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갑’인 줄 아는 창원시의 착각, 문제는 안전점검이 아니야 [춘추 이슈분석]
일방적인 안전점검 ‘선언’ 만으론 관계 회복 불가능…창원시는 문제가 뭔지 정말 모르나
[스포츠춘추]
마틴 맥도나가 연출한 ‘이니셰린의 밴시'는 어느 날 갑자기 절교를 선언한 절친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콜린 파렐이 연기한 주인공 파우릭은 친구 콜름(브렌단 글리슨)에게 갑자기 절교당한다. 당황한 파우릭은 처음엔 콜름을 찾아가 이유를 묻고, 나중엔 집에 찾아가 화해를 시도한다. 친구를 칭찬해 보기도 하고, 여동생의 중재를 요청하기도 하고, 강제 대화를 시도하거나 위협을 가해보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관계는 더 악화된다. 관계 회복을 거부하는 친구는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집에 불을 지르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거부 의사를 나타낸다. 상대가 왜 마음이 돌아섰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과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한 모든 노력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최근 창원특례시가 '다이노스컴백홈'을 외치며 NC 다이노스에 매달리는 행태를 보면서 영화 속 파우릭의 행동을 떠올렸다. 창원시는 -정확히는 창원시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NC가 창원NC파크로 돌아오길 주저하는 게 그저 안전점검 문제 때문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형식상 안전점검만 끝내면 NC가 곧장 돌아올 거라고, 돌아와야만 한다고,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굳게 믿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창원시와 NC 다이노스의 관계는 이제 안전점검이 끝나고 말고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 3월 29일 NC파크 안전사고로 관중이 사망한 뒤 창원시가 보인 행태를 돌아보자. 만약 사고 직후 창원시가 사망자와 유족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NC 구단과 함께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상황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창원시와 창원시설공단은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한 공무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실 공단 책임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데 그건 너무 이기적"이라며 "야구장의 일반적인 안전 관리, 보수 책임은 협약에 따라 운영자인 NC 구단에 있다"며 구단에 책임을 전가했다. 사망자 발생 이후에도 한동안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고 사과도 없었다. 시청 앞에서 규탄 시위가 열리자 그제야 등 떠밀리듯 애도를 표하는 짧은 입장문을 냈다. NC 직원들이 매일 밤새 병원과 빈소를 지키며 유족을 위로할 때 창원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고 수습에도 소극적 대응이 이어졌다. 국토교통부가 전문가 중심 사조위 구성을 지시했지만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시설물 탈거까지 한 달이나 걸렸다. 그사이 NC는 홈구장 없이 유랑극단처럼 전국을 돌며 발만 동동 굴렀다. 성적은 물론 구단 수입이 사실상 '0'이 되면서 코로나19 시절 수준의 재정난이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일 국토교통부(국토부) 주관 회의에서 "구장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전문 장비를 활용한 전반적인 안전점검에 6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사실상 연내 재개장은 불가능해졌다. 결국 NC와 KBO는 남은 시즌 사용할 대체구장을 찾아 나섰고, 울산광역시의 도움으로 어렵게 임시 홈구장을 구해 홈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됐다.
NC의 울산행 소식에 지역 상인들과 여론이 부글부글대자 그때서야 창원시도 움직였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더니 ‘18일까지 정비를 완료할 테니 NC는 홈경기를 재개하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돌아오라고 통보했다. 시의회도 거들고 나섰다. 그간 “국회에서 만들면 악법도 법” “시민 의견이 A여도 B로 표결하는 건 의원 자유” “NC가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전혀 없다” 등 숱한 어록을 쏟아냈던 창원시의회는 뜬금없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다이노스컴백홈' 7행시를 공개해 비웃음을 샀다.
19일엔 언론을 대상으로 현장 브리핑을 열고 시설물 보수와 안전 점검을 마쳤다고 공개했다. ‘불안 해소 목적’이라며 현장을 창원 주민과 야구팬들, 체육계 관계자 등 30∼40명에게 보여주는 행사도 진행했다. "졸속 재개장·책임 전가 주장은 사실 아니며 오보와 왜곡된 팬 여론에 유감"이라는 적반하장 입장문도 냈다. 일부 지역지를 제외한 모든 언론과 팬들이 창원시를 싸잡아 비판하는 현실과는 완벽한 인지부조화다. 여기에 야구장 폐쇄로 고통받는 상인들을 앞세워 빨리 돌아오지 않는 NC가 마치 가해자인 것처럼 프레이밍하고 있다.
창원시는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형식적인 안전점검이 끝났으니 문제가 해결됐다는 건 창원시 생각일 뿐, 진짜 문제는 창원시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전혀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번 사태로 NC와 야구계는 창원시에 대해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창원시가 하는 말은 쌀로 밥을 짓는다 해도 믿지 못하는 지경이다. 창단 때부터 수없이 속고 배신당하고 '을질'을 되풀이하며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다. 이제는 사람이 죽는 일까지 벌어졌는데도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는 행태에 마지막 남은 인류애마저 사라졌다. 그게 지금 펼쳐지는 문제의 본질이다. 그걸 모른 채 찾아오고 애원하고 윽박질러봐야 화만 돋굴 뿐이다.
한 야구인은 “15년 전 창원에 야구단을 창단한 건 결과적으로 큰 판단 미스였다. 아마도 지금쯤은 NC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했다. 이어 "만약 그때 유치 경쟁을 벌인 다른 지역에 야구단을 창단했다면 NC는 지금쯤 많은 관중이 찾아오는 인기 구단으로 흥행 특수를 누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설득력 있는 건, 사실 창원시가 프로야구팀을 운영하기에 애초 적합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와 전통이 있고 지역민들의 야구사랑이 뜨거운 곳이지만, 객관적인 조건만 놓고 보면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인 프로야구단을 보유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창원보다 인구도 더 많고 교통과 접근성이 좋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에 창단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와 KBO는 당시 '약 1200억원 규모의 새 구장 건립, 구장 사용료 면제, 구장 운영권 장기 위탁' 등 창원시가 한 약속과 의지를 믿었다. 지역 균형발전이 필요하다는 김택진 구단주의 소신도 더 좋은 지역을 놔두고 창원시를 선택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 믿음과 선의는 얼마 안 가 배반당했다. 창원시는 야구단을 소유하게 되자 말을 바꿨다. "사용료 면제 약속은 기존 마산야구장에 대한 것이었다"며 손바닥을 뒤집었다. 결국 NC는 새 구장 건립비 1270억원 중 100억원을 이미 분담하고도 추가 사용료를 요구받았다. 부지 선정과 명칭 문제에서도 갈등의 연속이었다. 창원시는 정치적 이유로 야구장 부지를 진해로 변경하려 압력을 가했고, 나중엔 최적의 입지인 창원시 지역이 아니라 마산지역에 야구장을 짓게 결정했다. 실리보다는 지역 정치논리가 작용한 결정이었다.
구장 명칭 또한 NC가 제안하고 '야구장명칭선정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확정한 '창원NC파크'를 무시하고 '창원NC파크 마산구장'을 강요했다. 창단 당시 약속과 달리 대구(500억원), 광주(300억원) 수준의 막대한 구장 사용료를 요구했고, 결국 NC는 330억원(25년)이라는 고액의 사용료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시의회에선 "야구단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다"는 망언과 엔씨소프트 본사 자체를 창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비상식적 주장까지 나왔다. 지역에서 구단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뜯어낼 궁리만 했다. 시의원의 망언과 달리, NC는 어느 프로야구팀보다 지역사회에 많은 공헌 활동을 하는 야구단이다. 창단 때부터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역에 밀착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NC에게 돌아온 건 온갖 유형무형의 압력과 정치권의 갑질이었다.
1000만 관중을 돌파한 작년, NC 다이노스의 관중유치를 위한 노력을 기사화하려고 취재한 적이 있다. NC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기사를 쓰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관계자는 '관중 증가로 수익이 예년보다 늘었다는 얘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요청했다. 관중 증가와 수익 증가는 자랑할 일인데 왜 그러냐고 하자, '수익이 늘었다고 하면 바로 지역에서 뭘 더 내놓으라는 요구가 들어온다'고 했다. '수익이 늘어봐야 여전히 적자인데 지역에서는 이해를 잘 못한다'는 것이다. 10년 세월 동안 겪은 을질이 자랑할 일을 자랑할 수도 없게 만들어 버렸다.
프로야구단은 땅파서 장사하지 않는다. 옛날 8~90년대처럼 적자를 감수하고 모기업 지원금으로 운영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창원시가 매 경기 구름 관중이 몰려들고 매진을 이루는 연고지도 아니다. 설상가상 모기업 사정이 심각하게 악화된 NC로선 어떻게든 관중을 모으고, 돈을 벌어야 야구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에 NC는 창단 이후부터 수없이 창원시에 도움을 요청했다. 창원이라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내기 위해, 가급적 새 야구장은 접근성이 좋은 곳에 지어달라고 호소했다. 대답은 마산에 야구장 건설이었다. KTX 막차 시간을 늦춰달라고, 역에서 야구장까지 이동하기 편리한 대중교통수단을 마련해 달라고 2015년부터 애원했지만 10년 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마산역에서 서울역 가는 KTX 막차는 9시 43분차다. 이 차를 타려면 9시 30분에는 역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9시 10분에는 야구장에서 나와야 한다. 대부분의 야구 경기는 6시 30분에 시작해 9시 30분에 끝난다. 경기 후 기사 작성하고 선수 인터뷰하고 나면 아무리 빨라도 야구장에서 나오는 건 10시 이후다. 결국 자정에 출발하는 심야 버스를 타야 귀가가 가능하다.
경부고속터미널에 내리면 새벽 4시가 훌쩍 넘는다. 택시를 타고 귀가해서 조금 눈을 붙여도 다음날 하루종일 피로에 시달린다. 창원 한번 다녀오면 그 여파가 며칠씩 간다. 창원 경기에 언론 현장취재가 거의 없는 이유다. 기사가 나오지 않으면 야구단 홍보에 어려움이 생기고, 이는 흥행과 구단 마케팅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일을 다른 지역에서 내려온 원정 관중들도 똑같이 겪는다. 창원 시의원들은 7행시를 만들고 이상한 집회에 참석할 시간은 있어도 이런 문제는 해결 안하고 있다.
창원은 부산, 대구, 광주같은 광역 대도시가 아니다. 접근성과 인프라가 좋은 대도시 연고지라면 다소 불합리한 요구가 있더라도 구단이 참고 '을'이 될 만한 유인이 있다. 연고지를 버리고 다른 곳에 가는 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만약 좋은 연고지를 버리면 그 도시로 들어오려는 다른 구단들이 줄을 설 것이다. 안타깝게도 창원은 그런 연고지가 아니다.
기아자동차, 신세계그룹, 롯데그룹 같은 대기업이 모회사라면 관중이 적게 오고 구단 수입이 적어도 모기업 지원으로 버틸 수 있다. 지금 NC는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모기업 사정은 창사 이래 최악이고 지원금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야구단을 매각하라는 주주들의 압력에 본사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이다. 구단은 어떻게든 돈을 벌고 자립에 성공해서 본사에 ‘야구단의 존재 이유’를 어필해야 한다. 이런 판국에 연고지에서 도움을 주지 않고 괴롭히면, 본사에서 야구단 운영을 언제 접어도 이상할 게 없다.
작년 1000만 관중을 돌파한 KBO리그는 지금 여러 지자체들의 러브콜을 받는 중이다.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고 싶다는 지역이 한둘이 아니다. 창원보다 훨씬 인구가 많고 교통과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도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최신식 새 야구장 건설을 비롯해 온갖 혜택을 약속하는 곳도 있다. 이런 곳을 연고지로 삼으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엔 흥행과 구단 수입 증대를 통한 자생을 기대할 수 있다. 정치인들의 말을 어떻게 믿냐 할지 모르지만, 설마 창원보다 심한 곳이 있을까.
이렇게 매력적인 새 연고지 후보들이 있는데 구단이 창원에 계속 남아야 할 이유가 뭔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찾는다면 야구를 사랑하는 창원 팬들. 그리고 이미 창원에 터를 잡고 뿌리내린 선수단과 프런트, 그 가족들 정도일 것이다. 한 NC 선수는 '요즘 연고 이전 얘기가 나온다'는 질문에 "어떻게 떠나요. 집도 여기 있고 여기서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있는데"라고 답했다.
보통 프로스포츠팀 연고지 이전 얘기가 나오면 여론은 프로팀에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NC에 관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크보빵도 자기 팀 빵만 먹는 야구팬들이 이 문제에 관해선 거의 한 목소리로 창원시를 비판하고, NC가 연고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야구계에서도 반드시 연고지를 이전하는 팀이 나와서 본때를 보여줘야 창원시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목소리가 많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게 돌아가는데도 창원시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안전 점검 끝났다'며 돌아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소상공인들을 방패막이로 앞세운다. 소름끼치는 7행시나 짓고 있다. 이제는 망상에서 벗어날 때다. 창원시는 더 이상 갑이 아니고, 프로야구단은 더는 을이 아니다. NC 없는 창원NC파크가 되어야, 2019년 신축한 최신식 야구장이 고교야구 전용구장으로 쓰이는 날이 와야 정신을 차릴 건가. 그렇게 상황 판단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