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엄마 생일 못 챙겼다" "한달 절반은 집 비워" 메이저리거 생활, 화려함에 숨은 그늘 [춘추 MLB]

메이저리거 대상 설문조사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고통·원정경기의 고충·경제적 고민 털어놔

2025-06-12     배지헌 기자
마이너리거들의 삶을 그린 영화 '19번째 남자'의 한 장면.

 

[스포츠춘추]

화려해 보이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삶 뒤에는 가족과 떨어져 보내는 시간, 끝없는 장거리 이동, 경제적 불안이 숨어 있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6월 12일(한국시간) 130명 이상의 MLB 선수 대상 연례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야구선수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선수들은 솔직한 답변을 쏟아냈다. 답변들은 주로 162경기 시즌의 고단함, 가족과 보내는 시간 부족, 경제적 현실 등에 집중됐다.

한 내셔널리그 투수는 설문에서 "우리가 가족보다 팀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비교도 안 된다"며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고 싶지만 (야구선수는)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내셔널리그 투수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17년째 어머니 생일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며 "프로 선수가 되기 이전부터 많은 것을 놓쳤다. 야구 토너먼트 때문에 졸업 무도회도 못 갔다. 수년간 쌓인 작은 희생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특히 장거리 원정 여행의 고단함을 강조했다. 전용기와 최고급 호텔을 이용하지만 매주 짐을 싸서 이동하는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한 내셔널리그 타자는 "매주 짐을 싸야 한다. 집에 가거나 원정을 떠나거나. 한 곳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한 아메리칸리그 투수는 "사람들은 원정 여행이 어떤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밤늦게 도착해서 짧은 휴식을 취하고, 야간에 경기하고, 162경기를 소화한다. 이런 반복이 시즌 중후반 몸에 미치는 영향을 사람들은 모른다"고 말했다.

마이너리거들의 삶을 그린 영화 '19번째 남자'의 한 장면.

하루 일과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한 내셔널리그 투수는 "야구장에 오후 1시에 온다고 하면 사람들이 놀란다"며 "정오에 와서 연습하고, 각자 해야 할 루틴이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 투구 연습 등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 내셔널리그 야수는 "그냥 야구장에 와서 경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전 몇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스카우팅 리포트 검토, 타자 미팅, 주루 미팅, 풀 워밍업 루틴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타격 연습 중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에게 선수들의 태도가 무뚝뚝해 보이는 데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 아메리카리그 타자는 "사람들은 우리가 거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연습 시간이 제한적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생활은 가족 관계에도 큰 타격을 준다. 한 투수는 "결혼식에는 절대 참석할 수 없다"고 말했고, 한 아메리칸리그 타자는 "8-9살 이후로 제대로 된 여름휴가를 보낸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한 내셔널리그 투수는 "아이가 있는데 한 달 중 절반은 집을 비우고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녀야 한다"며 야구선수의 생활이 생각처럼 화려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이너리거들의 삶을 그린 영화 '19번째 남자'의 한 장면.

선수들의 경제 상황에 대한 오해도 있다.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이 76만 달러(약 10억6400만원)이라고 해서 모든 선수가 부유한 것은 아니다. 한 아메리칸리그 투수는 "야구는 상위 1% 선수들만 부각시키고 그들만 마케팅한다"며 "5년간 메이저리그를 오르내린 선수들, 총 20여 일 정도만 뛴 경계선 선수들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내셔널리그 투수는 "메이저리그에 있으면 억만장자일 것 같지만, 다들 첫 해에는 최저 연봉을 받는다. 그것도 많은 돈이지만 엄청난 부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아메리칸리그 투수는 "가족을 이사시키고, 2-3채의 집 대출금을 갚고, 가족들이 받는 스트레스까지 고려하면 복잡하다"며 "보장계약을 받기 전까지는 캐리어를 들고 사는 삶"이라고 설명했다.

한 선수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뭘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한 마디가 선수들과 팬들 사이의 인식 차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설문조사로 나타난 130명이 넘는 선수들의 증언은 메이저리그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가려진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