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 찾는 베테랑 서건창-송은범-이재원, 차디찬 겨울 이겨낼 수 있을까 [춘추 이슈분석]
전력 외 선수들이 새 둥지를 찾고 있다. 올겨울 방출 명단에는 MVP 출신 내야수 서건창부터, 통산 88승 우완 송은범까지 굵직한 노장들도 이름을 올렸다. 늘 그랬듯이 베테랑들의 ‘현역 연장’은 좀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스포츠춘추]
스토브리그는 항상 춥기 마련이다. 개장 후 대형 FA(자유계약선수)처럼 뜨거운 소식 뒤에 전혀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기 때문. 그 어느 때보다 차디찬 겨울을 보내고 있는 방출 선수들 얘기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달 30일 2024년 보류선수 명단을 공시했고, 재계약 불가 대상으론 총 59명이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지난해에는 57명이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바 있다. 그중 우완 임창민(두산→키움), 외야수 이정훈(KIA→롯데) 등을 비롯해 12명이 새 소속팀을 찾아 현역 연장에 성공했다. 특히 불혹이 임박한 임창민은 올 시즌 영웅 군단 새 일원으로 51경기 동안 2승 2패 1홀드 26세이브 평균자책 2.51 맹활약을 펼쳤다. 방출 선수에서 매력적인 FA로 탈바꿈하기까지 불과 1년이 채 안 걸렸다.
다만 모두에게 ‘재취업’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프로 무대 재입성을 위해 입단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한다. 올해도 예년과 다르지 않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벌써 많은 팀이 방출 선수들을 불러 입단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바늘구멍’ 수준 입단 테스트, 베테랑은 통과하기 더 어려울 전망
이번 방출 명단에는 2016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출신 우완 김재영부터 2014 정규시즌 MVP 내야수 서건창, 한국시리즈 우승만 3차례인 포수 이재원 등 다양한 선수가 포함됐다.
서건창은 LG의 방출 소식이 전해진 당일 키움으로부터 2024시즌 동행 제안을 받았다. 키움은 서건창과 2012년부터 10년을 함께한 팀이다. 이와 관련해 고형욱 키움 단장은 지난 7일 스포츠춘추와의 통화에서 “선수 본인이 누구보다 가장 고민이 깊을 것이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계속 기다릴 생각”이라고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편 SSG에서 나온 이재원은 “지금으로선 크게 결정된 것이 없다”며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고사했다. 이 가운데 통산 88승 경력의 베테랑 우완 송은범이 강력한 현역 연장 의지를 보이고 있다.
송은범은 1984년생으로 SK(전 SSG), KIA, 한화, LG 등에서 뛰면서 통산 680경기 88승 95패 57홀드 27세이브 평균자책 4.57을 기록했다. 전 소속팀 LG가 통합 우승을 일궈낸 올해의 경우, 너무나 두터운 불펜 뎁스에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다. 이에 2023시즌 1군 등판 기록이 4경기 동안 3.2이닝(평균자책 2.45)에 그쳤다.
새 둥지를 찾고 있는 송은범은 내년이면 40세가 된다. 당장 올 시즌만 해도 KBO리그 1군에서의 40세 이상 투수는 1982년생 우완 오승환(삼성), 1983년생 좌완 고효준(SSG) 둘뿐이다. 이처럼, 40대 투수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연락이 닿은 송은범 측은 “공 스피드도 여전히 빠르고, 2년 전 무릎 부상은 완벽하게 회복한 지 오래”라며 현재 몸 상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한 “그런 모습을 입증하기 위해 입단 테스트 자리를 계속 찾아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방출 선수의 재취업은 흔히 ‘바늘구멍’에 비견되곤 한다. 취재에 응한 지방권 A팀 관계자는 “리스트업을 했는데, 고민이 깊다. 아무래도 최종 영입으로 이어지려면 팀 내 기존 선수들과 비교해 강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뎁스 강화에 집중하고 있는 B팀 단장도 “아직까지는 매력적인 선수가 많지 않다. 눈에 확 들어오는 이름은 없더라. 그래도 다양한 절차를 거쳐 옥석을 고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겨울은 노장들에게 유난히 추운 계절이다. ‘분위기 쇄신’이라든지 ‘에이징 커브’ 등 명목하에 더 냉혹한 평가를 받는다. 가령 세대교체가 당면과제인 수도권 C팀 관계자는 “방출 선수 테스트는 꾸준히 하고 있다. 잘 알려진 이름보다 부상 등으로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신예 위주로 살펴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도 베테랑들의 겨울나기는 제법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2년 전 방출 선수→우승팀 핵심 전력…LG 김진성·SSG 노경은
그럼에도 ‘대박’은 늘 존재했다. 떨어진 기량을 향한 의문을 극복한 뒤 새 소속팀에서 핵심 선수로 거듭난 베테랑 김진성(현 LG), 노경은(현 SSG)이 그랬다. 두 선수 모두 2년 전 쓰라린 방출을 경험한 바 있다.
먼저 1985년생 우완 김진성은 과거 SK, 넥신(전 키움) 등의 기나긴 역경을 겪어 ‘9구단’ NC 창단멤버가 됐다. 그 뒤 2021년까지 9시즌 동안 공룡군단의 뒷문을 책임지며 470경기를 구원 등판했다. 또 2020년에는 NC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부진(42경기 평균자책 7.17)에 빠진 김진성은 전력 외 판정을 받고 팀을 떠나야만 했다.
반전은 그 이후부터다. ‘백전노장’ 김진성은 LG 유니폼을 입고 2022년 빼어난 활약(67경기 평균자책 3.10)을 펼쳐 시즌 종료 후 FA 2년 잔류 계약까지 받았다. LG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김진성은 올 시즌 80경기 5승 1패 21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 2.18을 기록하며 팀 통합우승을 크게 도왔다. 시즌 도중 통산 100홀드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는 그런 김진성의 올해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를 2.96으로 매겼다. SSG 마무리 서진용(3.63) 단 한 명만이 이보다 더 높았다.
김진성의 역할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팀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교과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야구계 관계자들이 김진성의 자기관리 및 성실함을 끊임없이 칭찬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올해 KBO리그 최다 불펜 이닝(83)을 던진 우완 마당쇠 노경은도 김진성 못지않게 뛰어난 한 해를 보냈다. 2003년 두산에 입단해 롯데, SSG를 거쳐 올해로 프로 21년차를 맞았다. 2년 전 롯데에서 방출된 후로는 입단 테스트를 통해 SSG에 합류했다. 1984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지난해 79.2이닝 소화를 기점으로 마운드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다.
노경은은 올해 필승조로 활약하며 8승 5패 29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 3.58을 기록했다. 심지어 아웃카운트 4개 이상을 책임질 때가 잦았다. 올 시즌 76경기를 모두 구원 등판했고, 평균 1.1이닝을 소화했다. 홀드의 경우에는 KT의 국가대표 영건 박영현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시즌 막바지 스포츠춘추와 만난 노경은은 밝은 미소와 함께 “사람들에게 ‘내 구위가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당당한 소회를 드러내기도 했다. 불혹을 앞둔 노경은이 이날 마운드에서 던진 공은 전광판 기준으로 무려 148km/h까지 나왔다. 이러한 노경은의 모습은 ‘노장들은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인위적인 분위기에 큰 울림을 준다. 프로 무대에서는 나이보다 실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스토브리그는 10팀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부족했던 전력을 갈고닦는 시간으로 쓰인다. 방출 선수였던 노경은과 김진성은 공교롭게 2022, 2023년 통합 우승팀인 SSG와 LG의 퍼즐이 됐다. 올겨울 그런 선수가 또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명예 회복에 나선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가 주어질까. 결코 쉽지만은 않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한번 꽃을 피워낼 베테랑들을 향해 이목이 쏠리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