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2루수’ 김혜성은 왜 유격수 복귀를 시도할까 “ML 도전시 가치 극대화” [춘추 이슈분석]
2년 연속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혜성은 내년 시즌 3년 연속 수상이 아닌 ‘유격수 골든글러브’에 도전한다. 유격수로 인정받은 뒤 가치를 극대화해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그림이다.
[스포츠춘추=삼성동 코엑스]
골든글러브는 그해 포지션별 최고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2루수 부분 골든글러브를 받았다는 건 리그의 내로라하는 2루수 중에서 단연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여기다 2년 연속 2루수 황금장갑을 수상했다면, 그가 바로 우리 시대 최고의 2루수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KBO리그 역사상 2년 이상 연속 골든글러브 2루수 수상자는 정구선(1983~85), 김성래(1986~88), 강기웅(1989~90), 박정태(1991~92, 1998~1999), 안치홍(2017~2018), 박민우(2019~2020)까지 총 7차례가 나왔다. 여기에 지난해와 올해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이 새로 이름을 올리면서, 레전드 2루수로 가는 첫 관문을 가뿐히 통과했다.
보통 한 포지션에서 이 정도 성공을 거둔 선수는 다음 해에도, 그 후년에도 계속 같은 포지션에 남아 골든글러브 연속 수상에 도전하게 마련이다. 김혜성이라면 정구선, 김성래가 세운 ‘3년 연속’ 기록을 넘어 박정태의 2루수 최다 골든글러브(5회)도 충분히 노려봄 직하다. 하지만 김혜성은 그보다 훨씬 원대한 그림을 그리는 듯하다. 그는 내년 시즌 2루수가 아닌 유격수로 뛰길 희망하고 있다. 유격수는 프로 입단 당시 김혜성의 원래 포지션이자, 2루수보다 먼저 골든글러브를 받았던 포지션이기도 하다. KBO리그 역사상 한 선수가 유격수와 2루수로 모두 골든글러브를 받은 건 김혜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빅리그 꿈꾸는 김혜성, ‘유격수’로 가치 극대화 노린다
“원래부터 유격수에 욕심이 있었습니다.” 2023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린 12월 11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난 김혜성이 말이다. “그래서 (홍원기) 감독님께 말씀을 드려보고 싶었어요. 저 혼자 결정할 순 없으니까, 얘기를 나눠보고 잘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요.”
김혜성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유격수 복귀는 메이저리그 진출이란 큰 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혜성은 내년 시즌 뒤 포스팅을 통한 국외리그 진출 자격을 얻는다. 키스톤콤비로 호흡을 맞췄던 선배 김하성이 메이저리그 주전 내야수로 이름을 날리고, 입단 동기 이정후가 미국 진출을 추진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김혜성 역시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웠다.
“이정후는 지금 미국에서 운동하면서 잘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만간 계약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혜성이 전한 이정후의 근황이다. “친구로서 정후가 좋은 계약을 따내서, 얼른 한국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팀에 가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어요. 부담될 것 같아서, 일부러 물어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은 물론 미국야구에서도 유격수는 다른 포지션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보통 아마추어 야구에서 가장 운동능력과 야구센스가 뛰어난 선수가 맡는 포지션이 유격수다. 그러다 고교와 대학 레벨로 올라가며 하나둘씩 다른 포지션으로 전향하고, 최고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선수들만이 살아남아 프로 유격수가 된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출신의 야구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유격수는 수비가 최우선이다. 기본적으로 수비력을 갖춘 선수들이 유격수를 맡고, 여기에 타격까지 겸비한 선수는 그야말로 올스타급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2023시즌 메이저리그 유격수 가운데 조정 득점창출력(wRC+)가 평균치(100) 이상인 선수는 9명에 불과했는데, 이는 포수(5명) 다음으로 적은 숫자다.
앞의 관계자는 “올 시즌 한때 4할 타율에 도전했던 루이스 아라에즈 같은 선수가 트레이드된 데는 포지션 제약도 작용했다고 본다”면서 “아라에즈는 2루수가 주포지션이고 1루를 겸하는 선수다. 만약 아라에즈가 유격수까지 가능한 선수였다면 가치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하성이 데뷔 첫해 타격 부진에도 꾸준히 기회를 받으며 빅리그에서 버틴 것도 결국 유격수 수비가 가능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루수만 되는 선수가 아니라, 유격수도 되는 2루수라면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김혜성이 최고 2루수에 만족하지 않고 유격수에 재도전하는 이유다.
‘유격수 김혜성’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메이저리그 A 구단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는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하성은 파워와 스피드, 수비력을 겸비한 선수였고 이정후는 최상급의 ‘배트-투-볼’ 스킬을 자랑한다”면서 “물론 김혜성도 좋은 선수지만 김하성만큼의 파워를 기대하긴 어렵고, 컨택 면에선 이정후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루와 수비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살리는 게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B구단의 스카우트는 “김혜성이 강정호, 김하성 같은 유형의 메이저리그 DNA를 지녔다고 보진 않는다”면서도 “대신 김혜성에겐 ‘영리함’이란 장점이 있다. 다른 구단 스카우트들도 하나같이 머리가 좋고 영민한 선수라고 평가한다. 이 능력이 그의 야구 재능을 앞으로 어떤 쪽으로 발전시킬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어 “만약 김혜성이 2루는 물론 유격수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면, 쓰임새 많은 선수로 더 주목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혜성이 생각하는 유격수 성공의 열쇠는? “에러를 줄여야죠”
“에러를 줄여야죠.” 만약 다시 유격수를 맡는다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묻자, 김혜성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에러’를 말했다.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받은 2021년 김혜성은 총 35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유격수로 범한 실책이 29개, 2루수로 저지른 실책이 6개였고 유격수 타구처리율은 88.12%(7위)에 그쳤다. 약간의 논란 속에 유격수 황금장갑을 받은 김혜성은 이듬해 다시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유격수는 수비가 제일 중요하고, 실책은 안 좋은 거니까요. 실책을 줄여야 제가 유격수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혜성의 말이다.
키움 출신으로 현재 다른 구단 소속인 한 코치는 “3년 전 김혜성과 지금의 김혜성은 다를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이 코치는 “김혜성이 아마추어 시절엔 유격수와 사이드암 투수를 겸했다. 그러다 보니 공을 던질 때 손목의 움직임이 다소 많은 편이다. 일반적인 송구시 손목 움직임보다 밖으로 꺾었다가 던지는 스타일”이라며 “그래서 사이드로 던질 땐 괜찮은데, 오버스로로 던지다 밸런스가 안 맞으면 크게 빗나가는 경우가 나온다”고 했다. 김혜성의 송구 실책 중에 짧은 송구는 거의 없고, 대부분 1루수 위로 넘어가는 실책이란 게 이 코치의 지적이다.
“훈련할 때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타겟을 낮게 잡고 던지면 실책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 이 코치는 “2021시즌 뒤에도 계속 풀타임 유격수로 출전했다면 지금쯤 자리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실책이 나왔겠지만 결국엔 유격수 평균 실책에 수렴했을 것”이라며 김혜성이 충분히 유격수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1군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야 했던 3년 전과, 지금의 김혜성은 다를 것이다. 이제는 잘하든 못하든 꾸준히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나. 그때보다는 훨씬 더 잘해낼 것”이라고 격려했다.
물론 메이저리그 도전이나 유격수 복귀는 어디까지나 김혜성 개인의 목표일 뿐이다. 키움이라는 팀은 선수 개인의 꿈과 자아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 아니다. 김혜성이 다시 유격수로 돌아가려면, 이 도전이 팀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고 증명해야 한다. 2021시즌의 많은 실책과 여론의 비판, 그로 인한 코칭스태프의 부담이 내년에는 재현되지 않을 거란 확신이 필요하다. 실책수와 수비력이 반드시 반비례하는 관계가 아니라도 그렇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바로 김혜성이다. 그는 ‘내년에는 유격수 골든글러브에 도전하느냐’는 질문에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면서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열심히 잘 준비하고, 포지션 문제는 하늘에 맡길 생각”이라고 신중하게 답했다. 또 “어느 포지션이든 다 준비하고 있다. 포지션을 정해놓지 않고 준비하려 한다”는 말도 했다.
만약 KBO 골든글러브도 메이저리그처럼 ‘유틸리티 부문’이 생긴다면 어떨까. 올해 메이저리그에선 멀티포지션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골드글러브 ‘유틸리티’ 부문이 신설돼 김하성이 초대 수상자가 됐다. 이에 관해 김혜성은 “좋을 것 같은데요?”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메이저리그에 생긴 것처럼, KBO에도 (유틸리티 상이) 생긴다면 새롭고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 김혜성은 “부상 없이 올해보다 더 잘해서 한 단계 성장하는 게 첫번째 목표”라고 강조했다. “메이저리그 도전보다는 작년보다, 올해의 저보다 더 잘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이뤄야 뭔가를 또 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