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심판 못 믿어 용병 심판 고용...유럽 축구가 '부정심판 음모론'에 병든다 [춘추 이슈]
분노한 구단주들, 경기장 난입에서 리그 탈퇴 위협까지...유럽 전역으로 환산되는 음모론
[스포츠춘추]
최근 유럽 축구계에서 심판 불신과 음모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터키 축구협회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자국 리그 경기에 외국인 심판을 기용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를 두고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의 축구 전문기자 로리 스미스는 "음모론의 시대에 접어든 축구계가 위험한 급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주 터키 최대 라이벌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의 '인터콘티넨탈 더비'엔 슬로베니아 출신 슬라브코 빈치치 심판이 투입됐다. 양팀은 물론 터키 축구협회까지 자국 심판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지난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맡았던 빈치치를 약 1만 유로(약 1,300만원)에 '임차'한 것이다.
빈치치의 '용병 심판' 등장 배경에는 터키 축구계의 만연한 음모론이 자리 잡고 있다. 스미스 기자는 "터키 슈퍼리그는 수년간 편집증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며 "이스탄불의 세 강호인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체, 베식타시는 모두 자신들이 라이벌 팀을 돕는 어두운 세력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믿어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들어 이 음모론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2023년에는 앙카라귀쥐의 구단주가 경기장에 난입해 심판의 머리를 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같은 달 이스탄불스포르 구단주는 명백한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선수들에게 경기 포기를 지시했다. 이듬해 페네르바체는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리그 탈퇴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결정적으로 이번 달 초 아다나 데미르스포르는 갈라타사라이와의 경기에서 상대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지자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편파 판정과 불공정한 대우"를 당했다며 경기 포기를 명령했다. 더 놀라운 점은 경기와 무관한 페네르바체가 곧바로 성명을 발표해 갈라타사라이가 심판과 팬들을 "속이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다.
스미스 기자는 "유럽 내에서 터키 축구를 특수한 사례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접근"이라며 "터키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길의 더 앞쪽에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유럽 축구계 전반에 음모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축구 당국에 "스페인의 심판 시스템이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판정들이 공정한 경쟁을 훼손하고 대회의 진정성을 손상시키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4페이지 분량의 항의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AC 밀란도 이탈리아 심판 감독 기구에 세리에 A 심판들이 자신들의 선수들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예우"를 제대로 표하지 않고 있다며 항의했다. 밀란의 임원이 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우리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마르세유 회장 파블로 롱고리아가 선수 퇴장 후 심판 "부패"에 대해 격분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는 "마르세유가 슈퍼리그 제안을 받는다면 즉시 참가할 것"이라며 리그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스미스 기자는 이러한 음모론 확산의 결과로 세 가지 위험성을 제시했다. 우선 빈치치의 사례가 선례가 되어 심판 '아웃소싱'이 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이다. 실제로 더비 경기 후 트라브존스포르는 페네르바체, 갈라타사라이와의 경기에도 빈치치를 요청했다.
두 번째는 심판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마르세유 경기를 담당한 프랑스 심판 제레미 스티나트는 롱고리아의 발언 이전에도 자신과 아내의 자동차 타이어가 찢겨지는 사건을 겪었으며, 경기 후에는 집에 침입자가 다녀갔다는 보도도 있었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스포츠의 본질 훼손이다. "터키 축구를 둘러싼 의심의 궁극적 결과는 신뢰의 상실이다"라고 스미스는 지적한다. "경기나 토너먼트, 시즌의 결과가 불법적인 것으로 무시된다면 스포츠는 기능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면, 왜 경기를 볼 것인가? 모든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관심을 둘 이유가 무엇이겠나?"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과거 부패 스캔들의 상처를 안고 있다. 마르세유의 유일한 유럽컵 우승은 전 구단주의 승부조작 혐의로 오점이 있으며, 세리에 A는 여전히 '칼초폴리(2006년 이탈리아 프로축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승부조작 및 심판매수 스캔들)' 사건의 후유증에서 회복 중이다.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의 심판위원장 금품 지급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스미스는 "때로는 음모가 사실로 밝혀지기도 한다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근거 없는 부정행위 주장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 증거가 있을 때만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스미스는 이러한 현상이 소셜미디어 시대의 산물로, 정치 영역에서도 정부를 흔들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끝으로 스미스는 "축구계가 민주주의 제도를 위협하는 것과 유사한 급진화 과정에 노출되었다"고 진단하며 심판 음모론자들을 향해 "과거 부패 스캔들의 상처를 경험한 리그들이 자신들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부패'라는 위험한 주장을 무분별하게 활용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력히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