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단속' '티켓값 1억원' '주차비가 18만원'...2026 월드컵은 그들만의 잔치? [춘추 이슈]

"가장 포용적인 대회" 자화자찬하지만...정치적 불안·비용 폭등으로 우려 높아진다

2025-06-12     배지헌 기자
2026 월드컵 우승 트로피(사진=FIFA 공식 SNS)

 

[스포츠춘추]

2026년 월드컵 개막까지 정확히 1년이 남은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 대회를 둘러싼 정치적 우려와 경제적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6월 12일(한국시간) 2026 월드컵 개막 1년을 앞두고 전문 기자들의 심층 분석 특집 기사를 발표했다.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48개국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 대회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어느 하나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심각한 우려는 정치적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여행금지 행정명령으로 이란을 비롯한 10여 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이 금지된 상태다. 이미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이란은 물론, 본선 진출을 노리는 베네수엘라와 아이티 팬들도 미국행이 막힐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아이티의 경우 1974년 이후 두 번째 월드컵 진출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여행금지 대상국이어서 선수단과 관계자들만 입국이 허용되고 팬들은 자국 팀 경기조차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강제 '무관중 경기'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멜라니 안지데이 기자는 "FIFA 회장 지아니 인판티노는 '가장 포용적인 대회'라고 말하지만,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트럼프의 이민자 단속으로 시민 소요와 군대 투입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곳에 살고 있는 이민자 가족들조차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데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이 어떻게 안전하다고 느끼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민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져 주방위군이 투입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로스앤젤레스 스포츠엔터테인먼트위원회 제이슨 크루치 부회장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우리 시장은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환영하고 뛰어난 경험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해명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비자 발급 지연도 심각한 문제다. 콜롬비아는 현재 비자 면접 예약 대기 기간이 15개월, 에콰도르는 10개월, 코스타리카는 9개월 반에 달한다. 많은 팬들이 12월 조 추첨 후 여행 계획을 세우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비자 발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월드컵 티켓을 합법적으로 구매했더라도 비자가 거부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은 디 애슬레틱에 "적지 않은 수의 합법적 티켓 소지자들이 비자를 거부당할 것"이라며 "월드컵 티켓 소지가 입국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뉴욕/뉴저지 월드컵 조직위원회 알렉스 래스리 CEO는 "월드컵은 국내 대회가 아니다. 전 세계인들이 미국에 오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이는 40일간의 경제적 파급효과뿐 아니라 앞으로 5년, 10년, 15년의 영향으로 이어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세계 축구 최고의 축제 월드컵을 뒤흔드는 트럼프의 정책(사진=알 자지라 방송 화면)

티켓 가격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FIFA는 이번 대회에서 다이나믹 프라이스 시스템을 도입해 수요에 따라 티켓값이 실시간으로 변동된다. 현재 판매 중인 호스피털리티 패키지는 개인당 3500달러(약 490만원)부터 시작해 최고 7만3200달러(약 1억250만원)에 달한다.

이는 1994년 미국 월드컵 티켓이 25달러에서 475달러였던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 대회는 35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관중 기록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가격 부담으로 일반 팬들의 접근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숙박비와 교통비 폭등도 심각하다. 지난해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차료만 132달러(약 18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경기장은 대중교통 접근이 어려워 렌터카나 우버 이용이 불가피한데, 이들 역시 다이나믹 프라이스 제도를 적용해 비용이 천정부지로 오를 전망이다.

디 애슬레틱의 아담 크래프턴 기자는 "FIFA의 130억 달러(약 182조원) 수익 목표와 각종 관련 산업의 가격 책정 방식으로 인해, 월드컵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완전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미국 11개 개최 도시들이 연방 정부에 요청한 6억2500만 달러(약 8750억원)의 안전 유지비 지원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의회 48명이 서명한 서한에 따르면 대회 규모상 "악의적 공격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표적"이 될 수 있으며, 미국 국가대테러센터 정보에서도 "경기장과 공공행사를 겨냥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안전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승인은 나오지 않았다. 뉴저지주의 경우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개보수에만 이미 3700만 달러를 투입했고, 교통 보안 등으로 6500만 달러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마이애미의 경우 지난해 코파 아메리카 결승에서 보안 인력 부족과 표를 못 구한 관중의 난입으로 아수라장이 된 악몽이 되풀이될까 우려하고 있다. 마이애미 조직위원회의 알리나 후닥 위원장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사"라며 "현재 상황은 괜찮다"고 해명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2026 월드컵 앞에 먹구름이 드리웠다(사진=FIFA 공식 SNS)

48개국으로 확대된 대회 포맷 자체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잭 랭 전문기자는 "FIFA가 완벽했던 기존 포맷을 망쳤다"며 "이제 3위 팀들도 진출하고, 일부 조 1위 팀들이 자의적으로 더 쉬운 16강 상대를 만나게 된다. 72경기는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올리버 케이 기자도 "월드컵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전보다 40경기나 많고, 3개국에 걸친 이동, 더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경기들을 보려는 엄청난 수의 팬들 때문"이라며 "카타르 2022가 경기장 밖에서는 재미없었다면, 2026년 월드컵은 반대로 너무 과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필리페 카르데나스 기자는 "경기 수가 너무 많다. 실력이 부족한 팀들이 더 많이 참가하고, 강팀들마저 피로로 부진하다면 내년 여름 대회가 재미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2026년 월드컵은 사상 최대 규모의 축구 축제가 될 가능성과 동시에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회가 될 위험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앞으로 1년간 이런 구조적 문제들이 얼마나 해결될 수 있을지가 대회의 성공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