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도를 3루에서 만난다면…” 국가대표도 우상 앞에선 ‘야구소년’이 된다 [춘추 집중분석]
-서울시리즈 스페셜게임 앞둔 ‘팀 코리아’, 선수들 가지각색 모습 -박영현·김동헌이 꿈꾸는 미래? “빅리그는 모든 야구선수의 목표” -KBO리그 대표 에이스 원태인, MLB 선수들 직접 찾아가 배움 청해 “이런 경험, 또 언제 하겠나요?” 남다른 기대감 드러낸 손성빈·나승엽
[스포츠춘추=고척]
“야구 인생에 이런 기회가 또 있나 싶습니다. 선수들에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고 강조했죠.”
한국 야구대표팀 ‘팀 코리아’ 류중일 감독의 말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게 메이저리그(MLB) 구단의 내한이 정말 오랜만에 성사됐기 때문. 과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58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1959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82년) 등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다.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오는 20, 21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정규시즌 개막 2연전을 치른다. 오타니 쇼헤이,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 매니 마차도, 다르빗슈 유,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등 슈퍼스타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까닭이다. 참고로 한국에서 열리는 사상 최초의 MLB 개막전이기도 하다.
대표팀은 그에 앞서 17, 18일 이틀 동안 파드리스, 다저스 두 팀과 연습경기 개념의 ‘스페셜 게임’을 치른다. 류 감독은 “가능한 한 대등한 경기를 펼쳐 창피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 사령탑의 바람대로 대표팀은 17일 고척돔에서 파드리스 상대로 끈질긴 승부를 펼쳤다. 비록 0대 1로 석패했지만, MLB 팀 상대로 분명한 가능성을 엿본 게 긍정적이다.
이번 대표팀 구성은 대부분이 2000년대 이후 출생 선수들로 채워져 있다. 다시 말해,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우상들과 맞대결이 성사된 셈이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고척돔에서 만난 대표팀 선수들의 눈은 하나같이 초롱초롱했다.
박영현·김동헌이 그리는 미래 “빅리그는 모든 야구선수의 꿈”
파드리스전을 앞두고 더그아웃에서 만난 우완 불펜 박영현은 “분위기 자체도 신기하고 뭔가 너무 새롭다”면서 기대감에 부푼 모습을 보였다. 팀 마운드 계획상 박영현은 18일 다저스전에서 투구할 예정. 이에 “사실 오늘(17일) 던질 줄 알았다”고 말한 박영현은 “원래 MLB를 자주 챙겨봤고, 파드리스도 좋아했다”며 웃었다.
박영현은 2003년생 우완 투수로 올해 프로 3년 차 시즌을 맞았다. 태극마크는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런 박영현도 먼 훗날 언젠가 빅리그 도전을 꿈꾸는 이다.
이와 관련해 박영현은 “MLB는 모든 야구선수의 최종 목표”라면서 “그런 선수들과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나질 않는다. 아직까지도 이 기분이 뭔지 잘 모르겠다. 빅리그에선 어떻게 던지고 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내가 배울 게 있는지도 꼼꼼히 보려고 한다”고 했다.
“평소엔 더스틴 메이(부상 후 재활 중)를 좋아했고요. 야마모토 요시노부, 타일러 글래스노우도 챙겨봐야 할 선수들입니다. 둘 다 한국 투수들과 투구 스타일이 다른 편이죠. 어떻게 던지는지 참고하려고요.”
18일 맞대결을 펼칠 다저스에 대해선 투수들을 콕 짚어 주목한 박영현이다.
같은 날 포수 김동헌은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소속팀 키움 히어로즈와 대표팀을 오가며 MLB 팀 상대 경기만 두 차례를 소화한 것. 특히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에서 뛰는 만큼 피로도는 배로 쌓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다저스전을 마친 뒤 파드리스전 준비 중에 만난 김동헌은 힘든 내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 프로 무대에 첫 발을 뗀 2004년생 새싹은 오히려 “대단한 선수들과 경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제 막 프로 데뷔 2년 차를 맞은 김동헌 역시 미래 빅리거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이를 두고 김동헌은 “더 큰 무대에서 잘하는 선수들과 같이 해보고 싶은 꿈은 항상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지금 여기 한국프로야구에서의 과정이 중요하다. 또 우리 팀(키움)엔 그걸 보여준 좋은 사례들이 많기에 선배들의 모습들을 열심히 따라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KBO리그 대표 에이스도 ‘배움’ 앞에선 끝을 모른다
한편 김동헌은 MLB 팀과의 승부를 “마치 게임을 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한 가운데 경기 종료 후 만난 ‘한 선수’도 비슷한 표현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날 파드리스 타선에 맞서 2이닝 무실점 투구를 선보인 사자군단 에이스 원태인이다.
원태인은 이번 서울 시리즈를 그 누구보다 값지게 보내고 있다. 다저스, 파드리스 선수들을 만나 그들의 결정구 노하우를 질문하는 모습이 수차례 포착된 것. 다저스 선발 글래스노우에게 커브를, 파드리스 선발 페드로 아빌라에겐 체인지업을 배우는 장면 등이 확인된 게 대표적이다.
美 야구통계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이들의 구종은 모두 플러스(+) 피치에 해당한다. 글래스노우의 커브는 지난해 구종가치 +6을 달성했고, 구종 피안타율은 무려 0.095를 기록했을 정도다. 헛스윙률도 52.2%로 상당히 높았다. 체인지업 구종가치 +4를 기록한 아빌라 역시 빼어난 변화구 능력을 갖추고 있다. 참고로 아빌라의 지난해 체인지업 피안타율은 0.148이다.
“글래스노우의 주무기가 커브인 걸 알고 찾아갔습니다. 제가 늘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커브였거든요. 어떻게 던지는지 물어봤는데, 자세하게 설명해주더라고요.” 원태인의 설명이다.
한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도 배움 앞에선 끝을 모른다. 원태인은 KBO리그에서 향상심이 남다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당 내용을 사전에 알고 이들에게 배움을 청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아쉬웠던 커브를 보완하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의 결정구인 체인지업을 강화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에 원태인은 “배운 구종을 오늘(17일) 파드리스전에 곧바로 활용해봤는데 안타를 맞았다”면서도 “그래도 시도한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투구 밸런스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조언을 받았다. 이 인터뷰를 글래스노우가 볼진 모르겠지만,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경험, 또 언제 하겠나요?” 손성빈·나승엽의 기대
롯데 자이언츠 소속 2002년생 동갑내기 두 ‘예비역’도 MLB 선수들과의 만남에 흥분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바로 지난해 6월, 11월 차례대로 상무 야구단에서 제대한 포수 손성빈, 내야수 나승엽 얘기다.
먼저 손성빈은 고교야구(장안고 졸업) 때부터 버스터 포지(은퇴), J.T 리얼무토(필라델피아 필리스) 등 MLB 명포수들을 롤 모델로 손꼽은 바 있다. 비록 그 둘이 한국을 찾은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손성빈에겐 이번 서울 시리즈 두 경기가 어느 때보다 설레이는 경험이 될 전망이다. 참고로 서울 시리즈 MLB 개막전에선 양 팀 주전 포수로 루이스 캄푸사노와 윌 스미스가 격돌한다. 또 백업 역할론 베테랑 카일 히가시오카, 오스틴 반스가 대기 중이다.
이날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만난 손성빈은 “경기도 뛰어보고 싶고, 타석에 들어갈 기회가 온다면 정말 좋겠다”면서도 “다만 그걸 떠나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수준 높은 선수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값지고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손성빈의 포지션은 ‘그라운드의 사령관’ 역할을 맡는 포수다. 이 때문에 포수뿐만 아니라 투수, 타자 등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챙겨보고 눈과 머리에 담아갈 심산이다. 이를 두고 손성빈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봐야 할 것 같다. 벌써부터 재밌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KBO리그에서도 도루 저지 능력으로 손꼽히는 재능을 갖춘 이가 바로 손성빈이다. 만일 18일 다저스전에 출전한다면 그 강한 어깨를 뽐낼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질문하자, 손성빈은 “다저스엔 발 빠른 선수들이 많은데, 그중 무키 베츠와 한 번 승부를 겨뤄보고 싶다”고 했다.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보겠어요. 한 타석이라도 꼭 들어가서 몸으로, 피부로 느껴보고 싶습니다.”
손성빈의 바람은 17일 7회 말 교체 투입으로 현실이 됐다. 또한 이때 손성빈은 곧장 8회 초 타석에도 들어가 파드리스 좌완 완디 페랄타와 승부를 펼친 뒤 3루 땅볼로 물러났다.
손성빈과 동갑내기인 나승엽은 아쉽게도 17일 파드리스전에선 투입되지 못했다. 경기 막판 9회 초 대타 준비를 했지만, 병살타로 경기가 종료되면서 다저스전 출전을 기약하게 된 것.
“예전부터 꿈꿔왔던 순간이에요. MLB 선수들과 한 곳에 있다는 게 놀랍죠. 지금이야 실감은 안 나겠지만, 막상 경기를 하고 나면 느낌이 확 오지 않을까요? 지금 느끼고 있는 막연한 기분과는 또 확실히 다를 것 같습니다.” 17일 파드리스전에 앞서 스포츠춘추와 만난 나승엽의 말이다.
이어 나승엽은 “만일 3루에서 마차도를 만날 기회가 온다면 꼭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기자가 그 다음 대화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질문하자, 나승엽은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답을 회피했다. 늠름한 예비역 병장 안에 숨겨진 ‘야구소년’의 모습이다.
다만 이날 나승엽의 출전은 불발됐고, 마차도의 경우 지난해 팔꿈치 수술 여파로 수비 소화 없이 줄곧 지명타자로만 경기에 나서고 있다. 이날 경기 전부터 ‘롤 모델’ 마차도와의 만남을 고대했던 나승엽이기에 아쉬운 대목이다.
나승엽은 고교 시절부터 메이저리그(MLB)가 탐낸 재능으로 유명하다. 지난 11월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해 올 시즌 남다른 타격감을 자랑 중이다. 대표팀 합류 전 시범경기 5경기에서 타율 0.385, 출루율 0.438, 장타율 0.615를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꾸준히 선보였다.
나승엽은 끝으로 파드리스 측 3루 더그아웃을 바라보면서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선수들이 저 곳에 있다”면서 “대표팀 덕분에 이런 기회를 얻었고, 내겐 정말 큰 의미로 남을 듯싶다. 이번 시리즈가 내 성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