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변신’ 삼성 좌완 이승현 “자청했던 호주행, 오길 정말 잘했다” [춘추 피플]

-선발 도전 중인 삼성 좌완 이승현, 호주 리그에서 ‘변신’ 구슬땀 -아쉬움 가득했던 2023시즌, 이에 이승현은 호주 리그행 자청했다 -ABL 마지막 등판 앞둔 이승현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내년 삼성의 당면과제 ‘5선발’, 호주 리그 경험한 이승현도 후보

2023-12-21     김종원 기자
삼성 좌완 이승현은 올겨울 호주프로야구(ABL) 애들레이드에 합류해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사진=삼성, 애들레이드 SNS)

[스포츠춘추]

삼성 라이온즈 신예 좌완 이승현이 선발 투수에 도전한다. 2021년 프로 데뷔 후 3년 내내 불펜 역할을 맡아온 이승현이지만, ‘변신’은 이미 시작됐다.

삼성은 지난 11월 중순 이승현을 포함해 우완 박권후, 포수 이병헌 등 선수 셋을 호주프로야구(ABL)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에 파견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이승현은 선발로만 붙박이 등판 중이다. 12월 20일 기준, ABL 5라운드 동안 5번의 선발 등판을 마쳤다.

이와 관련해 20일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이승현은 “개인적으로 선발 투수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서로 마음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아쉬움 가득했던 2023시즌, 그렇기에 이승현은 멈추지 않는다

삼성 좌완 이승현(사진=삼성)

2002년생 이승현은 대구상원고를 졸업해 2021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사자군단에 합류했다. 당시 이승현은 강릉고 김진욱(롯데), 광주일고 이의리(KIA)와 함께 좌완 빅3로 평가받았던 기대주였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1차 지명 제도에서 삼성이 뽑은 마지막 투수 자원이기도 하다.

이승현은 프로 입단 후 1군에서만 매년 40경기 이상 구원 등판하는 등 불펜 역할을 수행했다. 앞선 3시즌 동안 선발 등판 없이 147경기 동안 130.1이닝을 던져 4승 13패 28홀드 6세이브 73볼넷 140탈삼진 평균자책 4.90을 기록했다.

프로 데뷔 3년차를 맞이한 올 시즌 전반기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회를 잡기도 했다. 베테랑 마무리 오승환이 부진에 빠지자, 삼성 벤치가 이승현을 더블 스토퍼로 기용하는 등 대안을 마련한 것. 결과는 아쉬웠다. 올해 48경기에 구원 등판한 이승현은 평균자책 4.98에 그치는 등 아쉬움을 남겼다.

“(박진만) 감독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내가 잡지 못해 너무 아쉽다. 무엇보다, 기대하셨던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팀 선배들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나도 매 순간 ‘이겨내야지’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면목이 없다.”

지난 한 해를 떠올린 이승현은 아쉬움을 곱씹으면서도 결코 변명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책은 시즌 종료 후 ABL 파견으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ABL에 가고 싶다고 자청했다”고 말한 이승현은 “실제로 경험한 호주 리그는 내 예상대로 수준이 높았다. 배울 게 참 많기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본프로야구(NPB) 치바 롯데 우완 나카모리 슌스케(사진 왼쪽부터), ABL 애들레이드 우완 무라타 토루(사진=호주프로야구(ABL) SNS)

메이저리그(MLB)와 일본프로야구(NPB)는 육성 목적으로 유망주를 매년 ABL에 파견해 왔다. 2023시즌 내셔널리그 MVP에 빛나는 외야수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가 2016년 만 18세 나이에 ABL을 경험해 본 까닭이다. 올겨울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한 빅리그 이적이 유력한 좌완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 DeNA)도 2018/19시즌 호주에서 뛰었다.

이승현 역시 호주에서 겪은 마이너리그 및 아시아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듯했다. 그중 NPB 치바 롯데 소속 우완 나카모리 슌스케를 손꼽으며 “유독 기억에 남는 선수다. 투구하는 걸 보면서 자극을 참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2002년생으로 이승현과 동갑내기인 나카모리는 올 시즌 ABL 시드니 블루삭스에 파견돼 선발로 맹활약(5경기 29이닝 평균자책 2.48) 중이다.

애들레이드 팀 동료인 우완 무라타 토루 역시 이승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일본 선수다. 무라타는 1985년생 베테랑으로 요미우리, 닛폰햄, 클리블랜드 등 NPB와 MLB를 거쳐 지난해부터 ABL에서 뛰고 있다. 그런 무라타의 존재가 이승현의 성장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이에 이승현은 “경험이 많은 선배라서 경기 내·외적으로 조언을 듣고 있다. 특히 호주 오기 전부터 ‘나만의 루틴’을 정립하고 싶었는데, 식단부터 웨이트, 몸 상태 유지 등 도움을 많이 받았다”이라며 호주에서 얻은 값진 경험을 설명했다.


‘선발 도전’ 이승현 “팀 승리에 공헌할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날 것”

호주프로야구(ABL) 애들레이드 소속으로 투구 중인 이승현(사진=애들레이드 SNS)

삼성의 ABL 선수 파견은 오는 12월 23일부로 마무리된다. 이승현의 경우, 21일 리그 6라운드 퍼스 히트전에서 마지막 등판에 나선다. 이승현은 지난 5번의 등판에서 20이닝을 던져 8볼넷 19탈삼진 평균자책 4.50을 기록했다. 모두 3이닝 이상씩 소화했으며, 12월 7일 멜버른전에서는 5.2이닝 2자책 호투를 펼쳤다.

이승현은 “매 경기 한계 이닝을 따로 정해두고 던지지는 않았다”면서 “호주에 와서 집중하고 있는 건 ‘투구수 늘리기’다. 길게 던지는 것에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14일 등판에서 71구 던졌고 이번 마지막 등판에서 80구 던지는 게 목표”고 했다.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프로 데뷔 후 3년간 불펜 역할만 수행했던 이승현은 선발 보직에 맞게 몸 상태와 훈련법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픈 곳 없이 선발로 순조롭게 변신할 수 있었던 건 함께 파견 중인 박희수 퓨처스팀 투수코치와 한흥일 트레이닝 코치 덕분. 이승현이 “두 분께는 꼭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한 이유다.

그 외에도 이승현은 ABL에서의 선발 등판을 통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먼저 박희수 투수코치의 ‘악마 투심’을 새롭게 장착했다. 또한 컷패스트볼까지 활용해 구종의 단조로움을 해결하고자 한다. 완성 단계는 아니다. 이승현은 “두 구종 모두 경기에서 틈틈이 던지고 있는데, 아직 더 갈고 닦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삼성 좌완 이승현은 높은 타점에서 공을 던지는 정통 오버핸드 투수다(사진=삼성)

다만 이승현이 무작정 새로운 시도만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강점을 계속 살리고자 한다. 정통 오버핸드 유형으로 높은 타점을 갖고 있는 이승현이 강조한 건 “자신의 강점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승현은 ABL에서도 하이패스트볼을 더 효율적으로 던지기 위해 투구 감각을 다듬고 있다.

로케이션 및 제구도 이승현이 신경 쓰고 있는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게 이승현은 올해 KBO리그에서 9이닝당 볼넷 6.02개로 난조를 겪은 바 있다. 그런데, 호주(9이닝당 볼넷 3.60개)에서는 비교적 제구가 잡힌 모습이다. 기자가 이를 묻자, 이승현은 “마음가짐 변화인 것 같다. 1구 1구에 일희일비하는 마음이 컸다. 불펜으로 나오면서 ‘내 공 하나에 우리 팀이 중요한 순간을 내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보직의 문제가 아니다. 내 스스로 쫓기는 게 있었다. 지금은 길게 던지면서 생각을 다시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삼성은 올 시즌 5선발 자리를 놓고 오디션을 반복했지만, 결국 그 주인을 찾지 못했다. 시즌이 끝난 뒤 팀에 합류한 정민태 1군 투수코치도 2024시즌 당면과제로 ‘5선발 옥석 고르기’를 언급했을 정도다. 올겨울 휴식기를 반납하고 호주로 날아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승현 역시 내년 5선발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선발을 향한 꿈을 드러낸 이승현은 조심스럽게 “선발 경쟁 기회가 생긴다면, 거기서 증명하고 자리를 얻어내는 건 순전히 내게 달렸다.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끝으로 이승현은 “팬들의 기대에 그동안 잘 부응하지 못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책임감이 무겁다. 더 잘해서 팀 승리에 공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