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성 99.9%’ 막오른 로봇심판 새 시대, 볼멘소리 없진 않다…왜? [춘추 이슈분석]
-개막 9일여 앞둔 KBO리그, 올 시즌 ABS 포함 새 규정 도입 -시범경기 첫 19경기 ‘99.9% 투구 추적 성공률’ 자랑한 ABS -사령탑들도 호평 “스트라이크존 확대 및 일관성에서 긍정적” -그중 볼멘소리-판단유보 반응도 있다…“타격 자세” “적응 시간”
[스포츠춘추]
‘로봇 심판’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KBO리그가 올 시즌 도입한 새 규정들 가운데 ABS(자동 투구판정 시스템)가 큰 호평을 받고 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2024년을 맞아 큰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ABS는 가히 세계 프로야구 리그 ‘얼리어답터’ 행보로 평가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MLB), 일본프로야구(NPB)보다 정식 도입이 빨랐기 때문이다.
ABS는 끊임없이 개선이 요구됐던 볼-스트라이크 판정 영역에서 공정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등장했다. 또 2020년부터 지난 4년간 KBO가 퓨처스리그(2군) 시범 운영을 통해 ABS의 기술적 안정성을 제고한 게 지금의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KBO 사무국 측에선 이를 두고 시범경기 전부터 “ABS 도입으로 모든 팀이 100% 일관성 있는 스트라이크존 판정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어 공정한 경기 진행이 가능해진다”면서 “정확성은 ABS 도입 이전 주심의 91% 수준에서 95~96% 이상 수준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마냥 먼 미래만은 아니다. KBO의 기대는 차츰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아직 시범경기 초반이지만, ABS의 정확성이 무려 99.9%에 달할 정도다.
시범경기 첫 19G ‘정확도 99.9%’, ABS 향한 현장 호평 자자해
KBO리그는 3월 9일부터 시범경기 일정을 시작했고, ABS를 비롯한 새 규정들 역시 첫선을 보였다. KBO에 따르면, 지난 12일까지 열린 시범경기 19경기 가운데 ABS의 투구 추적 성공률은 99.9%를 기록했다.
여기서 잡아내지 못한 0.1%는 중계 와이어 카메라가 이동 중 추적 범위를 침범한 경우 등으로 투구 추적에 실패한 사례에 해당한다. KBO는 이마저도 보완해 더 완벽한 규정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무엇보다 향후 경기 운영에 있어 장대비, 무더운 여름, 황사 미세먼지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시즌 중 급격한 날씨 변화, 이물질 난입 등 기타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100% 트래킹 추적 성공이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KBO는 “그러한 점을 고려해 추적 실패 시 대응 매뉴얼을 더 철저히 준비하겠다. 또한 심판과 ABS 운영요원을 지속적으로 교육해 추적 실패에도 경기 진행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모든 준비를 다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도 연일 호평이 뒤따르고 있다. 시범운영 중에도 현시점 갑론을박이 오가는 피치클락과는 달리 안정적인 모양새다. 먼저 사령탑들은 스트라이크존 확대를 주목했다. KBO는 올 시즌 스트라이크존 기준을 새롭게 명시하면서 홈 플레이트 중간면 기준에서 좌우 각각 2cm씩 확대 적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시범경기 중 취재진과 만난 이강철 KT 위즈 감독은 “존이 넓어진 느낌인데, 또 선수 체형에 따라 달라지더라. 이젠 타석에서 ‘자기 눈’을 믿기보단 ABS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시선도 스트라이크존으로 향했다.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은 “스트라이크존은 넓은 게 좋다”면서 “좁은 경우엔 볼넷 숫자도 늘어나고, 경기 수준이 그만큼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이강철 감독은 “프레이밍이 필요 없어졌다”면서 ABS 도입으로 인해 포수 역량 판단 기준이 향후 달라질 것을 내다봤다. 블로킹과 송구를 더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이 감독의 생각이다.
포수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올 시즌 한화에 합류한 베테랑 포수 이재원이 “베이스 크기가 커지면서 도루를 시도하는 주자들이 유리해졌는데, 포수들 역시 규정 변화로 유리해진 측면이 없잖아 있다”며 “ABS 도입으로 던지는 데 신경을 더 쏟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경기 집중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맞춰 올겨울에 송구와 블로킹을 많이 준비했다”고 말한 까닭이다.
한편 최원호 한화 이글스 감독은 ‘공정성’을 콕 집어 강조하면서 “선수단과 심판진이 판정에 대한 시비로 얼굴을 붉히거나 서로 오해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최 감독은 “선수들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판정) 일관성이 있으니까 불만을 따로 가질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KBO리그 선수 대부분은 이번 시범경기에서 ABS를 처음 경험했지만, 그중 예외도 있었다. 바로 올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들이다. 이들은 앞선 2023년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ABS를 이미 접했다.
“고등학교 때는 판정이 오락가락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때론 땅에 찍히는 공인데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 화가 나기도 했었죠. (그에 비하면) 지금 프로에서 경험 중인 ABS는 양 팀 모두 불만이 없을 정도로 스트라이크존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LG 상대로 선발 3이닝 무실점 호투를 선보인 KT 2004년생 우완 신인 원상현의 말이다.
잇단 호평 가운데서도 볼멘소리-판단유보 반응 있다…왜?
이처럼, ABS의 등장에 잇단 호평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볼멘소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일부 선수들은 스트라이크존 상하 기준에 대해 불만을 보이기도 했다.
KBO에 따르면 ABS 상하단 높이는 각 선수별 신장의 비율을 기준으로 적용된다. 상단 기준은 선수 신장의 56.35%, 하단 기준은 선수 신장의 27.64% 위치가 기준이 된다. 이 비율은 기존 심판 스트라이크 존의 평균 상하단 비율을 기준으로 했다.
선수들의 평균 신장을 측정 및 고려한 결과지만, 현장에선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도 그럴 게 키는 비슷할지 몰라도, 타자들의 타격 자세엔 모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 선수 입장에선 난처한 대목이다. 규정 변화에 아무리 대비해도, 그간 몸에 익숙해진 고유 자세를 한순간 변경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시범경기 중 취재진과 만난 염경엽 LG 감독 역시 다음과 같이 우려의 목소릴 내기도 했다.
“(홍)창기 같은 경우는 키가 크긴 해도 타격 자세상 칠 수 없는 공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더라고요. 이런 부분은 규정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준을 신장으로 할 게 아니라 타석에서 서 있는 자세가 돼야 합니다.”
KBO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와 관련된 변화는 당장 어려울 전망이다. KBO는 지난 7일 규정 관련 미디어 설명회를 통해 “스트라이크존 판정을 신장이 아닌 타격 자세를 기준으로 할 경우 규정이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요컨대, 타자가 타석에서의 자세를 계속 유리한 식으로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MLB도 이와 같은 우려로 타격 자세에 따른 스트라이크존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MLB는 정식 도입에 앞서 독립리그, 마이너리그 등을 통해 ABS를 계속 실험하고 있다.
프로 생활 24년 차 베테랑 외야수 김강민은 일단 ABS를 향해 ‘판단 유보’를 내렸다. 당장은 좋다, 나쁘다를 따질 수 없다는 것. 변화는 확실히 있지만, 아직까진 일장일단을 평가하긴 이르다는 결론이다.
“많은 타석을 소화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확실히 그전과는 달라졌습니다. 만일 문제점이 있다면 적어도 한 시즌은 해봐야겠죠. 적응하기 나름인데, 다들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요?” 시범경기 동안 ABS를 지켜본 김강민의 평가다.
어느덧 새 시즌이 개막이 열흘도 채 남질 않았다. 9일 후면 플레이볼과 함께 144경기, 그리고 포스트시즌을 향한 대장정이 시작된다. KBO는 ABS의 도입을 통해 선수와 팬들이 판정 이슈 등 다른 요소가 아닌 경기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ABS가 과연 미묘한 간극 차를 이겨내고 리그에 연착륙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