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 아닌데...' 롯데-삼성 또 벤치 클리어링, 전준우 맞힌 최원태는 왜 흥분했을까 [춘추 이슈]
"두 번째야" 몸에 맞는 볼에 분노한 전준우, 타자만큼 흥분한 최원태 '충돌'
[스포츠춘추]
몸에 맞은 타자보다 공을 던진 투수가 더 흥분하는 보기드문 장면이 나왔다. 원년 라이벌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가 보름만에 다시 벌인 벤치클리어링에서 고의로 몸에 맞혔다고 의심받는 게 억울했던 투수 최원태가 울분을 표출했다.
상황은 5월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롯데-삼성전, 5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볼카운트 1-1에서 전준우를 상대로 던진 최원태의 3구째 투심 패스트볼이 전준우의 왼쪽 팔꿈치 보호대 부근을 강타했다. 공에 맞은 전준우는 손가락 두 개를 편 채 "두 번째야"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17일 부산에서 겪었던 상황의 재현이라는 의미였다.
최원태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두 팔을 치켜올리며 억울하다는 제스처를 취한 최원태는 실수로 손에서 빠진 공이 고의로 몰리는 상황을 좀처럼 납득하지 못했다. 전준우가 헛웃음을 지으며 마운드를 향해 달려나가자, 최원태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롯데 출신으로 전준우와도 친한 삼성 포수 강민호가 재빨리 타자를 껴안으며 제지했지만, 양 팀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벤치클리어링 상황이 됐다. 삼성 주장 구자욱이 최원태 곁을 지키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고, 롯데 베테랑 김민성도 전준우에게 와서 중재에 나섰다.
첫 번째 충돌이 강민호와 김민성의 중재로 진정되고 양 팀 선수들이 더그아웃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상황이 정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최원태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1루로 향하던 전준우를 향해 최원태가 다시 무언가를 외치면서 2차 벤치클리어링이 터졌다.
최원태는 억울한 표정으로 계속 항변했고, 전준우가 다시 마운드 쪽으로 돌진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구자욱이 전준우를 말렸고, 이성규는 최원태를 붙잡고 말렸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선수들도 다시 우르르 달려 나와 2차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강민호는 롯데 쪽에 상황을 설명한 뒤 최원태를 달랬고, 구자욱도 롯데 선수들을 향해 고의가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상황을 중재하려고 노력했다. 약 4분간 지속된 대치 상황은 구자욱이 최원태에게 사과를 권유하면서 마무리됐다.
구자욱의 권유를 받아들인 최원태는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전준우에게 다가가 오해를 풀려고 시도했다. 두 선수는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전준우도 미소를 보이며 상황이 완전히 마무리됐다.
'두 번째'라는 전준우의 반응과 최원태의 억울하다는 반응은 2주 전 양 팀의 맞대결에서 벌어졌던 상황의 연장선이었다. 지난 17일 부산 사직야구장 더블헤더 2차전에서도 최원태의 공에 전준우 어깨가 맞는 일이 있었다. 당시엔 삼성 코치진이 나서서 고의가 아니었다는 점을 어필하면서 더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에도 또 몸에 맞는 볼이 문제가 됐다. 18일 경기 5회말 롯데 선두타자 장두성이 삼성 좌완 이승현의 패스트볼에 헬멧을 맞아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헤드샷 규정에 따라 퇴장 명령을 받은 이승현 대신 등판한 양창섭은 전민재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한 뒤, 후속 타자 윤동희에게 초구부터 머리 쪽으로 패스트볼을 던졌다.
고의성을 의심한 김태형 롯데 감독은 직접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와 삼성 벤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정훈을 비롯한 롯데 선수들이 김 감독을 말렸지만 결국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벤치클리어링이 진정된 뒤 삼성은 투수를 이승민으로 교체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올 시즌 몸에 맞는 볼로 선수들 부상이 잦았던 롯데다. 4월 29일 고척 키움전에서 전민재가 공에 눈 쪽을 맞아 보름 이상 이탈했고, 5월 11일 수원 KT전에서는 이호준과 손성빈이 연달아 머리를 맞는 사고를 당했다. 롯데로서는 몸쪽 공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했다. 반면 맞힐 의도가 아니었던 최원태로서는 실투를 빈볼로 오해받는 상황이 정말로 억울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