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회→이동욱→수베로→?’ 5월 11일은 감독 경질 데이, 설마 올해도 또? [춘추 이슈분석]
KBO리그엔 슬픈 전설이 있다. 매년 5월 11일이 되면 하위권 팀 감독 가운데 하나가 잘린다는 전설이다. 3년 연속 현실이 된 5·11 감독 잔혹사, 과연 올 시즌에도 이루어질까.
[스포츠춘추]
이쯤되면 KBO 달력에 5월 11일을 기념일로 지정이라도 해야 할 듯하다. 매년 똑같은 날 1군 사령탑이 경질당하는 비극이 3년 연속 되풀이되고 있다. 올 시즌에도 5월을 못 넘기는 감독이 나올 수 있다는 괴담이 야구계에 떠도는 가운데, 하위권 팀 사령탑의 거취에 눈길이 쏠린다.
시작은 2021년 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이었다. 그해 5월 11일 롯데 구단은 허 감독의 전격 경질 소식을 알렸다. 부임 2년 차 시즌, 개막 이후 딱 30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롯데는 감독의 목을 쳤다. 경질 당시 롯데의 성적은 12승 18패로 리그 최하위였다.
부임 첫해부터 거듭된 구단과의 마찰이 원인이었다. 허 감독은 유망주 콜업과 엔트리 구성, 코칭스태프 교체를 두고 구단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프런트를 비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미디어와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결국 롯데는 허 감독을 경질하고 래리 서튼 퓨처스 감독을 1군 감독으로 승격했다. 당시 롯데는 “이번 결정은 구단과 감독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 차이가 지속된 데 따른 것”이라며 성적이 아닌 ‘방향성’이 교체 사유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듬해엔 2020시즌 우승 사령탑인 NC 다이노스 이동욱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날짜는 5월 11일로 허 감독과 같았다. 33경기 9승 24패로 리그 꼴찌로 추락한 가운데 나온 결정이었다.
당시 NC는 “지난해에 이어 최근 반복된 선수단 일탈행위와 성적 부진으로 침체된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 감독의 해임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직전 시즌 선수단의 방역수칙 위반 사건으로 홍역을 앓은 NC는 시즌 초 코치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사태까지 터지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여기에 팀 성적까지 추락을 거듭하자 결국 수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경질 당시 이 감독은 3년 연장 계약의 첫 시즌으로 계약기간이 2년이나 남아 있었지만 NC는 주저하지 않았다. 또 야구계 관례였던 ‘자진사임’이라는 포장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질’이라 발표했다.
2021 허문회→2022 이동욱→2023 수베로→2024년에도 또?
5·11의 비극은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2023년 5월 11일, 이번엔 한화 이글스 외국인 감독 카를로스 수베로가 구단으로부터 전격 경질 통보를 받았다.
2021년 부임 당시만 해도 ‘리빌딩 전문가’로 구단 안팎에서 큰 기대를 받았던 수베로 감독이다. “실패할 자유”라는 멋진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나이 어린 유망주들에게 많은 기회를 줬고 나름 유의미한 성과도 냈다. 0.371의 승률과 최하위 성적은 리빌딩에 따르는 진통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년 차 시즌 팀 성적이 승률 0.324로 첫해보다 퇴보하자 수베로 감독을 향한 부정적 여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차에도 첫 31경기에서 11승 1무 19패로 여전히 최하위를 맴돌자 마침내 구단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다. 한화는 11일 경기가 끝난 뒤 한밤중에 수베로 감독을 경질하고 최원호 퓨처스 감독을 정식 사령탑에 임명했다.
사실 5월 초는 감독을 자르기에 적당한 시기는 아니다. 보통 감독 교체는 시즌 중반을 전후해서 이뤄진다. 5월은 시즌 극 초반으로 많은 경기가 남아있고 반등 가능성이 있어 사령탑을 쳐내는 건 성급한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 5월 초에 감독을 바꾸는 이례적인 일이 3년 연속으로, 그것도 같은 11일에 반복됐다. 세 감독 다 전년도 성적이 좋지 않았고, 구단과 여론의 신임을 잃은 가운데, 마지막 기회를 받았지만 시즌 초반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해고라는 운명과 마주했다.
올 시즌에는 어떨까. 일단 현재까지 상황만 봐선 감독을 자르는 팀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최하위 롯데와 9위 KT는 감독 계약 첫 시즌이고 팀 내 입지도 탄탄해 리더십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다른 하위권 팀 사령탑도 구단주 혹은 구단 수뇌부와 관계가 두터워 웬만해선 바뀌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6위 두산부터 9위 KT까지는 5강권과 승차도 크지 않다.
다만 야구계에서 최근 들어 하위권으로 추락한 특정 팀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도는 것은 사실이다. 대대적인 투자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 팀을 가리켜 ‘5월 초에 반등하지 못하면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소문이 야구인 사이에서 끊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이번 주 강팀과 3연전, 다음 주 최약체 팀과 3연전에서 반등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윗선에서 모종의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야구인 중에는 벌써 소문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김칫국을 마시는 인사도 있다. 이런 류의 괴담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귀에 들어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는 경우도 있어서 불길하다.
일단 3일 경기에선 하위권 5팀 가운데 4팀이 승리를 거두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5월 11일까지 아직 일주일이 남아 있기에 완전히 안심하기는 이르다. 3년 연속 현실이 된 5·11 괴담이 올해를 끝으로 소멸할지, 아니면 4년 연속으로 소름 돋게 맞아떨어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