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부상 도미노, 하지만 선두 질주…2023 KIA와 2024 KIA는 무엇이 다른가 [춘추 집중분석]

나성범도 없고, 황대인도 없고, 임기영도 없고, 박찬호도 없는데 KIA는 단독 1위다. 주전 선수 없이도 무너지지 않는 KIA의 달라진 비결은 무엇일까.

2024-04-13     배지헌 기자
단독 선두를 달리는 타이거즈(사진=KIA)

 

[스포츠춘추=대전]

모든 것은 두 번 반복된다. 그렇다면 두 번째엔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 것인가.

분명 지난 시즌 막판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팀 내 최고몸값 간판타자가 이탈하고, 주전 1루수도 큰 부상으로 쓰러졌다. 불펜 에이스의 부상 이탈에 주전 유격수마저 엔트리에서 빠졌다. 작년처럼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데, 팀은 단독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이범호 감독이 이끄는 KIA 타이거즈는 13일 현재 12승 4패 승률 0.750으로 단독 1위다. 이번 주 ‘디펜딩 챔피언’ LG 트윈스 상대 홈 3연전을 싹쓸이하고, 돌풍의 한화 이글스마저 제압해 4연승을 올렸다. 

놀라운 건 현재 KIA의 전력이 시즌 전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완전체’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올 시즌 KIA에 발생한 부상자 명단이다:

나성범 - 시범경기 막판 햄스트링 통증 재발로 이탈했다. 지난해 58경기만 출전하고도 18개의 홈런을 날린 팀 내 최고 타자다.
황대인 - 3월 2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타격 후 1루를 밟다가 햄스트링을 다쳤다. 이탈 전까지 타율 0.286으로 나쁘지 않았고 강력한 주전 1루수 후보였다.
임기영 - 불펜 투구 과정에서 2년 전 다쳤던 내복사근을 또 다쳐 이탈했다. 지난해 64경기 82이닝(불펜 최다)을 책임진 불펜 에이스다.
박찬호 - 허리 통증으로 말소됐다. 리드오프 겸 유격수로 부상 전까지 타율 0.364에 도루 4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10일 광주 LG전에선 투수 이의리, 유격수 박민, 내야수 윤도현까지 3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악재가 터졌다. 이의리는 왼쪽 팔꿈치가 불편해 조기 강판했고 박민은 야구장 구조물에 무릎을 찧었다. 윤도현은 퓨처스 경기중 부상으로 손바닥뼈가 골절됐다. 호랑이를 호랑이답게 만드는 이빨 7개가 한꺼번에 뽑혀나갔다. 오죽하면 이범호 감독이 “1등하는 기분이 이렇게 안 좋을 수도 있나”라고 자조하듯 말할 정도다.

지난해 비슷한 상황에선 버티고 버티다 마침내 무너졌던 KIA다. 시즌 막판 순위 싸움이 한창일 때 나성범, 최형우, 박찬호가 연쇄 이탈하면서 KIA의 성적도 내리막을 걸었다. 결국 5위 두산 베어스에 1경기 차 뒤진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올해는 가혹한 악재 속에서도 선두를 지키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KIA의 최강 원투펀치(사진=KIA)

 

강력한 원투펀치+최강 필승조+혹사 없는 투수 운영

12일 대전에서 만난 이범호 감독은 “점수를 뽑아야 할 대목에서 점수를 뽑고, 우리 투수들이 잘 막아주고 있다”고 비결을 밝혔다. 이날 경기에서도 KIA는 선발 윤영철이 5이닝을 효과적으로 잘 막았고, 필요할 때마다 김도영과 한준수가 달아나는 타점을 올리며 승리를 거뒀다. 6회 이후엔 KIA가 자랑하는 불펜진이 한화의 추격을 차단했다.

마운드는 지난해와 올해 KIA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외국인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투수진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작년과 달리 올 시즌엔 강력한 외국인 원투펀치가 선발진을 이끈다. 제임스 네일은 첫 3경기에서 지난해 에릭 페디급 충격을 선사했고, 윌 크로우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KBO리그에 적응하는 모습이다. 

빅리그 출신이라고 자존심을 내세우고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단 한국야구를 공부하고 적응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이범호 감독은 “둘 다 한국에서 잘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 리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우리 포수들과 분석팀을 믿고, 변화를 주면서 맞춰가고 있다”고 칭찬했다. 2009년(아킬레스 로페즈-릭 구톰슨), 2017년(헥터 노에시-팻딘)을 능가하는 에이스 듀오가 기대된다.

불펜 역시 올 시즌 5회까지 앞선 경기 승률 100%를 자랑한다. 팀 불펜 평균자책이 2.83으로 10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2점대다. 다른 팀은 필승조 투수가 3명 남짓인데 KIA는 장현식-전상현-최지민-곽도규-정해영으로 이어지는 5인 필승조를 구축했다. 좌완 2명에 우완 3명의 구성도 이상적이다. 

불펜 혹사를 최소화하면서 장기 레이스에 대비한 투수 운영도 돋보인다. KIA는 올 시즌 투수 연투와 멀티 이닝이 가장 적은 팀에 속한다. 2연투는 14차례(최소 4위), 3연투는 한 차례도 없었고 멀티 이닝도 8번으로 가장 적었다. 그러면서도 12일 경기처럼 상황에 따라선 정해영에게 4아웃을 맡기는 임기응변도 발휘한다.

이범호 감독은 필승조 5명을 한 경기에 ‘몰방’하는 대신, 중간투수들을 사이에 끼워 넣으면서 불펜진 전체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이 감독은 “3연투는 웬만하면 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과거 KIA 수장들과는 다른 원칙을 말했다. 

12일 경기에서 7세이브를 거둔 정해영(사진=KIA)

 

“주전들이 다쳐도 큰 동요 없어…각자 자기 역할 잘 해준다”

주전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자리엔 대체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새로운 이빨 역할을 하고 있다. KIA 선수들을 속속들이 잘 아는 이범호 감독은 다양한 선수를 폭넓게 활용하며 동기를 부여하고, 선수들도 주어진 기회를 살리려고 의욕적으로 경기에 임한다. KIA의 달라진 팀 분위기가 가져온 효과이기도 하다. 

나성범이 빠진 자리는 외야에 자리가 없어서 1루수 겸업을 준비하던 이우성이 완벽하게 메꿨다. 이우성은 타율 0.362에 1홈런 6타점으로 지난해의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1루수 황대인이 이탈한 자리는 올 시즌 화려하게 부활한 서건창이 채우고 있다. 서건창은 타율 0.389에 출루율 0.500으로 우리가 알던 바로 그 서건창의 모습이다. 

박찬호의 역할은 홍종표가 대신한다. 홍종표는 11, 12일 이틀 연속 선발 출전해 6타수 3안타 1볼넷 1사구로 다섯 차례나 출루했다. 이범호 감독은 “옛날 퓨처스 시절부터 본 선수다. ‘실전용’ 스타일이다. 배포도 크고 항상 자신감이 있어서, 경기에 출전하면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부상 선수가 나오면 새로운 선수들이 올라와서 열심히 해준다. 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면서 “주전들이 다쳤다고 해서 동요하지 않고, 각자 위치에서 자기 역할을 잘해준다. 그러다 보니 팀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 같다”며 선수들을 칭찬했다. 현재 활약 중인 대체 선수들이 향후 백업으로 이동하면, 더 강력한 선수 뎁스를 구축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지난해와 비슷한 부상 악재의 반복이지만, 다른 선택과 마음으로 차이를 만들어 가는 KIA다. 

“요즘 팀 분위기가 너무 좋습니다. 끝날 때까지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12일 경기에서 결승 홈런을 친 김도영의 말은 지금 KIA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야구는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분위기가 가라앉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길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이겨놓아야 합니다. 한 게임 한 게임을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