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3연투는…” 초보감독 맞아? ‘꽃감독’의 마운드 운영은 이것이 다르다 [춘추 집중분석]
흔히 야수 출신 감독에게 가장 어려운 게 마운드 운영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타자 출신 이범호 감독은 파트 코치진, 전력분석팀과 많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스포츠춘추=수원]
“투수코치님이 옆에 계시니까요.”
이범호 감독이 부임한 뒤 KIA 타이거즈가 달라진 건 팀 분위기만이 아니다. 마운드를 운영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시스템과 원칙이 생기고, 대화와 토론이 활성화되면서 KIA는 리그에서 가장 투수 과부하가 적은 팀으로 거듭나고 있다.
4월 4일 현재 KIA는 류현진이 있는 한화 이글스와 함께 리그 최고의 투수력을 자랑한다. 팀 평균자책은 2.96으로 한화(2.93)와 근소한 차이로 2위, 구원투수 평균자책은 2.54로 10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2점대다.
보통 투수 출신 초임 감독은 야수 기용에, 야수 출신 1년 차 감독은 투수 기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게 정설이다. 사실 투수 기용은 초보 감독은 물론 베테랑 감독에게도 가장 어려운 업무 중 하나다. 또 투수라는 종족의 독특한 특성을 야수 출신 감독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나 8경기를 치른 현재까지만 보면, 타자 출신 ‘초보감독’ 이범호의 마운드 운영은 꽤 성공적인 편이다. 대부분의 투수교체가 합리적이고 설명 가능한 범주 내에서 이뤄졌고, 결과도 꽤 성공적이었다.
“웬만하면 3연투는…” KIA 마운드에서 사라진 과부하
3일 수원에서 만난 이범호 감독에게 비결을 묻자 “투수 코치님이 옆에 계시니까요”란 답이 돌아왔다. 이 감독은 활짝 웃으며 “투수코치님도 계시고, 수석코치님도 옆에 계신다. 같이 얘기하면서 (투수기용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야수 출신이지만 KIA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투수들의 성향을 파악한 것도 투수 기용에 도움이 된다. 이 감독은 “우리 팀 투수들과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며 “그 선수들이 어떤 능력을 지녔고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고 있다. 단단한 투수인지, 흔들리는 경향이 있는 투수인지 안다. 투수코치님이 순번을 정해주면, 거기에 맞게 상황을 봐가며 투수를 기용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백전노장 투수 출신 감독이라도 어려운 게 투수 기용이다. 이 감독도 “안 어려울 순 없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건 결과가 말해준다. 지금까지는 올라간 투수들이 잘 막아준 덕분에, 어려움이 적었다”며 투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KIA는 올 시즌을 앞두고 1군 마운드 파트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했다. 두산 베어스 출신 정재훈 코치, 한화 이글스 출신 이동걸 코치를 영입해 1군 투수 파트를 맡겼다. 스포츠 과학에 관심이 많은 두 코치가 합류하면서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마운드 운영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이범호 감독이 코치진의 의견을 잘 경청하고 수용하면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들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대화와 상의를 통해 마운드를 운영하는 KIA는 현재 리그에서 가장 투수 과부하가 적은 팀이다. 4일 현재 KIA의 불펜투수 2연투 횟수는 총 2회로 10개 팀 가운데 최소다. 이 분야 단골 1위인 키움(3회)보다도 적은 횟수다. ‘투수혹사’와 동의어로 여겨지는 3연투는 한 차례도 없었다.
불펜투수가 4아웃 이상을 책임진 사례도 3차례로 제일 적었다. 팀 이름을 가리고 보면 마치 키움이나 NC의 기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간에 우천순연이 두 차례 끼어있는 점을 감안해도 단연 눈에 띄는 기록이다.
올시즌 전까지만 해도 KIA는 투수 과사용이 심한 편에 속했다. 2017년 마지막 통합우승은 불펜투수 김윤동의 어깨와 맞바꾼 트로피였다. 2017년과 2018년 두 시즌 연속 불펜 80이닝을 던진 김윤동은 경기중 어깨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뒤 쓸쓸히 모습을 감췄다. 지난해엔 임기영이 리그 불펜 최다 2위인 82이닝을 던졌다. 임기영은 현재 옆구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상태다.
연투, 3연투, 멀티이닝도 많았다. 전임 감독 첫 시즌인 2022년 KIA의 2연투는 116회로 리그 최다 2위, 3연투는 12차례로 최다 3위에 해당했다. 지난해에도 2연투가 126번으로 최다 3위, 3연투가 12차례로 5위, 멀티이닝은 121회로 최다 4위에 올랐다.
이와 관련해 이범호 감독은 “3연투는 웬만하면 안 시킬 생각”이라고 자신의 투수기용 원칙을 밝혔다. 다만 예외적으로 “마무리 투수는 세이브 상황에 한해 3연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등판시기가 불규칙한 중간투수와 달리, 9회 1이닝만 던지는 마무리투수는 상대적으로 연투에 따르는 부담이 덜하다.
이 감독은 “정해영에게 ‘세이브 상황에서 3연투가 가능하겠냐’고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하더라”면서도 “만약 25구, 25구씩 던지면서 연투했다면 3연투를 하긴 어려울 거다. 3연투가 안되면 (투수 순서를) 한 단계씩 뒤로 미뤄서 내면 된다. 웬만하면 3연투 안 하고 2연투로 끊으려고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아직까진 모든 것이 순조롭다. 3일에도 KIA는 선발 제임스 네일이 6이닝 동안 환상적인 호투를 펼쳤고, 이후 불펜 3명이 올라와 1이닝씩 나눠 막았다. 이렇게 모든 게 잘 풀릴 때는 불펜투수를 과사용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시즌을 치르면서 찾아올 수많은 고비에서 과연 원칙을 지킬 수 있을지, 양보한다면 어느 선까지 물러설지는 또 다른 문제의 영역이다. 부임 초기 좋은 날을 보낸 이 감독도 언젠가 찾아올 궂은 날을 각오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진 투수들이 잘 던져줬지만, 앞으로 올라가서 맞는 날도 생길 것”이라며 “상황이 다르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달라졌을 때 어떻게 풀어갈지 미리 생각을 해둬야죠. 많은 고민을 하고, 잘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