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이 원하면 1루수도 OK" 이정후 동료 된 데버스, 자이언츠 데뷔전 멀티히트 1타점 활약 [춘추 MLB]
샌프란시스코 합류 첫 경기서 멀티히트 1타점...팀은 한 점차 패배
[스포츠춘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1루 수비 거부로 갈등을 빚었던 라파엘 데버스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데버스는 6월 18일(한국시간)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입단 기자회견에서 "팀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뛸 준비가 돼 있다"며 1루 수비 의사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데버스는 스페인어 통역을 통해 "100%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이언츠가 원하는 곳에서 뛰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보스턴에서 트리스턴 카사스 부상으로 1루 수비를 요청받았을 때 단호히 거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무엇이 그를 바꿨을까. 데버스는 "(이곳은) 새로운 조직"이라며 "여기서 행복하다"고 답했다. 자이언츠의 버스터 포지 구단 운영부문 사장과 밥 멜빈 감독이 데버스와 개인 면담에서 1루 수비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어떤 반발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포지 사장은 "선수를 평가할 때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며 "'이 선수가 진짜 멋진 친구(dude)인가?'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치로 계량할 수 없는 것으로,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에 본능적인 감각을 발휘하는 선수"라며 "동료들을 더 나은 선수로 만드는 타입"이라고 데버스를 평가했다.
보스턴에서의 갈등은 의사소통 부재에서 시작됐다. 디 애슬레틱의 켄 로젠탈 선임 기자는 칼럼에서 "레드삭스가 3루수 알렉스 브레그먼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기존 3루수 데버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아 순진해 보이던 아이를 골칫거리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레드삭스는 데버스에게 통보 없이 브레그먼을 데려온 뒤 포지션 이동을 권했고, 데버스는 처음에는 지명타자 전환을 거부했다가 결국 수용했다. 하지만 카사스 부상 후 또 포지션을 옮기라는 요구가 주어지자 "글러브를 치우라고 하고서 이제 와서 다른 포지션을 하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로젠탈은 "시즌 중간에 나온 그 요청은 원래 수비가 뛰어나지 않은 데버스를 사실상 악역으로 몰아가는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존 헨리 구단주가 캔자스시티까지 날아가 설득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데버스는 "단장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현했다.
크레이그 브레슬로 보스턴 단장은 "의사소통 실패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팀 문화와 정체성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스타 선수들과의 지저분한 이별이 반복되는 레드삭스의 패턴은 팀 문화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트레이드는 자이언츠가 야심찬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평가된다. 자이언츠는 최근 몇 년간 지안카를로 스탠튼, 브라이스 하퍼, 애런 저지, 오타니 쇼헤이 등 톱클래스 타자 영입을 시도했지만 전부 거부당했다. 카를로스 코레아와는 메디컬 우려로 계약을 포기하기도 했다. 데버스 같은 타자를 손에 넣을 기회는 자이언츠로선 다시 없을 기회였다.
자이언츠는 데버스의 남은 계약기간인 8년여간 약 2억5500만 달러(3570억원)를 떠안게 됐다. 조던 힉스를 보스턴으로 보내며 약 3200만 달러를 절약했지만, 남은 돈도 여전히 거액이다. 이와 관련, 포지 사장은 "(트레이드 평가는) 누가 최고의 선수를 얻었느냐"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선수 데버스를 얻은 자이언츠가 승자라는 자평이다.
데버스는 기자회견에서 보스턴에서의 일은 "과거의 일"이라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앞줄에 앉은 레전드 배리 본즈를 가리켜 "그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경기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다"며 농담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보스턴에서 마지막 몇 달간 언론을 기피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자이언츠는 데버스를 주로 지명타자로 기용할 예정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1루 수비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주전 3루수 맷 채프먼이 손목 부상으로 7월 초까지 결장하는 가운데서도, 3루 수비는 맡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열린 데버스의 자이언츠 데뷔전(클리블랜드 가디언스전)은 2대 3 한 점차 패배로 마무리됐다. 데버스는 5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1회 이정후의 볼넷과 진루타로 맞은 1사 2루 상황에서 삼진을 당했지만, 3회 1사 1루에서 2루타로 이적 첫 타점을 올렸다.
2대 3으로 뒤진 9회말 이정후가 안타를 치고 1사 1루에서 데버스도 안타를 쳐내며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엘리엇 라모스의 볼넷으로 만루가 됐지만, 도미닉 스미스의 좌익수 쪽 얕은 뜬공과 케이시 슈미트의 삼진으로 경기가 끝났다. 1번타자로 나선 이정후는 4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을 기록했다.