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징계’ 전력 있어도 일단은 후보…그만큼 외국인 시장 상황이 어렵다 [춘추 이슈분석]
KBO리그 구단들이 올겨울 ‘역대급’ 외국인 선수 구인난을 겪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 같으면 뒷순위로 미루거나 영입을 꺼렸을 선수가 우선순위로 검토되는 실정이다.
[스포츠춘추]
최근 KBO리그 구단 사이에선 ‘스펜서 왓킨스(Spenser Watkins)’가 화제다. 복수 구단이 왓킨스 영입을 추진 중이란 소식이 외국인 스카우트와 실무자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가 됐다.
현재 31세인 투수 왓킨스는 평균 147km/h 빠른 볼과 싱커, 커터,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우완투수다. 최근까지 빅리그에서도 활약했고 마이너리그 선발 경험도 풍부해 한국 구단들 입맛에 딱 맞는 선수란 평가를 받는다.
왓킨스 영입 소식은 기량보다는 다른 이유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왓킨스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마이너리거 시절인 2016년 ‘약물 남용’으로 5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이력이 있다. 당시 왓킨스는 마이너리그 약물 사용 방지 프로그램의 검사에서 두 번째 양성 반응을 보였다. 약물 남용은 경기력 향상 약물이 아닌 마리화나, 코카인, 헤로인과 같은 기호용 약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A구단 관계자는 “평소 이미지를 중시하는 구단들이 왓킨스 영입을 검토 중이라기에 놀랐다”면서 “요즘 같은 분위기에 괜찮을지 노파심이 생긴다”고 했다. 최근 한국사회는 일반인은 물론 청소년에까지 퍼진 마약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국민의 3.2%가 “마약을 해봤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마약 청정국에서 멀어진 상황. KBO리그는 2년 전 애런 브룩스(KIA)가 대마초 성분 전자담배를 주문했다가 즉시 퇴출당했을 정도로 엄격한 ‘무관용’ 원칙을 고수해 왔다.
물론 과거 징계 전력이 있다고 KBO리그에서 뛰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미국 시절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으로 징계를 받았던 외국인 선수가 멀쩡히 KBO리그에서 뛰었거나 현재도 뛰고 있는 사례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8년 전 일이고, 이후 같은 문제가 없었다는 점에서 큰 결격사유가 아니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건 예년 같았으면 구단들이 왓킨스 영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진 않았을 거란 점이다. B 구단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뒷순위로 미뤘을 선수가 영입 최우선순위라는 점이 요즘 외국인 선수 농사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지 않나”라면서 “그만한 선수 데려오기 쉽지 않다.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마이너리그 최저연봉 인상…100만 달러 매력 크지 않다”
“시장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다들 외국인 선수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C구단 외국인 스카우트 담당자가 들려준 말이다.
“일단 시장에 나온 선수가 많지 않다. 게다가 한국야구를 보험으로 여기는 선수가 많아, 오퍼를 해도 좀처럼 답을 주지 않는다.”
A구단 관계자는 “한국 오퍼를 일단 킵 해놓고 일본 쪽과 얘기를 진행해 보는 식이다. 일본 쪽이 잘 안되면 한국에서 1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에릭 페디의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유턴과 이정후의 1억불대 계약으로 KBO리그의 위상이 올라가긴 했지만, 미국 선수들 사이에선 한국야구를 한 수 아래로 보는 시선이 여전하다.
D구단 관계자는 “외국인 선수 측과 교섭할 때 과거 한국을 거쳐 미국에서 성공한 선수들의 사례도 얘기한다”면서 “메릴 켈리, 에릭 테임즈처럼 좋은 대우를 받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어필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선수들은 외부의 객관적인 평가보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영입 제안을 정중하게 고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선수도 적지 않다. ‘내가 아시아 야구에 갈 수준인가’라고 기분 나쁘다는 답변이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보기엔 한국에 와서 꾸준히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재정비하면 충분히 잘 될 수 있는 선수인데 ‘1, 2년 정도 더 도전해 보겠다. 아직 한국에 갈 생각이 없다’고 거절할 때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이 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어려움은 마이너리그 최저연봉이 74만 달러로 오르는 내년에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A 구단 관계자는 “과거 마이너 최저연봉이 40만 달러일 때는 100만 달러만 갖고도 얘기가 잘 됐다. 하지만 이제 74만 달러가 되면 한국에서 제시하는 100만 달러로는 선수들에게 크게 어필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큰돈을 받지도 못하면서 굳이 낯선 환경에서 고생할 필요가 있나’, ‘비슷한 돈을 받으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겠나. 내년이 더 걱정”이리고 말했다.
“신규 외국인 선수 100만 달러 상한 폐지 주장에 힘 실리는 분위기”
이에 구단 사이에선 신규 외국인 선수 100만 불 상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분위기다. 사실 이 문제는 과거에도 실행위원회(단장회의)에서 여러 차례 논의한 주제다. 바로 지난해에도 몇몇 구단의 요청으로 안건에 올랐지만, 다수 구단이 ‘현행 유지’를 주장해 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모 구단 관계자는 “100만 불 제한을 폐지해서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면 폐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실제로는 커진 금액이 선수가 아닌 메이저리그 구단 이적료로 쓰일 것”이라며 “지금은 100만 불 상한을 알기 때문에 미국 구단에서도 무리한 이적료를 요구하지 않지만, 제한이 없어지면 높은 이적료를 요구하는 팀이 나올 것”이란 생각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올겨울 들어 모든 구단이 예외 없이 외국인 선수 구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조짐이 보인다. 지난해까지 100만 불 상한 폐지에 소극적이었던 구단 관계자는 “100만 불 상한은 없애고 외국인 400만 불 샐러리캡은 유지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B 구단 단장은 “아예 외국인 선수 몸값 상한을 없애고 자율경쟁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게 어렵다면 전체 캡만 유지하고 100만 달러 상한은 없애는 게 차선책”이라고 주장했다.
C구단 단장은 “다들 워낙 외국인 때문에 어렵다 보니, 100만 달러 제한을 풀자는 주장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총액 제한은 유지하더라도 처음 오는 선수의 제한을 풀어서, 400만 달러를 좀 더 융통성 있게 쓸 수 있다면 구인난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14일 부산에서 열린 실행위에선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은 정식 안건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선 피치클락 등 규약 개정과 샐러리캡 폐지 혹은 조정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다. 이날 다루지 못한 안건은 내년 1월 다시 열리는 실행위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