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달러 받는데 먹튀 가능성 없다? 오타니 대형 계약이 KBO리그에 주는 교훈 [배지헌의 브러시백]
오타니 쇼헤이의 7억 달러 계약을 계기로 미국 프로스포츠의 탄탄한 재정 기반과 비즈니스 모델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엄청난 거액을 한 선수에게 쏟아붓고도 결코 적자가 아니라고, 심지어 흑자도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포츠춘추]
12월 10일(한국시각) 공개된 ‘야구 황제’ 오타니 쇼헤이와 LA 다저스의 10년 7억 달러(약 9240억 원) 계약 소식은 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오타니의 블록버스터 계약은 북미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고액이자 최대 규모 신기록이다. 전 팀 동료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의 12년 4억 2,650만 달러 연장 계약을 가뿐히 뛰어넘었고, 그 외 무키 베츠(12년 3억 6,500만 달러), 애런 저지(3억 6,000만 달러), 매니 마차도(3억 5,000만 달러), 프란시스코 린도어(3억 4,100만 달러),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3억 4,000만 달러), 브라이스 하퍼(3억 3,000만 달러) 등 슈퍼스타들의 계약을 시시해 보이게 만들었다.
NFL 쿼터백 패트릭 마홈스(캔자스시티 치프스)의 4억 5,000만 달러의 계약도 오타니 계약엔 미치지 못한다. ‘야후 스포츠’에 따르면 오타니가 받는 연간 7,000만 달러는 미국 프로 스포츠 최고연봉자 NBA 데미안 릴라드(밀워키 벅스)보다 연간 1,000만 달러가 더 많은 금액이고,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가 메이저리그 축구팀 인터 마이애미에서 뛰면서 매년 받는 5천만~6천만 달러의 연봉을 뛰어넘는 액수이기도 하다. 저스틴 벌랜더와 맥스 슈어저가 세운 종전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 4,330만 달러보다도 높은 액수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6,090만 달러)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5,690만 달러)의 2023년 개막일 페이롤보다 오타니의 1년 연봉이 많다.
애초 오타니가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와 야구계에선 총액 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예상했다. FA 시장이 열린 뒤에도 6억 달러 정도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LA 에인절스 프런트에선 ‘오타니 6억 불’ 보도에 대해 비웃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소시민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성공을 이어온 오타니는 5억 불도 6억 불도 아닌 7억 달러 계약에 성공했고, 야구는 물론 북미스포츠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오타니, 경기장 안에서는 3천만 달러…경기장 밖에서는 5천만 달러 가치”
7억 달러. 한국 돈으로 1조 원에 가까운 거액이다. 단순히 야구장에서 치고 던지는 퍼포먼스만으로 이 가치를 해내기는 쉽지 않다. 물론 오타니는 미국 언론의 표현대로 “1세기 반에 걸친 야구 역사상 가장 재능 있는 야구 선수”다. “엄청난 파워와 스피드, 강력한 팔의 힘, 파괴적인 변화구 등 유례가 없는 기술과 독특한 시장성을 자랑”하는 “야구 역사상 가장 독특한” 선수가 오타니다. 그는 최근 3년 사이 두 차례나 만장일치로 리그 MVP를 수상했다. 시장에서 스타급 투수를 영입하려면 연간 3,5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스타급 타자를 영입하려고 해도 연평균 3,500만 달러는 투자해야 한다. 건강한 오타니는 투수로도 타자로도 최고다. 숫자로만 따지면 7천만 달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오타니는 야구를 위해 텐마 박사가 개발한 최고성능 로봇이 아닌 인간이다. 인간은 세월이 지나면 녹슬고, 병들거나 다치게 마련이다. 오타니는 이미 한 차례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토미존)을 받은 이력이 있다. 현재도 정체불명의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이다. 미국 매체 표현을 빌리면 “오타니와 그의 에이전트는 아직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다저스는 이미 오타니의 의료 기록을 검토했고, 조만간 메디컬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오타니의 의료 기록이) 그가 다시 예전 같은 수준으로 투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저스의 희망을 꺾지 않았다”고 말했다.
분명한 건 오타니가 적어도 2024시즌 안에는 투수로 등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MVP급 투수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매체의 표현을 빌리면 오타니는 “투수로서의 미래가 불투명하고, 7월이면 서른 살이 되며, 체력적으로 힘들고 전례가 없는 투타 겸업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쩌면 남은 커리어 중에 투수로 뛸 수 있는 시간은 채 5년도 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지명타자나 코너 외야수만 가능하다면 오타니의 운동장에서 가치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30대 중반 이후 찾아올 자연스러운 생산성 저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타니에게 7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을 투자한 다저스의 결정이 과연 현명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오타니급 선수의 계약을 살펴볼 때는 그라운드 안에서 생산하는 가치에 더해 야구장 밖에서 만드는 가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시장성이 높은 선수 중 하나인 오타니는 티켓 판매, 텔레비전 광고와 중계권료, 스폰서십 계약을 주도하고 있다. 한 MLB 평가자는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오타니는 말 그대로 돈 공장이다. 광고만 봐도 그렇다”면서 “온 일본의 시선이 오타니를 향한다. 그들에게는 마이클 조던과 같은 존재이고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LA 에인절스는 오타니 관련 “경기장 내 광고, 방송 광고, 프로모션과 마케팅 계약을 통해 연간 약 1,000만 달러에서 2,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에인절스 경기장 간판의 상당 부분을 일본 광고가 차지했고, 오타니의 유니폼은 가장 높은 판매량을 차지했다. 오타니를 보기 위해 지구 반 바퀴 떨어진 일본에서 찾아온 팬도 많았다.” 스포르티코에 따르면 오타니는 2023년 스폰서십으로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한 MLB 구단 임원은 다저스처럼 세계적인 인지도와 유서 깊은 경기장, 그리고 지난해 리그 최고 관중 기록(경기당 47,371명)을 세운 구단이라면 에인절스가 오타니를 통해 거둔 수익의 두 배 이상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통해 다저스는 오타니의 연봉 일부를 회수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팀으로서 오타니의 유명세를 더 증폭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비즈니스 전문 매체 블룸버그는 “이번 계약으로 오타니는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다.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 일본항공, 코세, 세이코 그룹 등 그의 기업 후원사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전설적인 베이브 루스에 비유되는 오타니는 과거에도 후원사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한 대학 교수는 “오타니의 놀라운 성공으로 오타니를 보려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관련 상품 판매 증가 등 여러 이점이 생긴다”면서 “오타니가 다저스로 합류하면 내년 약 643억 엔(4억 4,400만 달러)의 경제 효과를 거둘 것이며, 이는 LA 에인절스에 남았을 때(약 500억 엔)보다 더 큰 효과”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오타니노믹스’ 주장에 반론도 있다. 뉴욕 타임스는 “다저스는 지난 11시즌 중 10시즌 관중동원 1위를 차지했다”면서도 “티켓 가격을 올리는 것은 일반 팬들을 밀어낼 수 있기 때문에 까다로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일본 기업들이 다저스타디움의 광고판 구매를 거두르긴 하겠지만 “그들이 미국 기업보다 얼마를 더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자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유니폼, 모자, 상품 판매 수익은 다저스가 가져가지만, 미국 외에서 판매되는 수익은 메이저리그 30개 팀과 공유해야 한다는 제약도 있다. 또 일본 등 외국과의 미디어 계약 역시 MLB 차원에서 통제하고 있다. 오타니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수익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분명한 건, 오타니가 그라운드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큰 수익과 가치를 만들어낼 선수라는 점이다. 한 MLB 평가자는 디 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오타니가 더는 투수로 뛰지 못하고 외야수로만 나오는 상황을 가정한 뒤 “그에게 5천만 달러의 가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3천만 달러의 가치만큼 충분히 좋은 타격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TV와 간판, 유니폼 판매, 로고 부착 등을 합치면 경기장 안에서는 3천만 달러의 가치가 있고 경기장 밖에서는 5천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 꽤 괜찮은 투자”라고 지적했다.
먹튀도 알고 보면 먹튀가 아닌 MLB, 먹튀가 나올 수밖에 없는 KBO
이처럼 오타니는 천문학적인 거액을 받으면서도 이른바 ‘먹튀’로 전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계약기간 10년 내내 MVP급 활약을 하지 못하더라도, 경기장 밖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과 만들어내는 가치로 충분히 7억 달러 돈값을 해낼 것이다. 금지약물에 적발된다거나(그럴 리 없겠지만) 극단적인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는 이상(당연히 그럴 리 없지만) 오타니는 계약기간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이고, 경기장 밖에서도 가치 있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이처럼 메이저리그는 대형 스타 선수를 영입할 때 단순히 팀 전력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시즌티켓 판매, 중계권, 광고, 유니폼 판매와 같은 비즈니스까지 치밀하게 계산기를 두드린 뒤 결정한다. 말도 안 되는 오버페이로 보이는 계약도 실제로는 티켓과 각종 굿즈 판매, 광고 판매, 선수가 야구단에 가져올 여러 유·무형의 가치로 충분히 상쇄된다는 계산 하에 이뤄진다. 경기장에서의 성적만 보고 ‘먹튀’라 비난받는 선수도 실제 구단이 챙긴 이익을 따져보면 먹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야구는 FA 먹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일단 선수 한 명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경제적, 산업적 가치가 제한적이다. 제아무리 이대호나 이승엽을 광고모델로 세워도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한정돼 있다. 프로야구가 아직 산업으로서 무르익지 않은 단계라, ‘야구장 밖’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구단들이 대형 FA를 데려오는 이유는 오로지 팀 성적을 위해서다. 그리고 FA를 데려오는 비용은 모기업에서 내려오는 ‘지원금’에서 나온다. 한 구단 관계자는 “FA 시장을 앞두고 시장에 나오는 FA 선수를 대상으로 내부 회의를 가진다. 전력보강을 위해 어떤 선수가 필요한지 검토한 뒤, 계약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책정해 그룹에 보고한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보고 뒤 모기업의 승인이 떨어지면 구단은 FA 시장에 참전해 원하는 선수와 계약을 맺는다. 선수 몸값은 매년 내려오는 모기업 지원금에 포함된다. 대형 FA 선수를 영입하면, 그만큼 모기업에서 받는 지원금 액수도 커진다.
이런 시스템에선 구단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 그룹 오너의 결단이 선수 영입을 좌우한다. 선수의 가치에 대한 객관적 근거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선수 몸값이 책정된다. 정량평가는 없고 정성평가만이 난무한다. 왜 그 선수에게 그만큼의 돈을 줘야 하는지, 경기력 외에 어떤 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지, 선수 영입을 통해 구단이 얻을 수 있는 정확한 수익은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프로구단 마케팅 팀장 출신인 김경민 한국핸드볼연맹 사업본부 실장은 몇 해 전 ‘FA 광풍’ 당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모기업은 왜 이런 거액의 집행을 승인하는 것인가? FA 선수 영입이 구단과 모기업에 선사하는 가치나 효용과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아마 없을 것”이라며 “이런 건 주식회사의 비즈니스라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오타니의 7억 달러 계약은 분명 놀랍고 충격적이며 가슴 뛰게 만드는 소식이다. 하지만 깜짝 놀라고 부러워하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이런 초현실적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결코 적자가 아니라고, ‘흑자’도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메이저리그의 ‘비즈니스’ 모델을 우리 KBO리그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오타니 같은 슈퍼스타를 키워내고 스타를 통해 구단과 리그 전체가 큰 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한 꿈이라고? 7억 달러 사나이 오타니도 한때는 일본 시골 학교의 평범한 야구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