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도 보고 개기일식도 구경하고’ MLB는 자연현상도 마케팅에 활용한다 [춘추 MLB]

수백년에 한번 관찰되는 천체현상도 메이저리그에선 좋은 마케팅 기회가 된다. 9일 클리블랜드 홈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은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개기일식과 홈 개막전을 모두 구경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2024-04-09     배지헌 기자
개기일식을 관찰하는 클리블랜드 선수단(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스포츠춘추]

수백년에 한번 나타나는 천체현상도 놓치지 않고 좋은 마케팅 기회로 활용하는 게 메이저리그 야구단이다. 덕분에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홈구장 찾은 팬들은 경이로운 우주체험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응원팀의 홈 개막전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4월 9일(한국시각) 미국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경기를 앞두고 특별한 쇼가 펼쳐졌다. 이날은 클리블랜드의 2024 정규시즌 홈 개막전이자, 이 지역에서 거의 200년 만에 개기일식이 관찰되는 날이었다.

클리블랜드 홈구장에서 관찰된 개기일식(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클리블랜드 홈구장에서 관찰된 개기일식(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개기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위치하면서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태양과 달, 지구의 상대적인 위치가 같은 곳에서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 지역에 개기일식이 돌아오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은 375년.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한번 관찰되기에 말 그대로 평생 한 번도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클리블랜드 지역의 이번 개기일식은 야구단 창단 한 세기 전인 1809년 이후 거의 200년 만이다. 이 지역에 다시 개기일식을 관찰하려면 2444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미국 전역으로 범위를 넓혀도 2044년 8월이나 돼야 개기일식을 관찰할 수 있다.

2044년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는 수많은 인파가 이번에 개기일식 예상 경로로 몰려들었다. 미 연방 당국은 타 지역에서 개기일식 경로로 찾아온 관광객이 5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클리블랜드 관광을 담당하는 단체인 데스티네이션 클리블랜드는 당일 20만 명의 방문객이 시내를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개기일식이란 초대형 쇼에 웬만한 다른 행사는 묻힐 가능성이 있었다. 

가디언스 구단은 야구장 입구에서 일식 관측 안경을 나눠줬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개기일식 날이 마침 홈 개막전 날과 일치하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야구단도 고민이 많았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가디언스 야구단은 무려 2년 전부터 이번 개기일식 날을 준비해 왔다. 시 관계자 및 NASA 전문가들과 협력해 “전례 없는 일식에 대한 최선의 접근 방식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경기 개시 시간부터 고민의 연속이었다. 지난 8년간 대부분의 홈 개막전은 오후 4시 10분(동부 표준시 기준)에 시작했지만, 개기일식이 오후 3시경에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간 조정이 필요했다. 아예 경기 시간을 저녁(7시 10분)으로 늦출 것인지, 아니면 일식 이후에 진행할 것인지 논의한 끝에 오후 5시 10분을 개시 시간으로 정했다. 타격 훈련 시간은 앞으로 당겼고, 일식이 절정에 달하는 약 20분 동안은 야구장 입장도 받지 않기로 했다.

가디언스 구단은 야구장 입구에서 팬들에게 태양광 필터가 달린 일식 관측 안경을 나눠줬다. 구단은 “일식이 지나갈 때 안경을 반드시 착용하라”고 수시로 안내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도 안경 착용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맨눈으로 일식을 관찰하면 실명하거나 시력이 크게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 애슬레틱’에 따르면 한 구단 관계자는 “선수가 망막에 화상을 입어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클리블랜드 지역의 날씨는 최상이었다. 맑고 선선한 날씨 덕분에 하늘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2시간 반 동안의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 일식은 보통 2~3분이면 끝나는 일식과 달리 4분 이상 길게 이어졌는데, 이는 달이 지구와 더 가까운 상태에서 개기일식이 나타났기 때문이란 게 NASA의 설명이다. 개기일식이 4분을 넘기는 것은 수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희귀 현상이다.

개기일식을 관찰하는 클리블랜드 선수단(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개기일식을 관찰하는 클리블랜드 선수단(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개기일식을 관찰하는 클리블랜드 선수단(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야구장의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오후 3시가 지나자 환했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장내 아나운서가 “개기일식이 거의 다 왔다”고 외쳤다. 이내 하늘이 컴컴해지고, 달 뒤로 태양이 숨는 장관이 펼쳐졌다. 3만 5천여 명의 관중과 선수, 감독까지 모두가 안경을 쓰고 하늘을 올려봤다. 야구장 스피커에선 핑크 플로이드의 곡 ‘이클립스’가 울려 퍼졌다. 전광판에선 개기일식에 관한 각종 정보와 다른 지역에서 관찰된 개기일식 장면이 소개됐다. 

가디언스 신임 감독 스티븐 보그트는 이날 본 것에 관해 “정말 멋졌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였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시구자로 나선 은퇴 선수 코리 클루버는 “날이 어두워지는 게 신기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클리블랜드 야구단은 이번 개기일식 쇼를 통해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돈 주고도 사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NASA 글렌 연구 센터의 교육 코디네이터 크리스 하텐스틴은 ‘디 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가디언스 개막전의 멋진 점은 (스포츠와 과학)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관중들은 ‘홈 개막전 날 일식이 일어났을 때 현장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