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금지' 때문에 선수 놓칠라...뉴욕 양키스, 꼰대 내규 변경 결단 "단정한 수염은 허용" [춘추 MLB]

[스포츠춘추]

시대의 변화 앞에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보수적인 구단도 어쩔 수 없었다. 뉴욕 양키스가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수염 금지 규정을 완화했다.

할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구단주는 22일(한국시간) 스프링캠프가 진행 중인 플로리다주 탬파의 조지 M. 스타인브레너 필드에서 "오늘부터 '단정한 수염'을 허용하는 것으로 팀 내규를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1976년 그의 아버지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제정한 엄격한 선수 용모 관련 규정을 49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수정한 것이다.

양키스의 수염 금지 규정은 구단의 정체성과 직결된 상징적인 전통이었다. 공군 중위 출신이었던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군대식 규율을 선수단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 결과 선수들은 깔끔하게 면도를 하거나 콧수염만 기를 수 있었고, 머리는 칼라 아래로 내려오지 않아야 했다. 이런 규정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양키스만 고수해왔다.

할 스타인브레너는 "현 세대에게 얼굴 수염은 개성의 일부로 중요하며, 이는 이미 사회적 규범이 되었다"며 "지금 시대에 이 규정은 다소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ESPN의 호르헤 카스티요 기자에 따르면 스타인브레너는 수년간 이 문제를 고민해왔으며, 최근 애런 저지, 게릿 콜, 지안카를로 스탠튼 등 주요 선수들과 개별적으로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양키스가 전통적인 규정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선수 영입에서의 경쟁력이었다. 스타인브레너는 "우리가 원하는 선수, 우승을 위해 필요한 선수가 이 내규 때문에 양키스에 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닌 현실적인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1986년부터 양키스에서 근무해온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때가 됐다"며 이번 결정을 지지했다. 그는 "구단주에게 이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라며 "우리는 거대한 해군 순양함과 같아서 방향을 바꾸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는 비유로 변화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양키스의 엄격한 규정은 지난 50년간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 돈 매팅리는 머리 길이 때문에 벤치에서 제외되고 벌금을 물기도 했다. 이 일화는 1992년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에서도 패러디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또한 2013년 사이영상 수상자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규정 때문에 양키스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같은 해 올스타 마무리 브라이언 윌슨은 자신의 상징적인 검은 수염을 깎기 싫어 양키스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캐시먼 단장은 2009년 당시 CC 사바시아가 처음에는 면도 규정 때문에 양키스 입단을 망설였다고 회상했다. 결국 7년 1억6100만 달러(2254억원)의 거액 계약으로 설득했지만, 이후에도 여러 드래프트 유망주들이 이 규정 때문에 양키스를 피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올 오프시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디 애슬레틱의 브렌던 쿠티와 크리스 커슈너 기자에 따르면,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영입한 마무리 데빈 윌리엄스는 수염을 깎아야 해서 낙담했다고 한다. 그는 스프링캠프 신체검사 때 수염을 유지했다가 첫 훈련에서는 콧수염으로 바꿨다. 그러나 일주일 후 팀 사진 촬영일에는 가벼운 수염을 기르고 나타나며 내규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 양키스 선수 글레이버 토레스와 클레이 홈즈는 트레이드된 새 팀에서 풍성한 수염을 기르고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이제 그들의 전 동료들도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수염을 기를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번 규정 변경으로 모든 형태의 수염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스타인브레너는 '단정한 수염'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캐시먼 단장은 선수들에게 "미국 TV 리얼리티 쇼 '덕 다이너스티' 출연진처럼 덥수룩한 수염은 지양한다"고 전달했다. 또한 머리 길이에 관한 규정은 그대로 유지돼, 유니폼을 입는 모든 구성원은 여전히 칼라 아래로 머리를 기르는 것이 금지된다.

"규율 있는 모습"을 여전히 중요시하는 양키스는 전통을 완전히 버리기보다 시대에 맞게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릿 콜은 이번 결정에 대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깔끔한 모습은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고 면도로 인한 자극도 줄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스타인브레너는 이번 결정이 아버지의 뜻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였다"라며 "우리가 매 오프시즌 하는 일은 원하는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최상의 위치에 자신을 두는 것이다. 이런 규정이 그 기회를 줄인다면, 아버지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변화에 더 개방적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