능하다. 외부인이고 프로야구 경력이 거의 없는 김 단장이 했을 법한 일은 아니다. 팀장급에서 가능한 일은 더더욱 아니다”란 의견을 냈다. 그러나 구단에선 다른 어떤 직원이나 인사도 김강민에게 연봉 관련 대화를 나눈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외부로 알려지면서 말이 와전됐을 거라는 추측도 나온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샐러리캡 문제를 얘기하면서 연봉 삭감에 대해 양해를 구한 게 오해를 샀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전했다. SSG는 시즌 뒤 김강민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 시즌 중 은퇴 경기와 코치 전환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선수 월봉’을 언급한 게 3천만원 소문으로 둔갑했을 가능성도 있다. SSG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구단에서 선수 월봉에 코치 연봉을 합한 8천만원 정도를 책정했는데, 그룹에서 1억원을 맞춰주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분명한 건 은퇴 계획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선수가 감정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SSG는 작년 통합 우승 이후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시간을 날렸다. 늦어도 2차 드래프트 전에는 마무리지었어야 할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숙한 일처리로 다른 구단에서 김강민을 데려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분노한 팬들은 29일 랜더스필드 앞에 50여개의 근조 화환을 보내 항의했다.

김성용 전 SSG 단장(사진=스포츠춘추 DB)

상처받은 선수단 민심, 팬심 달랠 길 있나

SSG 구단은 사태 수습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우선 스토브리그 남은 과제를 해결하려면 후임 단장부터 뽑아야 한다. 일단 구단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쪽으로 기조를 정했다. 유능한 인사를 데려온다는 방침이지만, 사실 물러난 김성용 단장도 야구계에서 뛰어난 지도자이자 엘리트로 인정받는 인재였다. 야구계에선 SK 출신이 주축인 프런트에서 몇 안되는 SSG 사람인 김 단장이 고립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야구단 업무가 처음인 외부인을 들이면 적응기와 시행착오가 불가피한데, 누굴 데려와도 김 단장과 비슷한 고초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외부에선 아예 조영민 운영팀장처럼 구단 일에 잔뼈가 굵은 인사에게 단장을 맡기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분간은 민경삼 대표가 단장 역할까지 맡을 예정. 민 대표는 내년까지 사장 임기를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의사결정에서 배제됐다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김 단장 경질도 민 대표가 그룹에 보고해서 승인을 받아냈다.

어쨌든 내년에도 야구는 해야 한다. 스토브리그 전력보강도 중요하지만 뒤숭숭한 선수단과 분노한 팬들의 마음을 달래는 게 급선무다. 현재 SSG는 일련의 사태로 선수단의 동요가 큰 상황이다. 김강민 사태 외에도 통합우승을 함께한 감독과 코치가 대거 교체되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선수단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베테랑 선수가 35인 보호명단에서 제외되고, 이 사실이 외부에 공개된 것도 민심 악화를 가져왔다. 운영팀 내부에 상습적으로 구단 정보를 유출해온 인물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린 게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SSG 선수단과 자주 교류하는 관계자는 “해당 선수는 부상 복귀 시즌을 제외하면 딱 1년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1년 때문에 구단에서 내치려고 한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 선수들 사이에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나’ ‘우리도 비슷한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불신의 공기는 스토브리그는 물론 내년 시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당장 연봉 협상부터 냉랭한 분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베테랑이자 우승포수인 김민식과의 FA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2차 드래프트 뒤에 협상하겠다던 구단은 포수 2명을 영입한 뒤 테이블에 나왔다. 이 자리에서 구단 측은 김민식이 필요하다는 뜻은 전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조건을 제시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샐러리캡 때문에 더 주기 어렵다‘는 스탠스에서 크게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망하고 분노한 팬들을 달래는 건 더 어려운 문제다. 구단은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아직 어떤 공식 사과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지난 겨울 비선실세 의혹 때처럼 스프링캠프 시작하고 시즌 개막하면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구단의 방향성이 옳다고 확신해도, 그걸 팬들이 납득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 역시 구단의 의무다. 올겨울 SSG는 매스컴과 팬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여론이 지금 같아선 아무리 옳은 혁신이라도 성공하기 어렵다. SSG가 깊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