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력 때문? '불법도박' 안타왕, '블랙삭스' 주역들 사면 복권한 메이저리그 [춘추 MLB]

사후 8개월 만에 내려진 결정... 트럼프 개입 계기로 급물살

2025-05-14     배지헌 기자
피트 로즈가 세상을 떠났다(사진=신시내티 레즈 SNS)

 

[스포츠춘추]

미국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전설적인 안타왕 피트 로즈를 비롯한 사망 선수들에 대한 영구 제명 조치를 공식 철회했다. 로즈가 사망한 지 8개월 만의 결정이다.

MLB 사무국은 5월 14일(한국시각) 로즈를 포함해 총 17명의 영구 제명 선수들에 대한 제재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에는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에 연루된 '맨발의 조' 잭슨을 비롯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 8명도 포함됐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영구 제명의 목적은 리그의 정직성과 공정성을 위협하는 인물을 차단하고, 이를 통해 향후 유사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억지력을 유지하는 데 있다"며 "그러나 이미 사망한 인물은 리그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 사망 시점에서 영구 제명은 종료되는 것으로 본다"고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피트 로즈는 1963년부터 1986년까지 24시즌 동안 활약하며 통산 4256안타, 3562경기 출전, 1만5890타석 등 MLB 대기록들을 세웠다. 통산 타율 0.303, 홈런 160개, 타점 1314개를 기록했으며, 17차례 올스타에 선정되고 세 차례 타격왕에도 올랐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는 1989년 큰 오점으로 얼룩졌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신시내티 레즈 소속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자신의 팀 경기에 불법 베팅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1989년 MLB와 영구 제명에 합의하며 명예의 전당 입성은 물거품이 됐다. 이후에도 복권을 꾸준히 요청했으나 MLB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즈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났다.

'맨발의 조'로 불린 조 잭슨(1887~1951)은 1919년 월드시리즈 승부조작 사건으로 MLB 역사상 가장 오래된 영구 제명 사례 중 하나였다. 문맹이었던 그는 조작에 적극 가담했는지 여부를 두고 100년 가까이 논란이 이어져 왔다. 통산 타율 .356으로 역대 4위에 올라 있는 역대급 타자였으나, 승부조작이라는 '원죄'로 인해 명예의 전당 입성이 좌절됐다.

로즈의 복권 논의가 급물살을 탄 계기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 있었다. 트럼프는 올해 초 "피트 로즈는 처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며 "완전한 사면을 준비 중"이라는 뜻을 밝혔고, 이는 논란과 함께 로즈 사면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로즈의 유족들 역시 MLB 사무국에 복권을 요청했고, MLB는 이를 재검토한 끝에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다. 

피트 로즈와 조 잭슨은 이제 MLB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되찾게 됐다. MLB 명예의 전당 이사회 의장 제인 포브스 클라크는 "영구 제명이 철회된 선수는 자동으로 후보 자격이 복원된다"며 "로즈와 잭슨 역시 동일한 절차를 밟게 된다"고 밝혔다.

두 선수는 1980년 이전에 활약한 인물을 심사하는 '고전 야구 시대 위원회'의 평가 대상이 되며, 해당 위원회의 다음 회의는 2027년 12월로 예정돼 있다. 입성 여부는 16인의 전문가 패널 투표를 통해 결정되며, 12표 이상을 획득해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신시내티 레즈 구단주 밥 카스텔리니는 "피트 로즈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이 마침내 올바른 위치에 놓이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복권 결정을 환영했다. 그러나 로즈 본인은 사망 직전 인터뷰에서 "명예의 전당은 내가 살아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땅속에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을 두고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압력에 MLB가 굴복한 사례"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사망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30년간 유지해온 원칙이 바뀐 점을 두고 "정치 권력이 스포츠 규율에 개입한 위험한 선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켄 로젠탈 '디 애슬레틱'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맨프레드에게 압력을 가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이 제기된다"며 "맨프레드는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MLB가 직접 스트리밍 서비스를 추진하는 시점에서 트럼프의 반대편에 서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MLB가 최근 들어 스포츠 도박 산업과 다각적인 제휴를 맺고 있는 가운데, 도박 문제로 선수를 평생 추방해온 과거 원칙과의 일관성 문제도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도박으로 제명된 선수를 여전히 추방하면서, 리그는 도박 사업과 수익을 나누는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이번 결정은 사망한 선수들에 한정된 것"이라며 "현역 선수나 생존한 인물에 대한 도박 관련 제재 원칙은 변함없이 엄격하게 유지된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