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도 없고 김혜성도 가고, 키움의 전성기는 언제 다시 올까 [배지헌의 브러시백]
이정후는 이제 키움이 아닌 메이저리그 선수다. 김혜성도 내년 시즌이 지나면 국외 무대에 도전한다. 2013년부터 시작한 10년 전성기가 막을 내린 키움의 전성기는 다시 올 수 있을까.
[스포츠춘추]
오늘(19일)은 ‘메이저리거’ 이정후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날이다.
떠날 때는 분명 키움 히어로즈 선수였는데, 이제는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가 돼서 돌아온다니 키움 팬들로선 만감이 교차할 듯하다. 이정후가 입국장에 등장하는 순간은 그에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지만, 키움 야구단에겐 한 시대의 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다가올 것이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의 전성기 마감한 키움
사람도 팀도 전성기가 있다. 키움 히어로즈는 지난 10년이 전성기였다. 시작은 2013년부터. 그해 키움은 창단 이후 처음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당시 멤버를 보면 박병호, 강정호, 서건창, 유한준, 이택근, 손승락, 앤디 밴헤켄, 브랜든 나이트, 한현희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막강한 선수진을 구축한 키움은 그해를 시작으로 매년 가을야구 단골손님이 됐다.
강정호, 박병호가 미국으로 떠난 뒤엔 김하성이란 새 영웅이 등장해 팀을 가을 무대로 이끌었다. 2017시즌 잠시 주춤했지만, 대신 그해엔 이정후와 김혜성이란 미래의 슈퍼스타가 입단했다. 박병호가 돌아온 2018년 다시 가을야구에 복귀한 키움은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고 두 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키움은 언제나 외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낸 팀이다. 지난해에도 최하위 후보란 예상이 나왔지만 보란 듯이 가을야구 무대에 올랐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4차전까지 2승 2패를 기록하며 1위팀 SSG 랜더스를 위협한 순간도 있었다.
올해 역시 예상과는 정반대 결과 -부정적 의미에서- 가 나왔다. 지난해 준우승 멤버에 원종현, 이형종 등이 가세해 한껏 기대치를 높인 시즌. 이정후의 미국 진출을 앞두고 우승이란 ‘라스트 댄스’를 기대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시즌 초부터 온갖 불운과 최악의 시나리오가 겹겹이 쌓이면서 키움은 최하위로 추락했다. 넥센 시절인 2011년 이후 12년 만에 꼴찌를 경험한 키움이다.
지난 7시즌 동안 키움을 지킨 이정후는 이제 없다. 김혜성도 내년 시즌 뒤 국외 무대에 도전할 예정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김혜성을 끝으로 당분간 키움에선 국외진출 선수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안우진의 가능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군복무와 수술 후 재활, 서비스 타임 등을 고려하면 먼 미래의 얘기다. 김혜성까지 떠나고 나면, 지난 10년간 ‘메이저리거 사관학교’라 불릴 만큼 수많은 슈퍼스타와 빅리거를 배출해온 키움의 전성기도 막을 내릴 전망이다.
키움의 10년 전성기는 물론 구단, 코칭스태프, 선수단의 실력과 노력이 한데 모여 이룬 성과다. 여기에 서울팜이라는 최상의 조건도 한몫을 했다. 연고지 1차 지명 제도를 통해 키움은 최원태, 이정후, 안우진이란 스타 플레이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직 터지지 않은 박주홍, 장재영도 드래프트 당시엔 10개 구단 모두가 탐내는 최고의 유망주였다.
전성기 키움은 다른 구단보다 한발 앞선 ‘진보적’ 야구를 펼쳤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우고 휴식으로 힘을 비축한 키움 선수들의 퍼포먼스는 과훈련과 혹사에 지친 타 구단 선수들을 압도했다. 데이터 활용과 신속한 의사결정도 다른 구단이 갖지 못한 키움만의 강점이었다. 훌륭한 베테랑 선수들이 만든 팀 문화는 어린 선수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기량을 펼치는 원동력이 됐다. 다른 팀에서 실패한 유망주였던 선수들이 키움에 와서 빛을 본 비결이다.
그러나 이런 이점과 강점은 더는 키움의 것이 아니다. 신인 1차지명은 지난해부터 폐지됐다. 서울팀에 유리하게 기울었던 운동장이 평평하게 펼쳐졌다.
웨이트 트레이닝, 데이터 활용 등 키움이 앞서 갔던 영역도 다른 구단들이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차별점이 사라졌다. 이제는 모든 구단이 데이터를 보고 최신 장비를 사용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중시한다. 키움만의 블루오션이 사라진 것이다. 여기에 키움만의 팀 문화를 구축한 베테랑 선수들은 전부 팀을 떠났다. 아직 이용규 등 몇몇 베테랑이 남아있지만 이제 키움 선수단은 젊은 저년차 선수들이 주축이다.
물론 이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차이’를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키움은 최근 신설된 지명권 트레이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엔 이렇게 얻은 지명권으로 포수 김동헌을 지명해 미래 주전 안방마님을 얻었다. 올해도 1~3라운드에 추가 지명권을 확보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총 14명을 지명하는 수확을 거뒀다. 최상위 선수 29명 가운데 6명을 키움이 싹쓸이했다.
전성기 유산 소진한 키움, 장기적 관점의 투자 절실해
이렇게 모은 유망주들의 성장과 활약에 키움의 미래가 달려 있다. 사실 키움은 내년 시즌도 전망이 그리 밝지 못하다. 선발진은 외국인 투수 2명을 제외하면 확실한 카드가 없다. 올해 8월에 허리수술을 받은 정찬헌은 아직 복귀 시점이 불투명하다. 그 외엔 장재영, 김선기, 주승우, 이종민, 김동규 등 아직 터지지 않은 유망주만 가득하다. 불펜 역시 전역을 앞둔 조상우와 좌완 김재웅 외엔 모든 게 불확실하다.
하지만 신인 투수들이 빠르게 1군에 적응해 활약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라운드 8순위로 지명한 전준표는 150km/h에 가까운 강속구와 훌륭한 변화구를 보유한 선발 자원. 9순위 김윤하도 안정적인 제구와 경기 운영 능력이 돋보이는 투수로 5선발 경쟁 후보로 꼽힌다.
사이드암 이우현과 우완 김연주는 불펜에 힘을 보탤 수 있는 투수들이다. 좌완 손현기와 김주훈도 현재 키움 좌완투수 뎁스를 보면 한 자리를 노려볼 만하다. 이달 가운데 한두 명이라도 ‘터지는’ 선수가 나온다면 키움 마운드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투수진 만큼이나 타선에도 물음표가 많다. 키움은 지난 시즌 팀 홈런 61개로 최하위, 팀 OPS도 0.685로 9위에 그쳤다. 이제 이정후까지 떠나면서 타선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전망. 포지션별 뎁스차트를 보면 ‘상수’라 할 만한 선수는 2루수 김혜성과 외야수 로니 도슨, 이주형 정도다.
포수는 FA 이지영을 제외하고 보면 김동헌-김시앙-김재현의 경쟁이다. 1루도 임지열, 이원석, 김수환의 경쟁이고 3루는 송성문, 이원석, 김태진의 경쟁 체제. 유격수 자리도 김휘집과 김주형이 김혜성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외야 역시 한 자리를 놓고 이형종, 임병욱, 이용규 등이 경쟁한다. 터질 듯 터질듯하면서 아직 터지지 않은 선수들과 전성기가 지난 베테랑만 가득하다.
타자 신인 가운데 기대할 만한 선수는 성균관대를 졸업한 내야수 고영우 정도다. 고영우는 타격 정확성과 펀치력을 갖춘 유형으로 키움의 약점인 3루와 1루가 주포지션이다. 즉시 전력감을 기대하고 뽑은 대졸 내야수인 만큼 바로 1군 내야 경쟁에 뛰어들 전망이다.
냉정하게 보면 키움의 2024년은 ‘쉬어가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후반처럼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면서 성장과 재도약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어쩌면 2년 연속 최하위권 성적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언제나 예상을 배반한 팀 키움인 만큼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구단 차원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키움은 이정후의 포스팅 진출을 통해 약 240억 원의 거액 이적료를 확보했다. 이를 선수 영입에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단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프런트와 코치진에 인재를 영입하고, 인프라 개선, 구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