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찾아가겠다' '가족 죽인다' '총으로 쏠거야'...스포츠베팅 부작용에 MLB 선수들 '고통' [춘추 MLB]
디 애슬레틱 설문조사...선수 89% "스포츠 베팅이 팬과의 관계 악화시켰다"
[스포츠춘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스포츠 베팅 때문에 팬들로부터 협박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살해 위협이 날아오는 상황이다. 한국에서도 KBO리그 선수들이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어, 스포츠 베팅의 부작용이 전 세계적 문제로 대두되는 분위기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이 6월 12일(한국시간) 공개한 MLB 선수 대상 연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스포츠 베팅이 팬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고 답했다. 단 5%만이 '아니다'라고 응답할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가 나왔다.
설문에서 한 베테랑 불펜투수는 충격적인 경험을 털어놓았다. "벤모(송금 앱)로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 '네가 경기를 망쳐서 9000달러를 잃었으니 그 돈을 보내라. 안 그러면 네 가족을 찾아가겠다'는 내용이었다"며 "이건 도가 지나쳤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이 MLB 보안팀에 이 문제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기 전에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우리가 미리 경고했잖아'라고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최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와 리암 헨드릭스가 가족들에게까지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과거에는 단순한 야유에 그쳤던 팬들의 반응이 도박으로 인해 더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전직 내셔널리그 올스타는 "선발투수로 불펜에서 워밍업을 하면 펜스 너머 팬들이 '오늘 네 오버에 돈 걸었어!'라고 소리친다"며 "신경 쓰지 않으려 하지만 그런 소리가 들리면 오늘 자신의 삼진 오버-언더가 얼마인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한 익명의 협박이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한 아메리카리그 투수는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벤모로 돈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온다"며 "사용자명을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예전에는 이기거나 지면 팬들이 기뻐하거나 슬퍼했는데, 이제는 배당을 못 맞추면 슬퍼한다. 1회에 실점하면 슬퍼하고, 커브볼 대신 속구를 던져도 슬퍼한다"고 말했다.
타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홈런은 흔한 베팅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한 투수는 "팬들은 항상 홈런에 돈을 건다. 타자가 1-2루 사이로 안타를 노리고 있는데 홈런에 돈을 건 도박꾼들이 소리를 지른다"고 설명했다.
한 내셔널리그 야수는 "요즘엔 '너랑 네 가족 다 죽어라'는 식이다. 부진한 건 미안하지만, 내가 나한테 베팅하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벤모로 '어젯밤에 너 때문에 2000달러 잃었다'는 메시지를 계속 받는다"며 "아파트에서 총으로 쏘겠다, 경기장 맞은편에 산다는 협박도 받았다. 3-4차례 그런 문자를 받아서 MLB 보안팀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일부 선수들은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한 아메리카리그 불펜투수는 "큰 돈을 잃은 누군가가 주차장에서 선수를 쫓아올 수 있다. 특히 애슬레틱스가 2028년 라스베이거스로 이전하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내셔널리그 투수는 소셜미디어에서 '팔레이(조합 베팅)'라는 단어를 차단하고 벤모는 가명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정말 못됐다"며 "한 동료는 자신 때문에 돈을 잃었다는 사람들에게 '너 그렇게 가난해?'라고 답했다는데, 재미있긴 하지만 아무 대답도 안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일부 선수들은 아예 소셜미디어를 삭제했다. 한 아메리카리그 동부지구 투수는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했는데 내가 한 일 중 최고"라고 말했다.
한 내셔널리그 포수는 스포츠 베팅 자체를 문제 삼았다. "베팅은 없어져야 한다. 잘못된 방식으로 더 많은 팬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설문에 응한 모든 선수가 스포츠 베팅을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한 투수는 "베팅 결과에 대한 DM을 받긴 하지만 직업상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며 "(베팅이) 팬들에게 더 깊은 몰입을 준다고 생각한다. 팬들이 소셜미디어로 직접 소통하고 야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스포츠 도박으로 인한 이같은 문제는 KBO리그도 다르지 않다. 국내 한 에이전시 관계자는 "선수들이 개인 SNS로 날아오는 악성 DM과 관련해 자주 조언을 구한다"며 "불법 스포츠토토와 관련한 감정적 배출구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스포츠 베팅으로 인한 선수 협박과 괴롭힘이 국경을 가리지 않는 글로벌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