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등판·연투·3연투 압도적 최다...롯데의 불펜 과부하, 김성근 시절 한화보다 심하다? [춘추 이슈분석]
2015 한화 뛰어넘은 연투 196회 페이스...시즌 후반까지 버틸 수 있나
[스포츠춘추]
시즌 초반 상위권을 달리는 롯데 자이언츠의 화려한 성적 뒤엔 투수 과부하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2015 한화 수준을 향해 가는 롯데의 불펜 혹사에, 과연 이런 방식이 시즌 후반까지 지속 가능한 것인지 의문과 우려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롯데는 올 시즌 독한 불펜야구를 펼치고 있다. 불펜 기록만 봐선 평균자책 4.86(리그 8위)로 평범해 보이지만, 주축 불펜투수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김태형 감독의 현란한 투수교체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김 감독은 한 이닝에도 수시로 투수를 바꾸고, 꼭 잡아야 할 경기에선 필승조를 쏟아부으면서 승리를 짜내는 야구를 펼친다.
효과는 확실하다. 28일 현재 롯데는 6회까지 앞선 경기에서 23승 1무 3패(승률 88%)를 기록 중이다. 7회까지 앞선 경기에서는 23승 0무 1패(승률 96%), 8회까지 앞선 경기에서는 28전 전승(승률 100%)을 거뒀다. 1점차 승부에서도 5승 3패(승률 0.625)로 리그 1위다. 피타고라스 기대승률 0.502보다 훨씬 높은 실제 승률 0.577을 기록 중인 것도 불펜의 힘이다.
전준호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은 "롯데는 항상 5회 이전에 앞선 경기들이 많다. 이렇게 앞선 경기가 나오면 김태형 감독은 불펜에서 제일 센 투수들을 바로 붙인다. 이기는 경기에는 다소 무리하더라도 필승조를 당겨서 투입한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롯데는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불펜투수 등판이 많은 팀이 됐다. 28일 현재 55경기에서 불펜투수 236명을 기용해 경기당 평균 4.29명을 투입했다. 평균 3.24명만 기용한 KT 위즈보다 경기당 1명을 더 사용한다. 최다 경기 출전 순위를 보면 롯데 좌완 정현수(35경기)가 1위, 우완 베테랑 김상수(33경기)가 2위, 좌완 송재영(32경기)이 3위다. 정철원도 29경기 등판으로 최다 등판 공동 6위에 올랐다. KBO리그 최다 등판 상위 8명 중 4명이 롯데 소속이다.
진짜 문제는 연투와 3연투다. 통계사이트 스탯티즈가 불펜 세부기록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가장 불펜 2연투가 많았던 팀은 2015년 한화 이글스로 총 157회를 기록했다. 투수혹사의 대명사 김성근 감독이 많은 비판을 받았던 바로 그 시즌이다. 그 다음이 작년 김태형 감독 부임 첫해 롯데로 156회, 3위는 역시 김성근 감독 시절 한화로 147회였다.
올해 롯데는 55경기에서 이미 75회의 2연투를 기록했다. 144경기 환산 시 196회다. 2015년 한화의 157회를 훌쩍 뛰어넘는다. 투수 몸에 압도적으로 해로운 3연투도 마찬가지다. 2013년 이후 이 부문 최고 기록은 2015년 한화의 총 41회였고, 다음은 2016년 한화의 31회였다. 당시 한화 불펜투수들은 잦은 연투와 혹사에 시달렸고, 결국 부상과 수술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었다.
올해 롯데는 벌써 12회의 3연투를 기록해 144경기 환산 시 31회를 기록할 페이스다. 2015년 한화보다는 적지만, 2016년 한화와 같은 수준이다.
개별 선수 차원에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 연투 랭킹에서 정현수가 15회로 1위, 김상수가 12회로 2위, 송재영과 정철원이 11회로 공동 3위를 기록하고 있다. 3연투에서는 송재영과 정현수가 3회로 공동 1위다. 이를 144경기로 환산하면 정현수는 연투 39회, 3연투 8회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수는 연투 31회, 정철원과 송재영은 각각 연투 29회를 찍을 기세다.
이 수치들이 얼마나 극단적인지는 역대 기록과 비교하면 뚜렷하다. 2013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 시즌 최다 연투는 2014년과 2017년의 진해수, 2015년의 박정진이 기록한 29회였다. 그 외 2015년 권혁이 28회, 2016년 박정진과 2013년 이명우가 27회를 기록했는데 올해 롯데 투수 4명이 이를 뛰어넘을 기세다. 3연투 역시 2020년 임현준의 11차례, 2015년 김기현과 2014년 진해수의 9차례 다음으로 많은 3연투를 롯데 투수들이 기록하게 생겼다.
경기수는 많아도 투구수와 이닝은 적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이에 대해선 '경기수가 많은 것 자체가 문제'란 반론이 가능하다. 한 야구인은 "투구수가 적어도 불펜투수는 불펜에서 대기하면서 연습구를 던지지 않나. 불펜투수는 불펜에서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소모가 된다. 등판 경기가 많다면 몸을 그만큼 풀었다는 것이다. 등판하지 않는다고 공을 안 던지는 게 아니다. 이렇게 등판이 잦으면 장기적으로 쌓여서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의 투수 기용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설위원은 "롯데가 과연 지금 방식으로 여름이 돼서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은 결과적으로 경기에서 이기고 팀이 잘 나가니까 문제제기가 덜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준호 위원도 "투수들을 많이 당겨서 쓰면 뒤에 가서 아무래도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역사적으로 모든 불펜 혹사는 반드시 대가를 치렀다. 엄청난 비난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2015년과 2016년 한화는 시즌 초엔 '마리화나'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결국 하위권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특히 2015년 한화는 9월 6일까지 5위를 오르내리며 5강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당겨쓴 투수 할부가 후반기에 이자 폭탄으로 돌아오면서 5강 진출에 실패했다. 김성근 감독은 투수혹사를 강하게 부정하며 자기 방식을 밀어붙였지만, 결과는 예정된 실패였다.
결국 롯데가 비슷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기존 투수들의 페이스 저하와 예상되는 부진에 대비할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 5월 중순 뒤늦게 1군에 올라와 불펜에 숨통을 터준 최준용처럼 새 얼굴이 나와야 한다. 27일 KBO리그 데뷔전을 치른 새 외국인 투수 알렉 감보아의 역할도 중요하다. 선발투수가 긴 이닝을 던져줘야 불펜 과부하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15~2016년 한화와 비슷한, 어떤 면에서는 더 독한 롯데의 불펜 운영이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시즌 초반 달콤한 성공을 맛본 롯데가 가을까지 웃을 수 있을지, 아니면 역사가 증명하듯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