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의 연고지 이전 폭탄선언, 블러핑 아닌 '진심'인 이유 [춘추 이슈분석]
창원 홈 복귀 첫날 충격 발표…KBO와 이미 협의 거쳐, 창원시에 보내는 최후통첩
[스포츠춘추]
NC 다이노스가 마침내 오랫동안 가슴 속에 숨겨왔던 연고지 이전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3월 창원NC파크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안전사고로 62일간 홈구장을 떠나 유랑생활을 했던 NC는 30일 창원 홈 복귀 첫날 기자회견에서 연고지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NC는 지난 3월 29일 LG 트윈스와의 홈경기 중 구장 내 외장재인 '루버'가 떨어져 관중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하는 참사를 겪었다. 이후 구장 안전점검이 장기화되면서 한 달 넘게 전국을 떠돌며 원정 경기를 치르다가, 지난 17일부터는 울산 문수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해왔다.
창원시와 창원시설공단이 지난 19일 안전점검과 시설 보수 완료를 발표하면서 NC는 마침내 연고지 창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복귀 첫날 이진만 NC 대표이사 입에서 나온 것은 연고지 이전을 검토하겠다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창원시에 대한 요구사항 정도의 워딩을 예상했던 지역사회에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진만 대표는 이날 창원NC파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먼저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 뒤, "이번 일을 계기로 구단과 주위 환경,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됐다"며 "더 강한 구단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단의 역량 강화와 함께 주변 환경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고, 이로 인해 지역사회와 야구단이 동시에 발전할 수 있다"며 "제2의 창단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더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구단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연고지 이전을 선언했다.
NC의 연고지 이전 선언을 단순히 창원시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블러핑으로 보기는 어렵다. 구단이 이미 구체적인 검토와 준비 과정을 거친 정황이 곳곳에 보인다. 실제 연고지 이전 의사가 없다면 취하기 어려운 여러 액션들을 이미 실행에 옮긴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NC는 창원시에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이 대표는 "시설 개선, 팬들의 접근성 개선, 행정적 지원 등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누어 요청했다"며 "예전에 창원시가 약속했던 것들을 그대로 지켜달라는 요청을 드렸다"고 말했다. 29일 창원시에 공문을 발송한 상태로, 이 조건이 이행되지 않으면 사실상 떠나겠다는 선전포고로 풀이된다.
연고지 이전 승인권이 있는 KBO와도 상당 부분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이진만 대표는 "KBO와 고민을 함께하고 있다"면서 "KBO에서는 전부터 연고지 대안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지금도 우리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있다고 해주셨다"는 말로 이미 KBO와 협의가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참고로 허구연 KBO 총재는 이미 취임 기자회견 당시 이 문제에 관해 "지자체에서 계속 갑질하고 야구단의 소중함을 모르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나. 떠나야지. 한번 떠나봐야 지자체가 소중함을 느낀다"는 강한 워딩으로 프로구단의 연고지 이전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NC는 연고지 이전에 필요한 법적, 경제적 검토도 이미 마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구장 사용료(330억원)를 선납한 비용을 환수할 수 있는 부분은 고민하겠다"면서도 "선납 비용 때문에 미래 의사 결정이 영향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연고지 이전으로 구단 가치가 개선된다면 선납 비용은 매몰 비용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창원을 떠나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NC를 환영할 대안 지역들이 존재한다. 지난해 1000만 관중을 돌파한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 KBO리그에 여러 지자체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NC의 모기업인 엔씨소프트 본사가 있는 성남시는 지난 3월 KBO와 2만석 규모 야구전용구장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울산광역시도 지난달 KBO와 업무협약을 맺고 2027년까지 문수구장 관람석을 6천석 증설한다고 발표했다. 울산은 NC가 최근까지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성남과 울산은 NC가 창단 당시부터 연고지로 매력을 느끼고 검토했던 곳들이다. 접근성, 지역 규모 면에선 창원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장점이 많다.
NC의 연고지 이전 선언은 창원시가 자초한 사태다. 이진만 대표는 "구단은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잡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며 "그러나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불합리한 대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창원시가 NC에 실망과 불신을 준 사례는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창원시는 2010년 야구단 유치 당시 '구장 사용료 면제, 구장 운영권 장기 위탁' 등을 약속했지만 야구단이 창단되자 말을 바꿨다. 결국 NC는 새 구장 건립비 1270억원 중 100억원을 분담하고, 여기에 25년간 330억원의 고액 사용료를 추가 납부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야 했다. 구단이 지속적으로 요청한 교통 인프라 개선은 10년째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3월 사고 이후 창원시가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가 NC의 남은 정마저 뚝 떨어뜨렸다. 창원시는 사고 직후 구단에 책임을 전가하며 한동안 공식 입장조차 내지 않았고, 시민들의 규탄 시위가 일어나자 그제야 형식적인 애도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안전점검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NC를 62일간 홈구장 없는 유랑 생활로 내몰았다.
창원시가 사태 해결을 미루는 사이 NC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이 대표는 "이번 사고를 통해 우리 구단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며 "현상 유지가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직접적인 금전 손실만 40억원에 달하고, 울산에서 잔여 시즌을 모두 보냈다면 피해액이 100억원을 넘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단 내부에선 창원 복귀전 전날 일부 지역매체를 통해 불거진 '루버 탈거 은폐 의혹'에 대한 불쾌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보도 시점이 어제 밤이었다. 우리에게 그 소식이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라며 타이밍을 지적했다. 구단이 창원시에 개선 요청을 전달한 날이자 창원 복귀 전날에 사실과는 다른 구단 책임론이 불거진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NC의 연고지 이전 검토는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닌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다. NC는 거액의 지원금이 본사에서 내려오는 대기업 야구단이 아니다. 모기업인 엔씨소프트의 사정이 창사 이래 최악 수준으로 악화되면서 야구단 지원금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야구단 매각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압력도 거세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은 어떻게든 자생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창원이라는 조건 자체가 발목을 잡고 있다. 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구 규모도 제한적이어서 구단이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 한계에 부딪힌다. 이런 현실에서 창원시마저 연고지로서의 역할을 외면한다면 구단으로서는 다른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우리는 10개 구단 중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구단 생존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NC의 연고지 이전 선언이 진심이라는 점에서, 창원시는 이번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창원NC파크가 고교야구 대회나 야구 예능 촬영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일단 창원시는 NC 선언에 "구단과 상호 소통·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NC가 터뜨린 연고지 이전 폭탄에 창원시가 어떤 구체적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