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 밀러 후계자' 할리버튼, 31년 만에 재현한 초크 세리머니...인디애나, 기적의 대역전승 [춘추 NBA]

4쿼터 한때 16점차, 종료 1분전 9점차 뒤집고 대역전극...뉴욕에 충격 선사

2025-05-22     배지헌 기자
레지 밀러를 소환한 타이리스 할리버튼.

 

[스포츠춘추]

1990년대 레지 밀러가 뉴욕 닉스를 상대로 연출했던 '매디슨스퀘어가든의 악몽'이 30년이 지난 오늘, 밀러의 후계자에 의해 다시 한 번 재현됐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에이스 타이리스 할리버튼이 5월 22일(한국시간) 뉴욕에서 열린 2025 NBA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1차전에서 극적인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며 팀을 연장전 승리로 이끌었다.

인디애나는 정규시간 종료 2분 51초를 남기고 14점차로 뒤진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138대 135로 역전승을 거뒀다. ESPN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당시 닉스의 승률은 99.8%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인디애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을 연출했다. 1998년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마지막 1분에 9점 이상 뒤진 팀들의 전적은 0승 1414패였다. 인디애나가 이 불가능한 확률을 뒤집고 첫 번째 승리를 기록한 것이다.

경기의 전환점은 아론 네스미스의 폭발적인 3점 러시였다. 4쿼터 막판 4분 45초 동안 네스미스는 6개의 3점슛을 연속으로 성공시키며 18점을 쏟아부었다. 이날 9개 3점슛을 시도해 8개를 성공시킨 네스미스는 현지 언론의 "뉴욕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악역 중 하나"라는 평가와 함께 인디애나의 기적적인 역전승의 주역이 됐다.

네스미스가 역전 드라마의 조연이라면, 진짜 주연은 할리버튼이었다. 정규시간 종료 7.3초를 남기고 2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할리버튼은 코트 전체를 질주한 뒤 골밑으로 파고드는 동작을 취하다 뒤로 물러나면서 슛을 시도했다. 공은 림 뒤쪽을 강하게 맞고 하늘 높이 튀어올랐다가 마치 농구의 신이 다시 밀어넣은 듯 골대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할리버튼은 골이 들어가자마자 1994년 레지 밀러가 영화감독이자 유명 닉스 팬 스파이크 리를 향해 했던 그 유명한 초크 동작(목조르기)을 재현했다. 하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그의 발가락이 3점라인을 살짝 밟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2점으로 처리됐고, 경기는 125대 125 동점으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도 접전이 이어졌지만, 앤드류 넴하드가 연장전 종료 26초를 남기고 결승골을 넣으며 인디애나가 최종 승리를 가져갔다. 할리버튼은 31점 11어시스트, 네스미스는 30점을 기록했다. 

이번 역전승은 인디애나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연출한 세 번째 극적인 4쿼터 역전승이다. 밀워키 벅스와의 1라운드에서 연장전 결승골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준결승에서 버저비터를 성공시킨 할리버튼은 또 다시 '미스터 클러치'의 면모를 과시했다. 일부 현지 매체로부터 "과대평가된 선수"라는 혹평을 받았던 할리버튼이 이제는 플레이오프 극적인 순간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닉스에선 제일런 브런슨이 43점, 칼앤서니 타운스가 35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분전했지만 막판 집중력 저하가 치명적이었다. 닉스는 브런슨이 4쿼터 초반 5파울로 벤치에 앉은 상황에서 오히려 14-0 스코어 런을 펼치며 16점차까지 앞서갔지만, 막판 방심으로 야금야금 추격을 허용하다 끝내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경기 후 매디슨스퀘어가든은 "점보트론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외에는 완전한 정적"에 휩싸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2만 명의 관중이 마치 모두 동시에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들뜬 분위기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던 것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경기 종료 0.2초를 남겨놓고 공격권이 인디애나 쪽으로 넘어가자 일제히 자리를 떠나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번 패배는 닉스에게 단순한 한 경기 패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00년 이후 25년 만에 맞은 컨퍼런스 파이널 첫 경기를 이런 식으로 내준 것은 선수들의 멘탈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이런 유형의 패배는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며 "닉스의 최근 역사상 최악의 패배일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반면 인디애나는 1990년대 닉스-페이서스 라이벌리의 DNA를 그대로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지 밀러가 1994년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에서 4쿼터에만 25점을 올려 매디슨스퀘어가든을 침묵시켰던 것처럼, 할리버튼과 네스미스가 새로운 세대의 '닉스 킬러'로 등극했다. 25년 세월을 뛰어넘은 라이벌 대결이 1차전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