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그때 그 볼보이, 이렇게 컸습니다…18살 신인 마법사 육청명 [춘추 이슈분석]

-KT 18살 우완 신인 육청명, 13일 수원 SSG전에서 데뷔 -잇따른 위기에도 팀 선배들 수비 도움 힘입어 1이닝 무실점 -콜업날 만난 육청명 “마운드에선 긴장감 활용해 좋은 에너지로” -‘오뚝이’처럼 일어설 줄 알기에…팔꿈치 부상 역경도 이겨냈다

2024-04-14     김종원 기자
KT 신인 투수 육청명은 선린중 재학 시절 위즈파크 1루 볼보이를 한 적이 있다(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육성철 씨 제공) 

[스포츠춘추]

2018년, 수원 KT 위즈파크를 찾은 한 중학생 1학년 볼보이의 눈엔 꿈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마법사 군단 ‘천재타자’ 강백호와 캐치볼을 주고받은 것이다. 혹시 상상이나 했을까. 그로부터 6년 뒤 어엿한 프로야구선수로 성장한 소년은 강백호가 보는 앞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바로 KT 위즈 신인 투수 육청명의 얘기다.

KT는 4월 13일 홈 수원에서 열린 SSG 랜더스전을 8대 11로 패했다. 무려 21안타를 허용하면서 경기 내내 힘겨운 승부를 이어간 가운데 전날 12일 퓨처스팀(2군)에서 올라온 육청명이 생애 첫 프로 등판에 나섰다. 팀의 5번째 투수로 4점 차 열세(7-11) 상황이었다.

이날 이른 시점부터 KT의 불펜이 가동된 탓에 3회 초부터 몸을 풀었던 육청명이다. 혹은 수많은 관중 앞 데뷔전에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육청명은 선두타자 하재훈의 안타를 시작으로 후속 오태곤에게 볼넷을 내주고 말았다. 곧바로 SSG는 희생번트(최경모 타석)를 성공시켰고, 다음 타석엔 리그 홈런 1위 한유섬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에 KT 벤치는 고의사구를 택했고, 육청명은 프로 무대 첫 등판부터 주자 만루 위기에 놓였다. 이닝을 마치기 위해선 아웃카운트를 두 개나 더 잡아야 한다. 그러자 선배들이 앞장서 머리가 새하얘졌을 막내를 도왔다. 함께 배터리 호흡을 맞춘 포수 김준태는 빠지는 공들을 수차례 온 몸을 던져 막아냈고, 1루수 문상철은 1사 만루에서 SSG 박성한이 친 땅볼 타구를 쏜살같이 낚아채 병살 아웃을 만들었다.

병살타로 이닝이 끝난 뒤 중계 화면에선 박수를 치는 이강철 KT 감독의 모습이 포착됐다. 또 이날 중계를 맡은 이동현 SPOTV 해설위원은 잇따른 위기 속에도 끝내 무너지지 않은 육청명을 향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기대 섞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이로써, 육청명은 말 그대로 ‘지옥과 천당’을 오간 끝에 첫 등판에서 1이닝 동안 17구를 던져 1피안타 2볼넷(1고의사구) 무실점을 기록했다.

“운동선수 부모님들은 이렇게 간담이 서늘할 때가 많아요. 오늘(13일) 경기 내내 정말 가슴을 졸이면서 지켜봤습니다.”

이날 늦은 오후 연락이 닿은 육청명의 아버지 육성철 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참고로 육 씨는 혹시 모를 아들의 등판을 보기 위해 지난 12일부터 연속으로 위즈파크를 방문했고, 이튿날 마침내 감격스러운 데뷔전을 관중석에서 함께할 수 있었다. 

KT 1루수 문상철이 좋은 수비로 신인 투수 육청명의 1이닝 무실점 투구를 도왔다(제공=티빙(TVING))

 


“긴장감 활용해 좋은 에너지로” 육청명의 1군 데뷔 막전막후 

KT 신인 육청명(사진=KT)

육청명은 2005년생 오른손 투수로 강남초-선린중-강릉고를 졸업해 2024 KBO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17순위로 KT에 입단했다. 심광호 KT 스카우트팀 과장은 지명 당시 육청명의 건장한 체격(186cm·90kg)을 주목하면서 “신체 능력이 좋고, 선발 자원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곤 입단 동기 원상현과 함께 1군 스프링캠프에 포함돼 이강철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다만 이때 코칭스태프가 내린 평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앞서 12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만난 이강철 감독은 “캠프 때는 부족한 게 많았다”면서도 “개막하고 2군에서 ‘많이 좋아졌다’는 보고를 받았고, 장기적으론 선발 역할을 준비해야 하는 선수”라고 했다.

개막 후 퓨처스리그에서 두 차례 등판하면서 담금질을 거친 육청명은 7일 익산 KIA 2군 상대로 선발 등판해 4.2이닝 4실점을 기록하는 등 차근차근 선발 수업을 받고 있다. 프로 무대에 온 뒤론 스플리터를 새롭게 장착해 속구, 커브, 슬라이더 등에 더해 총 4가지 구종을 던진다. 속구의 경우 올 시즌 최고 147km/h까지 나와 향후 그 이상도 거뜬히 기대해 볼 수 있는 유망주다.

그런데 최근 들어 KT 1군 마운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불펜 부진에 주축 선수들 부상마저 겹친 것. 이에 KT는 12일 수원 SSG전을 앞두고 우완 사이드암 이선우를 말소하고 육청명을 1군에 올렸다. 길게 던질 수 있는 선수인 만큼 다양한 역할이 기대된다.

같은 날 취재진과 만난 선수 본인에 따르면 전날(11일) 오후에 1군 콜업 사실을 전달받았다고.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콜업에 “깜짝 놀랐다”고 말한 육청명은 “스프링캠프에선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아쉬운 게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1군에 와선 떨리는 것보단 최대한 편한 마음으로 있으려고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입단 동기인 육청명(사진 왼쪽부터), 원상현(사진=KT)

1군 선수단엔 육청명과 인연이 남다른 선수가 있다. 프로에 오기 전부터 친분을 이어온 입단 동기 원상현이다. 그 시작은 2022년부터다. 당시 부산고 2학년 에이스였던 원상현은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강릉고를 만나 8.1이닝 무실점 호투로 팀의 우승 주역으로 우뚝 섰다. 이때 강릉고 2학년이었던 육청명과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그 뒤 둘은 지난해 나란히 KT의 1, 2라운드 신인 지명을 받았고, 10월 전국체전에선 서로의 모교를 대표해 투수전 맞대결을 펼치는 등 남다른 인연을 뽐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2년 전 첫 만남을 계기로 이 둘은 형·동생이 아닌 친구 사이가 됐다. 2004년생 원상현은 부상 이력으로 1년을 유급했지만, 한 살 어린 육청명은 그걸 모른 채 말을 놓았다. 육청명은 이와 관련해 “2학년 대회 때 친구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는데, (원)상현이가 별말이 없더라”며 “나중에야 한 살 많은 걸 뒤늦게 알고 ‘존댓말을 해야 할지’ 물어봤다. 그러니 상현이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서로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육청명은 ‘친구 같은 형’ 원상현을 두고 “좋은 운명을 만난 것 같다. 야구 잘하는 친구 옆에 붙어서 많이 발전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육청명의 첫 1군 콜업날 훈련 캐치볼 상대는 선배 엄상백이었다(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이날 처음으로 1군 훈련에 참여한 육청명은 선배 엄상백과 캐치볼을 주고받았다. 그중 인상적인 장면은 엄상백이 던진 공을 마치 포수처럼 프레이밍하듯 공을 받는 육청명의 모습이었다. 또 틈을 내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걸 배워가려는 후배의 마음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이와 관련해 묻자, 육청명은 쑥스러운 표정과 함께 “(엄)상백 선배 공이 너무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면서 “(선배들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원래 캐치볼 파트너가 아니었는데, 상백 선배가 먼저 ‘캐치볼 할래’라고 해주시고 챙겨주셨다”고 했다.

한편 첫 콜업에 이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데뷔 등판을 두고 걱정은 없었을까. 이를 두고 고갤 저은 육청명은 당찬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힘줘 말했다.

“상현이한테 물어봤는데, 자기도 신인이라서 ‘해줄 말이 없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냥 ‘같이 잘하자’란 말만 서로 되풀이했습니다. 만일 제가 마운드에 처음으로 오른다면 긴장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그걸 이용해서 좋은 에너지로 바꾸고 싶습니다.”

어쩌면 하루 뒤 본인의 미래를 엿보기라도 한 것일까. 13일 13,995명의 관중 앞에서 선 육청명은 잇따른 위기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아웃카운트 3개를 실점 없이 책임졌다.


“다시 일어설 줄 아는 게 장점” 팔꿈치 부상 이겨낸 육청명

아버지 육성철 씨가 제작한 가족신문 속 청호·청명 두 형제의 모습(사진=육성철 씨 제공)

육청명의 아버지 육성철 씨는 언론인 출신으로 아내와 함께 가족신문을 꾸준하게 만들어 두 아들의 성장기를 기록해 왔다. 육청명의 5살 터울 형인 육청호 씨도 아버지를 닮아 동생의 모습을 색다르게 기록 중에 있다. 아버지가 글이었다면, 형은 영상이다.

현재 사회체육학과 대학생인 육청호 씨는 컨텐츠 크리에이터로 유튜브 채널 ‘육튜브’을 운영하면서 동생 육청명을 응원하는 영상을 올리는 등 야구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이다. 최근 13일 올라온 영상엔 아버지 육성철 씨와 함께 동생의 퓨처스리그 등판을 응원하기 위해 2군 경기장을 찾아가는 내용이 담겼다.

“어릴 때 집에 혼자 있는 걸 심심해 할까 봐 주말에 리틀야구로 데리고 갔던 게 어제 같은데… 그런 동생이 이젠 프로야구 선수가 됐네요.” 13일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육청호 씨의 감회다.

이어 “5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니 나 덕분에 빨리 재능을 발견한 셈”이라고 미소 지은 육 씨는 “처음엔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맛있는 걸로 살살 꼬시느라 고생이 많았다. 확실한 건 그럴 가치가 있을 정도로 동생은 야구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다”고 했다. 동생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만 어릴 땐 서로 정말 많이 다퉜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해 육 씨는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그래도 오랜 시간 싸우면서 청명이와 더 돈독해진 게 있는 듯싶다”고 웃었다.

강릉고 재학 시절 육청명의 모습(사진=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그런 형을 비롯해 ‘가족’이란 든든한 울타리는 육청명에게 큰 힘이 됐다. 특히 지난해가 그랬다. 당초 2학년 때부터 고교야구에서 내로라하는 재능으로 평가받았던 육청명은 2022년 10월 큰 혼란을 겪은 바 있다. 급작스럽게 마주한 팔꿈치 통증에 웃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것. 이듬해는 KBO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있는 3학년 시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예기치 못한 공백기에 선수 본인은 힘든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형 육청호 씨는 이때를 떠올리면서 “청명이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우리 가족은 청명이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다행인 건 청명이가 가진 특유의 성격이 그 아픔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육청명을 지도한 최재호 강릉고 감독 또한 동의하는 대목이다. 최 감독은 “항상 명랑하고 좀처럼 풀 죽지 않는 성격이 장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때론 선수를 혼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경기력에 영향을 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청명이는 다릅니다. 혼나더라도 그 상황에 깊게 빠져들지 않아요. ‘잘 잊어버리는 능력’도 스포츠에선 중요합니다.” 최 감독의 설명이다.

육청명은 12일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팔꿈치 부상 당시를 회고한 뒤 “많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건 한 가지 생각 덕분이다. ‘지금 고민은 나중에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계속해서 리마인드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2024 KBO 신인 드래프트 직후 가족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KT 투수 육청명(사진=KT)

중학생 때까지 야구를 한 뒤 고등학교에선 펜싱 선수로 활약한 육청호 씨는 그런 동생의 장점을 주목하면서 “나도 운동을 계속하면서 항상 느끼는 게 지나간 일을 금방 잊고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청명이는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바쁜 대학교 생활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동생 응원에 할애하고 있는 육청호 씨다. 하지만 13일 SSG전은 학업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멀리서나마 응원을 보냈다. 이에 육 씨는 “어떤 결과라도 연연하지 않고 하던 대로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동생을 향한 격려를 전했다.

대신 아버지 육성철 씨가 경기장을 찾아 아들의 데뷔전을 지켜봤다. 감격 속에서도 말을 아낀 육성철 씨는 “새삼 청명이가 진짜 야구선수가 됐다는 게 실감이 난다”면서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는 게 가족의 역할일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이어진 가족의 응원을 선수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육청명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 “형은 오지 말라고 해도 항상 온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밝힌 까닭이다.

‘프로야구선수’ 육청명은 이제 갓 데뷔전을 마치고 출발선에 섰다. 앞으로 걸어갈 마라톤 여정 속엔 마법 같은 활약을 보여줄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뚝이’ 본능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내려갈 육청명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