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빵에 내 선수 얼굴 끼워팔지마!" 야구팬들의 승리...SPC, 크보빵 생산 중단 [춘추 이슈]
노동자 사망사고 후 2300명 서명운동, 사고 발생 10일 만에 판매 중단
[스포츠춘추]
노동자 안전사고에 분노한 야구팬들의 집단 행동이 결실을 맺었다. SPC삼립이 29일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크보빵'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9일 시화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불과 10일 만에 대기업이 고개를 숙였다.
SPC삼립은 이날 홈페이지에 "KBO와 협의를 거쳐 크보빵 제조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회사는 다음 달 1일부터 크보빵 생산을 완전히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고 다음날인 20일부터 야구팬들은 '크보빵에 반대하는 크보팬 일동' 명의로 대규모 불매운동에 돌입했다. "화려한 협업 뒤에 감춰진 비극, 크보팬은 외면하지 않겠다"는 슬로건 아래 시작된 온라인 서명운동에는 2300여 명이 동참했다.
참가자들은 "사랑하는 선수들의 얼굴이 산재 기업의 이미지 세탁에 악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참여자는 "과거 SPC 불매운동을 했지만 크보빵은 사먹었던 게 부끄럽다"고 토로했고, 또 다른 참여자는 "야구는 삼진하면 아웃인데 SPC는 사람을 여러 번 죽여도 영업을 계속한다"며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비판했다.
야구팬들은 단순한 불매를 넘어 KBO에 SPC와의 모든 협업을 즉시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또한 30일 단체 트럭시위까지 예고했다. 이런 팬들의 압박과 여론 약화, 정치권의 비판이 작용하면서 결국 SPC가 자진해서 생산 중단을 결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크보빵은 지난 3월 SPC삼립이 KBO,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 협업해 출시한 제품이다. 9개 구단 선수들의 사진이 담긴 '띠부씰' 수집 열기와 맞물려 출시 41일 만에 1000만 개 판매를 돌파하며 사회적 현상이 됐다. 2022년 히트작 '포켓몬빵'을 뛰어넘어 SPC삼립 역대 최고 히트상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9일 새벽 3시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컨베이어벨트 정비 작업 중 상반신이 끼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SPC 계열사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10월 SPL 평택 공장에서 20대 여성 근로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어 숨졌고, 2023년 8월에는 SPC 샤니 성남 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반죽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최근 3년 동안 부상 포함 총 8건의 안전사고가 반복됐다.
SPC는 2022년 첫 사고 이후 3년간 1000억원을 투입해 안전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연이은 사고 재발로 공염불에 그쳤다. 이전 두 차례 사고에서는 대표이사까지만 사법처리됐고, 그룹 총수인 허영인 SPC 회장은 중대재해법 위반 처벌을 피한 바 있다.
이번 야구팬들의 집단 행동은 소비자들이 단순한 불매를 넘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해 변화를 이끌어낸,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자신들이 사랑하는 야구와 선수들이 기업의 이미지 세탁에 이용되는 것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